
서울대학교 건강문화사업단과 조선일보가 19세 이상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공동체가 우선 해결해야 할 건강 문제가 무엇인지 물었다. 2018년 조사에서는 비만(15.6%), 자살(12.3%), 고령화(12.2%), 흡연(12.2%), 만성질환 관리(11.7%) 순이었다. 7년 후인 2025년 조사에서는 만성질환 관리(16.8%), 흡연(14.6%), 비만(14.4%), 자살(12.2%), 고령화(9%) 순으로 나타났다.
7년 사이 건강 문제에 대한 인식의 우선순위가 바뀐 것이다. 서울대 연구팀은 초고령사회 진입과 함께 국민들의 건강 관련 관심사가 달라진 결과라고 분석했다. 우리나라는 2018년 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14% 이상)에 진입한 데 이어 2024년 말 초고령사회(20% 이상)에 들어섰다. 한국인의 기대수명도 꾸준히 늘어났다.
비만을 우선 해결해야 할 문제로 꼽은 비율은 2018년 15.6%에서 2025년 14.4%로 낮아졌다. 그렇다고 비만 문제가 개선된 것은 아니다. 조사에 인용된 우리나라 성인 비만율은 2018년 31.8%에서 2025년 35.4%로 오히려 높아졌다.
전문가들은 위고비, 마운자로 등 비만 치료제가 보급되면서 비만을 관리할 수 있다는 인식이 커진 점에 주목한다. 반면 고혈압, 당뇨병 등 만성질환은 평생 관리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진 것으로 보고 있다. 2024년 10월 국내에 출시된 ‘위고비’는 비만 치료제 시장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이후 2025년 8월 ‘마운자로’가 등장하면서 시장의 경쟁 구도에도 변화가 생겼다.
비만(肥滿, obesity)은 체내에 지방이 비정상적으로 많이 축적된 상태로, 여러 질환의 발생 위험을 높이는 만성질환이다. 세계보건기구(WHO)도 비만을 중요한 건강 문제로 인식하고 예방과 지속적인 관리를 강조하고 있다.
체중이 정상 범위보다 많이 나가더라도 근육량이 많고 체지방률이 낮다면 체중만으로 비만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반대로 겉보기에 말라 보이고 체중이 정상 범위에 있더라도 체지방률이 높고 복부에 지방이 많이 축적돼 있다면 건강상 위험이 커질 수 있다. 이를 흔히 ‘마른 비만’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성인의 체질량지수(BMI) 25 이상을 비만으로 분류한다. 복부비만은 허리둘레를 기준으로 남성 90cm 이상, 여성 85cm 이상일 때 진단한다. 따라서 체중이 많이 나가는 것과 의학적으로 비만인 것은 구별해야 한다.
비만은 단순히 체형의 문제가 아니다. 고혈압, 제2형 당뇨병, 이상지질혈증, 심혈관질환 등 여러 질환의 위험을 높일 수 있다. 지방간, 통풍, 수면무호흡증, 담석증, 관절염, 역류성식도염, 생식기능 장애 등과도 관련이 있으며, 대장암과 유방암을 비롯한 일부 암의 위험 증가와도 연관된다.
비만은 에너지 섭취와 소비의 불균형으로 체지방이 과도하게 축적되는 현상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단순히 많이 먹고 적게 움직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불규칙한 식습관, 과도한 열량 섭취, 운동 부족뿐 아니라 유전적 요인, 내분비질환, 수면, 정신건강, 약물 등 다양한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
비만 치료의 기본은 식사 조절과 신체활동, 행동요법이다. 필요에 따라 약물치료를 병행하며, 중증 비만이나 합병증이 있는 환자에게는 비만대사수술을 고려할 수 있다.
약물치료에는 지방 흡수를 억제하는 약제와 식욕·포만감을 조절하는 약제 등이 사용된다. 지방 흡수 억제제는 섭취한 지방의 일부가 흡수되지 않고 배출되도록 하며, 설사나 지방변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식욕과 포만감에 작용하는 치료제도 부작용과 금기사항을 고려해야 하므로 의사와 상담한 뒤 사용해야 한다.
국내 비만 치료제 시장에서 주목받는 약물은 위고비(Wegovy)와 마운자로(Mounjaro)다. 덴마크 노보 노디스크(Novo Nordisk)의 위고비는 세마글루타이드(semaglutide)를 주성분으로 하며, 2024년 10월 국내에 출시됐다. 미국 일라이 릴리(Eli Lilly)의 마운자로는 티르제파타이드(tirzepatide)를 주성분으로 하며, 2025년 8월 국내에 출시됐다.
2026년 1분기 국내 매출은 위고비 1040억 원, 마운자로 3232억 원으로 집계됐다는 시장 자료도 있다. 마운자로의 판매가 빠르게 늘면서 비만 치료제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세마글루타이드는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수용체에 작용하는 약물이다. 혈당 조절과 식욕 감소, 포만감 증가 등에 효과를 나타낸다. 제2형 당뇨병 치료용 제품과 체중 관리용 제품이 있으며, 주사제와 경구용 제제가 각각 개발돼 있다.
티르제파타이드는 포도당 의존성 인슐린분비촉진 폴리펩타이드(GIP)와 GLP-1 수용체에 함께 작용하는 약물이다. 혈당을 조절하고 식욕과 체중을 줄이는 데 사용된다. 국내에서 사용되는 마운자로는 주사제다.
위고비와 마운자로의 비만 치료 목적 처방 대상은 일반적으로 BMI 30 이상인 성인, 또는 BMI 27 이상이면서 고혈압이나 이상지질혈증 등 체중 관련 동반질환이 있는 성인이다. 다만 실제 처방은 국내 허가사항과 환자의 건강 상태를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
임상시험에서는 마운자로의 체중 감량 효과가 위고비보다 평균적으로 더 크게 나타났다. 세마글루타이드와 티르제파타이드의 임상시험 결과에서는 각각 상당한 체중 감소가 확인됐으며, 감량 폭은 투여 용량과 기간, 환자의 특성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두 약물 모두 오심(메스꺼움), 구토, 설사, 변비 등 위장관계 이상반응이 흔하게 보고됐다.
최근에는 국내에서 개발한 비만 치료제도 등장했다. 한미약품은 2026년 10월 7일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GLP-1 계열 비만 치료제 ‘에페(EPPE)’의 시판허가를 받았다. 제품명은 ‘에페오토인젝터주’, 성분명은 에페글레나타이드(efpeglenatide)다.
한미약품의 에페는 국내 제약사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GLP-1 계열 비만 치료제다. 40주간 진행한 임상 3상 중간 분석에서는 평균 9.75%의 체중 감소 효과가 확인됐다.
에페의 공급가격은 초기 4주 투여분 기준 약 13만 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용량별 펜당 공급가는 2mg 2만4200원, 4mg 4만700원, 6mg 5만7200원, 8mg 6만9300원, 10mg 7만4800원 수준이다. 다만 이는 약제 공급가격으로, 의료기관에서 환자가 실제 부담하는 금액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에페는 주 1회 투여하는 주사제로, 초기에는 낮은 용량으로 시작해 단계적으로 증량하도록 개발됐다. 국내에서 개발한 치료제가 추가되면서 환자들의 약물 선택 폭이 넓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비만 치료제의 과제는 체중을 감량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치료를 중단한 뒤 줄었던 체중이 다시 증가하는 이른바 ‘요요 현상(Yo-yo effect)’이 보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약물 사용으로 감소했던 식욕이 치료 중단 후 다시 증가할 수 있으며, 장기적인 체중 관리를 위해 식사·운동요법과 지속적인 진료가 중요하다.
비만 치료제를 얼마나 효과적이고 안전하게, 또 경제적으로 지속할 수 있느냐가 치료제 경쟁의 새로운 기준이 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체중 감량용 처방약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기업의 의료보험 복지비용을 압박하고 있다. 이에 일부 기업은 체중 감량 목적의 GLP-1 치료제에 대한 보험 보장을 축소하거나 처방 조건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 기업 127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체중 관리 목적의 GLP-1 치료제를 보험으로 보장하는 기업의 비율은 2025년 72%에서 2026년 60%로 낮아졌다. 고용주들은 약제비 부담을 관리하기 위해 더 엄격한 승인 절차와 체중 관리 프로그램 참여 요건 등을 도입하고 있다.
하버드대학도 2026년부터 직원들에게 강화된 보험 보장 요건을 적용했다. 약물치료를 시작할 당시 BMI가 32 이상이거나, BMI 27 이상이면서 체중 관련 건강 문제가 두 가지 이상 있어야 한다. 일정한 체중 관리 프로그램 참여도 요구된다.
새로운 약물이 개발되고 제형이 다양해지면서 치료 선택지는 계속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약값이 낮아진다고 해서 의료비 부담이 곧바로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치료 기간과 지속 사용 여부, 보험 적용 범위 등에 따라 전체 비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더 다양한 비만 치료제가 출시될 것으로 예상된다. 어떤 환자는 가격을 중시하고, 어떤 환자는 심장이나 간 등 동반질환에 대한 치료 효과를 고려할 것이다. 주사제보다 경구용 약물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비만 치료는 단순히 체중계의 숫자를 줄이는 일이 아니다. 개인의 건강 상태와 동반질환, 약물의 효과와 안전성, 치료 지속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새로운 치료제가 잇따라 등장하더라도 건강한 식습관과 규칙적인 신체활동, 장기적인 체중 관리의 중요성은 변하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