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칼럼

AI가 답을 내놓는 시대, 인간은 질문하고 사유해야 한다

진정한 변화와 성장은 지식을 대충 훑어보는 데서 오지 않는다. 좋은 책 한 권을 곁에 두고 문장 하나하나를 씹어 삼키며 저자의 생각을 깊이 이해하고 자신의 것으로 소화할 때 비로소 생각의 지평이 열린다. <AI 생성 이미지>

스크린을 끄고 책을 펴는 이유

최근 들어 여러 매체에 기고문을 쓸 기회가 부쩍 늘었다. 평생 공직과 현장에 몸담으며 쌓아온 경험과 퇴직 후 기업 경영 및 공공 영역에서 사유해 온 자취를 글로 옮기는 작업은 참으로 뜻깊은 여정인 것 같다. 하지만 근래 필자의 글쓰기는 단순한 경험의 회고를 넘어 조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바로 ‘책 읽기’와 ‘스스로 깊이 생각하는 글쓰기’에 대한 성찰이다.

기술의 발전 속도가 가파르다. 인공지능(AI)은 인간이 수십 년간 축적한 지식을 순식간에 요약하고, 질문 하나만 던지면 매끄러운 답을 수초 만에 내놓는다. 놀랍고 편리한 문명의 이기다. 솔직히 말해 나 역시 이 강력한 도구를 활용하며 글을 쓰고 다듬고 있다. 그러다가 바로 그 지점에서 문득 서늘한 생각과 마주하곤 한다.

버튼 하나로 번듯한 문장이 나타나는 이 편리함 속에서, 정작 인간인 나는 스스로 머리를 굴려 고민하고 엉킨 생각을 풀어내는 고통스러운 사유의 근육을 퇴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런 경계심이 문득 고개를 든다.

정답을 빠르게 찾아내고 정리하는 능력에서 AI는 이미 인간을 앞지르고 있다. 그렇다면 거대한 변화의 파도 속에서 인간은 무엇으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가?

그 해답은 단연 ‘인문학적 역량’에 있다고 생각한다. AI라는 도구를 주체적으로 활용하면서도 그 편리함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더욱 철저하게 책을 읽고 스스로 치열하게 사유하며 오직 자신의 언어로 글을 세워 올려야 한다.

얼마 전 한 지식 채널에서 소개된 신영준 박사와 고영성 작가의 저서 《인생을 위한 최소한의 생각》에 관한 해설을 접했다. 이 책과 영상이 던지는 핵심 경고는 명확했다.

오늘날 인류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풍부한 정보를 누리고 있지만, 스마트폰의 자극적인 숏폼과 단편적인 정보에 길들여져 ‘깊이 생각하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문장을 눈으로 훑고는 있지만 행간을 읽어내지 못하고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지 못하는 ‘실질적 문맹’이 늘어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자극적인 정보는 순간의 재미를 줄지언정 내면의 근육을 키워주지 못한다. 거친 바람이 불 때 삶의 중심을 잡아주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지식의 양이 아니라 내면에 단단하게 축적된 ‘사유의 깊이’다.

진정한 변화와 성장은 지식을 대충 훑어보는 데서 오지 않는다. 좋은 책 한 권을 곁에 두고 문장 하나하나를 씹어 삼키며 저자의 생각을 깊이 이해하고 자신의 것으로 소화할 때 비로소 생각의 지평이 열린다.

이것이 바로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다시 책을 읽어야 하는 본질적인 이유가 아닐까.

AI는 수많은 책에 담긴 정보를 순식간에 처리할 수 있지만, 책을 읽으며 가슴이 먹먹해지는 감동을 느끼거나 문장 하나에 머물러 자신의 지난 삶을 되돌아보는 성찰은 인간 고유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인문학적 역량이란 단순히 고전의 구절을 외우는 것이 아니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 복잡한 세상의 맥락을 꿰뚫어 보는 안목,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다운 품격과 윤리를 잃지 않는 결단력이다. 이러한 역량은 깊은 독서와 사유를 통해 더욱 단단해진다.

필자가 기고문을 쓰며 AI라는 이로운 도구를 사용하면서도 끊임없이 스스로를 점검하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기술을 부리는 주체는 사람이어야 하며, 글에 담기는 필자의 철학과 삶의 경험까지 AI에 맡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편리한 도구의 유혹을 제어하고 스스로 질문을 던지며 엉킨 생각을 매듭짓는 과정에서 비로소 자신만의 철학이 형성된다.

가벼운 말과 구체성 없는 주장 대신 진짜 삶의 냄새가 나고 인간적인 온기가 묻어나는 글을 쓰는 것. 그것이야말로 기계의 문장과 구별되는 인간 고유의 자존심일 것이다.

진정한 자유는 욕망을 끝없이 채우고 지식을 무한정 쌓아가는 데서 오지 않는다. 그것을 단단하게 갈무리하고 절제할 때 찾아온다. 빠른 소비보다 사유의 숙성을 중시할 때, 우리는 AI라는 거대한 기술 문명 속에서도 대체하기 어려운 존재로 설 수 있다.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변하고 가벼워져도 근본을 꿰뚫는 독서의 힘과 인문학적 사유는 결코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기계가 인간의 지적 능력을 넘보는 시대일수록 우리는 더 깊이 사람을 공부하고 문학과 역사와 철학을 품어야 한다.

손에서 잠시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빛바랜 책 한 권을 펴는 것. 그 안에서 기계의 속도에 휩쓸리지 않고 오롯이 자신과 대화하며 스스로의 언어를 찾는 것이야말로 AI 시대를 건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첫걸음이라 믿고 싶다.

▼ 아시아엔 후원계좌 ▼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후원은 아시아엔과 아시아 저널리즘의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됩니다.
우리은행 1005-601-878699 (주식회사 아자미디어앤컬처)

박진이

CCK 솔루션 고문, 전 경호처 경호이사관

필자의 다른 기사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본 광고는 Google 애드센스 광고이며, 본 사이트와는 무관합니다.
Back to top button
AI 에이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