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

장롱 속 옷의 가격표를 떼어내는 아침

아껴 두기만 했던 옷의 가격표를 떼어내는 아침, 오늘을 내 인생의 가장 좋은 날로 입는다.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은 오늘…어제는 어제에게 맡겨 두라

어느 날 우연히 시니어들의 인생 지혜를 다룬 유튜브 영상 한 편을 보았다. 평생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 또래의 마음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이야기가 덤덤하게 이어지는데, 그 담담함이 오히려 가슴 깊은 곳을 묵직하게 두드렸다.

한참 동안 화면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고, 거기서 얻은 울림을 시니어들과 꼭 나누고 싶어 이렇게 글을 쓴다.

여러분은 어느 날 아침, 장롱 깊숙이 걸린 옷 한 벌 앞에서 발걸음을 멈춰 본 적이 있는가?

사 놓고 제대로 입어 보지도 못한 옷, 손님이 오면 내려고 찬장 맨 위에 모셔 둔 그릇, 전화기만 만지작거리다 “다음에 밥 한번 먹자”며 미뤄 둔 오랜 인연들. 숨 가쁘게 살아온 우리의 장롱과 찬장에는 차마 쓰지 못하고 쌓아 둔 ‘언젠가’가 그렇게 가득하다.

젊은 날의 우리는 참 부지런히 살았다. 부모를 봉양하고 자식을 뒷바라지하고 직장과 사회에서 제 몫을 하느라, 정작 내 숨소리에는 귀 기울일 겨를이 없었다.

그러다 환갑을 넘겨 문득 거울을 보면 하얗게 센 머리칼과 깊어진 주름 사이에 덩그러니 서 있는 내가 보인다.

그 모습 앞에서 나는 영상이 전하는 세 가지 이야기를 곱씹게 되었고, 비슷한 길을 걸어온 분들께 그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첫째는 어제를 어제에게 맡겨 두라는 말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밤잠을 설치며 지난 일을 되짚는 날이 늘어난다. ‘그때 그 말은 하지 말걸’, ‘조금만 더 참을걸’, ‘그 사람을 어떻게 용서해야 하나’ 같은 아쉬움과 원망이 수십 년 전 일인데도 어제 일처럼 꼬리를 문다.

그러나 엎질러진 물 앞에 쪼그려 앉아 평생을 보낸다고 해서 물이 다시 그릇에 담기지는 않는다. 용서와 내려놓음은 상대를 위한 선물이라기보다, 내 마음의 방에서 미움이라는 불청객을 내보내는 나 자신을 위한 결단에 가깝다.

그 시절의 형편과 지혜로 우리는 이미 최선을 다했다. 부족했든 아쉬웠든 어제의 일은 지나간 세월에 맡기고, 오늘 내 가슴을 누르던 짐부터 하나씩 내려놓아 보면 어떨까.

둘째는 이제 내 차례라는 말이었다.

평생 남을 위해 살아온 사람일수록 “그럼 이제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나” 하는 물음 앞에서 낯설고 어색해진다. 행복의 열쇠를 자식의 성공이나 남의 반응에 맡겨 두면 기대가 큰 만큼 쓸쓸함도 커지기 쉽다.

자식은 제 삶의 무게를 스스로 짊어지고 걸어가는 독립된 인격체이니, 기꺼이 놓아주는 것이 부모가 줄 수 있는 가장 깊은 사랑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제는 남의 시선과 비교에서 벗어나 내 박자로 걸어갈 때다. 혼자 찻집에 앉아 차 한 잔을 마시는 작은 자유, 눈치 보지 않고 좋아하는 음식 한 그릇을 온전히 비우는 여유를 스스로에게 허락해 보자.

세상 모든 이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 남은 생의 주인은 배우자도 자식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다.

셋째는 ‘다음에’를 ‘오늘’로 바꾸라는 말이었다.

우리는 ‘다음에’, ‘형편이 좀 나아지면’이라는 말로 행복을 미뤄 왔지만, 그 ‘다음에’는 약속이 아니라 막연한 바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영상이 던진 가장 큰 경종이었다.

마음속에 담아 둔 고맙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은 오래 둔다고 이자가 붙지 않는다. 오지 않은 내일을 걱정하느라 오늘 하루를 흘려보내지 말고, 보고 싶은 인연이 있다면 오늘 전화기를 들어 보자.

아끼느라 비닐도 뜯지 않은 옷이 있다면 오늘 꺼내 입고 동네 한 바퀴를 걸어 보자. 아껴 둔 꽃무늬 그릇이 있다면 오늘 저녁 밥상에 올려 나를 위한 따뜻한 밥 한 끼를 담아 먹자.

우리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은 바로 오늘이다. 완벽하게 살아온 사람은 세상에 없다. 지나온 세월에 후회가 남는다면 인생을 잘못 살았다는 뜻이 아니라, 그만큼 매 순간 애쓰며 살아왔다는 흔적일 것이다.

장롱 속에 아껴 두었던 옷의 가격표를 싹둑 잘라내는 소리와 함께, 오늘을 내 인생에서 가장 좋은 날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

평생을 견뎌 온 거울 속의 나를 향해 “참 잘 살아왔다” 하고 따뜻하게 말을 건네며, 오롯이 나답게 걸어가는 두 번째 인생의 아침을 맞이하길 응원한다.

어느 날 우연히 시니어들의 인생 지혜를 다룬 유튜브 영상 한 편을 보았다. 평생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 또래의 마음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이야기가 덤덤하게 이어지는데, 그 담담함이 오히려 가슴 깊은 곳을 묵직하게 두드렸다.

한참 동안 화면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고, 거기서 얻은 울림을 시니어들과 꼭 나누고 싶어 이렇게 글을 쓴다.

여러분은 어느 날 아침, 장롱 깊숙이 걸린 옷 한 벌 앞에서 발걸음을 멈춰 본 적이 있는가?

사 놓고 제대로 입어 보지도 못한 옷, 손님이 오면 내려고 찬장 맨 위에 모셔 둔 그릇, 전화기만 만지작거리다 “다음에 밥 한번 먹자”며 미뤄 둔 오랜 인연들. 숨 가쁘게 살아온 우리의 장롱과 찬장에는 차마 쓰지 못하고 쌓아 둔 ‘언젠가’가 그렇게 가득하다.

젊은 날의 우리는 참 부지런히 살았다. 부모를 봉양하고 자식을 뒷바라지하고 직장과 사회에서 제 몫을 하느라, 정작 내 숨소리에는 귀 기울일 겨를이 없었다.

그러다 환갑을 넘겨 문득 거울을 보면 하얗게 센 머리칼과 깊어진 주름 사이에 덩그러니 서 있는 내가 보인다.

그 모습 앞에서 나는 영상이 전하는 세 가지 이야기를 곱씹게 되었고, 비슷한 길을 걸어온 분들께 그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첫째는 어제를 어제에게 맡겨 두라는 말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밤잠을 설치며 지난 일을 되짚는 날이 늘어난다. ‘그때 그 말은 하지 말걸’, ‘조금만 더 참을걸’, ‘그 사람을 어떻게 용서해야 하나’ 같은 아쉬움과 원망이 수십 년 전 일인데도 어제 일처럼 꼬리를 문다.

그러나 엎질러진 물 앞에 쪼그려 앉아 평생을 보낸다고 해서 물이 다시 그릇에 담기지는 않는다. 용서와 내려놓음은 상대를 위한 선물이라기보다, 내 마음의 방에서 미움이라는 불청객을 내보내는 나 자신을 위한 결단에 가깝다.

그 시절의 형편과 지혜로 우리는 이미 최선을 다했다. 부족했든 아쉬웠든 어제의 일은 지나간 세월에 맡기고, 오늘 내 가슴을 누르던 짐부터 하나씩 내려놓아 보면 어떨까.

둘째는 이제 내 차례라는 말이었다.

평생 남을 위해 살아온 사람일수록 “그럼 이제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나” 하는 물음 앞에서 낯설고 어색해진다. 행복의 열쇠를 자식의 성공이나 남의 반응에 맡겨 두면 기대가 큰 만큼 쓸쓸함도 커지기 쉽다.

자식은 제 삶의 무게를 스스로 짊어지고 걸어가는 독립된 인격체이니, 기꺼이 놓아주는 것이 부모가 줄 수 있는 가장 깊은 사랑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제는 남의 시선과 비교에서 벗어나 내 박자로 걸어갈 때다. 혼자 찻집에 앉아 차 한 잔을 마시는 작은 자유, 눈치 보지 않고 좋아하는 음식 한 그릇을 온전히 비우는 여유를 스스로에게 허락해 보자.

세상 모든 이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 남은 생의 주인은 배우자도 자식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다.

셋째는 ‘다음에’를 ‘오늘’로 바꾸라는 말이었다.

우리는 ‘다음에’, ‘형편이 좀 나아지면’이라는 말로 행복을 미뤄 왔지만, 그 ‘다음에’는 약속이 아니라 막연한 바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영상이 던진 가장 큰 경종이었다.

마음속에 담아 둔 고맙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은 오래 둔다고 이자가 붙지 않는다. 오지 않은 내일을 걱정하느라 오늘 하루를 흘려보내지 말고, 보고 싶은 인연이 있다면 오늘 전화기를 들어 보자.

아끼느라 비닐도 뜯지 않은 옷이 있다면 오늘 꺼내 입고 동네 한 바퀴를 걸어 보자. 아껴 둔 꽃무늬 그릇이 있다면 오늘 저녁 밥상에 올려 나를 위한 따뜻한 밥 한 끼를 담아 먹자.

우리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은 바로 오늘이다. 완벽하게 살아온 사람은 세상에 없다. 지나온 세월에 후회가 남는다면 인생을 잘못 살았다는 뜻이 아니라, 그만큼 매 순간 애쓰며 살아왔다는 흔적일 것이다.

장롱 속에 아껴 두었던 옷의 가격표를 싹둑 잘라내는 소리와 함께, 오늘을 내 인생에서 가장 좋은 날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

평생을 견뎌 온 거울 속의 나를 향해 “참 잘 살아왔다” 하고 따뜻하게 말을 건네며, 오롯이 나답게 걸어가는 두 번째 인생의 아침을 맞이하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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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이

CCK 솔루션 고문, 전 경호처 경호이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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