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는 지속가능월드네트워크의 기후위기 대응 및 에너지전환 관련 조사·분석 자료를 토대로 아시아엔이 재구성했다. <편집자>
강력한 엘니뇨가 태평양을 가로질러 미국 서부 해안의 해수면을 높이고 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이달 중 해수면이 일시적으로 최대 30cm가량 상승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고, 태평양 섬나라들은 다음 달 열리는 제3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1)를 앞두고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재원 확대를 촉구하고 있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은 10월 8일 발표한 엘니뇨 전망에서 강한 엘니뇨가 내년 1~3월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83%를 넘는다고 밝혔다. 적도 동태평양 일부 해역에서는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4도 이상 높아졌다. 엘니뇨가 해양과 대기뿐 아니라 해안 도시의 안전과 국제 기후협상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캘리포니아 해수면 최대 30cm 상승 전망…켈빈파가 원인
AP통신에 따르면 적도 태평양에서 형성된 거대한 해양 켈빈파가 북미 서부 해안으로 이동하면서 캘리포니아와 오리건, 워싱턴주 해안의 해수면이 이달 중 최대 약 30cm 높아질 수 있다. 해양 켈빈파는 바닷물이 거대한 파도처럼 해안으로 몰려드는 현상이 아니라, 넓은 해역의 따뜻한 물과 해수면 높이 변화가 파동 형태로 이동하는 자연현상이다.
이번 켈빈파는 시속 약 10km로 해안을 따라 북상하고 있다. 해수면이 15~30cm 상승하더라도 당장 대규모 침수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평소보다 높아진 해수면에 폭풍해일이나 만조가 겹치면 해안 도로와 주거지역, 항만시설의 침수 위험이 커질 수 있다.
특히 11월부터 내년 1월 사이에는 조수간만의 차가 크게 나타나는 킹타이드와 겨울철 폭풍이 겹칠 가능성이 있다. 이미 해안 침식으로 모래가 유실된 지역에서는 추가 피해를 우려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지난 9월 허리케인 마리의 영향으로 발생한 높은 너울이 남부 해안을 강타하면서 해변 모래가 대량 유실됐다. 라구나비치와 대나포인트, 샌클레멘티 등 오렌지카운티 일대는 해안 침식과 시설 피해에 대응하기 위한 비상조치를 취했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도 강력한 엘니뇨에 대비해 지난 9월 주 차원의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주정부는 취약 해안의 모래 보강과 시설 점검, 지방정부 간 재난대응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NOAA, 강한 엘니뇨 장기화 경고…해양 생태계도 영향
NOAA는 9월 전망에서 2026년 가을과 겨울에 매우 강한 엘니뇨가 나타날 확률을 90% 이상으로 제시했다. 당시 10~12월에 과거 관측 기록을 넘어서는 수준의 엘니뇨가 발생할 확률은 75%로 예상했다.
이어 10월 8일 발표한 최신 전망에서도 엘니뇨가 계속 강화되고 있으며 강한 상태가 내년 초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다만 실제 강도와 지역별 기상 영향에는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
엘니뇨는 적도 태평양의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높아지면서 대기 순환과 강수 분포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다. 지역에 따라 폭염과 가뭄, 집중호우를 유발하거나 기존 기상현상의 강도를 변화시킬 수 있다.
해양 생태계에도 영향을 준다. 따뜻한 해수가 연안을 따라 확산하면 차가운 심층수에 포함된 영양분이 표층으로 공급되는 용승 현상이 약화될 수 있다. 이에 따라 식물플랑크톤과 어류의 분포가 바뀌고 수산업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이러한 일시적인 해수면 상승이 장기적인 기후변화와 겹치고 있다는 점이다. 엘니뇨에 따른 켈빈파가 지나가면 해수면은 다시 낮아질 수 있지만, 지구온난화에 따른 장기적인 해수면 상승은 별개의 문제로 남는다.
높아진 해수면을 기준으로 일시적인 상승이 추가되는 만큼 과거에는 큰 피해 없이 지나갔던 만조와 폭풍도 앞으로는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태평양 섬나라들 “1.5도는 생존 문제”…COP31 앞두고 기후재원 촉구
같은 시기 남태평양에서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국제협상이 진행됐다. 10월 5일부터 8일까지 피지와 투발루에서 열린 COP31 사전회의에는 50여 개국 정부 대표와 국제기구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주요 의제는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내로 제한하는 목표와 청정에너지 전환, 해양 보호, 기후재원 확대였다.
COP31 의장인 무라트 쿠룸 튀르키예 환경·도시화·기후변화부 장관은 회의 기간 해수면 상승으로 국가 존립의 위협을 받는 투발루를 방문했다. 그는 1.5도 목표를 유지하는 것은 단순한 환경정책이 아니라 취약한 국가와 주민들의 생존 문제라고 강조했다.
태평양 섬나라들은 세계 온실가스 배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지만 해수면 상승과 해안 침식, 식수 부족, 농경지 염해 등 기후변화의 영향을 직접 받고 있다. 이들 국가에 기후위기는 먼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국토와 주거, 경제 기반을 지키는 문제다.
국제사회가 파리기후협정에서 합의한 1.5도 목표도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최근 국제기구들은 온실가스 감축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을 경우 1.5도 수준을 일시적으로 넘어설 위험이 커졌다고 경고하고 있다.
호주의 크리스 보웬 기후변화·에너지부 장관은 이번 사전회의에서 COP31 협상 결과를 의장국 주도의 결정문으로 도출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온실가스 감축과 에너지전환에 관한 국가 간 합의를 구체적인 행동으로 연결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화석연료 사용 축소와 선진국의 재정 지원을 둘러싼 이해관계는 여전히 엇갈리고 있다. 주요 에너지 수출국들은 급격한 화석연료 감축에 신중한 반면, 기후 취약국들은 감축 시기를 늦출 여유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태평양 기후기금 5억달러 목표…재원 확보는 여전히 부족
태평양 국가들이 강조하는 또 하나의 쟁점은 기후재원이다.
태평양 회복력 기금(Pacific Resilience Facility)은 기후재난에 취약한 섬나라들이 해안 방재시설과 식수 공급, 재해 복구, 지역사회 적응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마련됐다.
기금은 COP31까지 5억달러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현재까지의 국제사회 지원 약속은 목표액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호주와 영국, 피지 등이 자금 지원을 발표했으나 장기적으로 필요한 재원과 비교하면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태평양 국가들은 기후위기 대응 자금이 또 다른 부채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이미 관광업과 수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재정 기반이 취약한 국가가 기후재난 복구를 위해 대출까지 늘려야 한다면 경제적 부담이 더욱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선진국들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강화하는 동시에 피해가 집중되는 국가에 보조금 방식의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COP31은 11월 9일부터 20일까지 튀르키예 안탈리아에서 열린다. 이번 총회에서는 온실가스 감축과 화석연료 전환, 기후 적응을 위한 자금 확보 방안이 주요 협상 의제로 다뤄질 전망이다.
캘리포니아의 해안 침수, 한국에도 남의 일 아니다
캘리포니아 해안에서 나타나는 일시적인 해수면 상승과 태평양 섬나라들이 직면한 장기적인 해수면 상승은 원인과 시간 규모가 다르다. 그러나 두 현상 모두 해안 지역이 얼마나 기후변화에 취약한지를 보여준다.
한국 역시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항만과 산업단지, 주거지역이 해안에 밀집해 있다. 부산과 인천, 울산, 여수·광양 등 주요 항만도 해수면 상승과 태풍, 폭풍해일 등 복합적인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
특히 해안 침수 위험은 단순히 해수면이 얼마나 상승하느냐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태풍이 접근하는 시기와 만조가 겹치는지, 방파제와 배수시설이 충분한지, 배후지역에 얼마나 많은 인구와 산업시설이 밀집해 있는지에 따라 피해 규모가 달라진다.
기존 방재시설의 설계 기준과 관리체계도 점검할 필요가 있다. 과거 기상자료를 기준으로 설계된 시설이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극한기상 상황에서도 충분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항만과 해안 산업시설에서는 침수 방지뿐 아니라 정전과 물류 중단에 대비한 비상전력과 대체 운송체계도 중요하다.
기후 적응과 에너지전환, 함께 추진해야
기후재난 대응은 방파제와 배수시설을 확충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폭염과 집중호우, 해안 침수에 대비하는 기후 적응 정책과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에너지전환 정책이 함께 추진돼야 한다.
기후변화로 기온이 상승하면 냉방용 전력수요가 증가하고, 폭염과 폭풍은 발전소와 송전망의 운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전력 공급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와 에너지저장장치(ESS), 분산형 전원, 전력망 보강을 종합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확대는 온실가스 감축의 주요 수단이지만, 기상조건에 따라 발전량이 변동하는 특성도 있다. 따라서 저장설비와 계통 운영기술, 수요관리 체계를 함께 발전시켜야 안정적인 에너지전환이 가능하다.
도시에서도 폭염 저감시설과 녹지, 빗물저류시설을 개별적으로 설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재난 상황에서 기능하는지 점검해야 한다.
장기적인 온실가스 감축이 미래의 위험을 줄이는 정책이라면, 기후 적응은 이미 진행되고 있는 위험으로부터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정책이다.
예측은 경고에 그치지 않아야 한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엘니뇨가 몰고 올 수 있는 해안 피해를 예상하고 주정부가 선제적인 비상조치에 나섰다. 태평양 섬나라들은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COP31 협상에서 구체적인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두 지역의 대응 방식은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기후위기를 먼 미래의 가능성으로 보지 않고 현재 준비해야 할 위험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기후예측의 가치는 미래의 날씨를 맞히는 데만 있지 않다. 예상되는 위험을 바탕으로 시설을 점검하고 피해를 줄일 시간을 확보하는 데 있다.
앞으로 엘니뇨가 실제로 얼마나 강해지고 미국 서부 해안에 어느 정도 피해를 일으킬지는 기상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COP31에서도 각국이 어느 수준의 감축과 재정 지원에 합의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해수면 상승과 기후재난에 대한 과학적 경고는 이미 충분히 축적되고 있다. 캘리포니아의 비상사태와 태평양 섬나라들의 기후재원 요구는 서로 다른 지역에서 제기된 같은 질문이다.
기후위험을 얼마나 정확히 예측하느냐를 넘어, 그 예측을 얼마나 신속하게 정책과 행동으로 옮길 것인가. 2026년 가을, 태평양을 사이에 둔 두 지역이 국제사회에 던지는 과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