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칼럼

뭘 잘못 드셨습니까?

빵 한 조각과 물 한 잔이 놓인 소박한 식탁. 일용할 양식을 구하기에 앞서, 의에 대한 허기와 갈증을 돌아본다. AI 생성 이미지.

마태복음 5장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마 5:6)

배탈이 나면 배가 고프지 않습니다. 장염에 걸리면 가장 먼저 잃어버리는 것이 식욕입니다. 몇 끼를 굶어 위장이 텅 비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음식을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입맛이 없습니다. 영양분이 가장 필요한 순간에 몸은 음식을 거부합니다.

배탈이 낫고 있다는 신호가 있습니다. 입맛이 돌아오는 것입니다. 배가 출출해지고, 설사로 빠져나간 수분을 채우기 위해 갈증이 몰려옵니다. 허기와 갈증, 그것은 내 몸이 정상적인 생명 활동을 회복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왜 우리는 하나님의 의에 주리지 않을까요? 왜 십자가의 은혜에 대한 타는 듯한 목마름이 없을까요? 배탈이 났기 때문입니다. 단단히 체했거나 장염에 걸렸습니다.

뭘 잘못 먹은 것입니다. 탐욕과 허영심을 ‘부어라 마셔라’ 합니다. 마음을 먹어도 독한 마음, 상한 마음을 먹습니다. 사람들의 달콤한 인정을 매일같이 마십니다. 세상이 차려놓은 식탁에서 ‘똥인지 된장인지’ 분간도 못하고 찍어 먹다가 탈이 나는 것입니다. 상했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먹어서 식중독에 걸리는 것입니다.

진짜 심각한 문제는 이 증상이 만성이라는 점입니다. 너무 오랫동안 속이 더부룩한 상태로 지내온 나머지, 의에 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않은 상태가 일상의 ‘기본값(default)’이 되어버렸습니다. 영혼이 말라비틀어지는데도 굶주림과 갈증을 느끼지 못합니다.

만성화된 포만감에는 진정한 만족감이 없습니다. 허기를 채우는 만족감은 배고픈 사람만이 누릴 수 있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배고픔을 느낄 여유를 주지 않습니다. 알고리즘은 우리의 영혼에 무언가를 쉬지 않고 공급합니다. 그걸 받아먹느라 우리 영혼의 위장이 쉴 틈이 없습니다. 항상 배부른 상태로 살면 어떻게 될까요?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입니다. 이건 단순히 내 삶의 필요를 채워달라는 기도가 아닙니다. 생각해 보면 배부르게 해달라는 기도와는 다소 거리가 있습니다. 이 기도를 “나를 매일 굶주리게 하소서”라는 요청으로도 읽어봅니다. 배탈을 고쳐달라는 절규이자 허기와 갈증을 회복시켜달라는 간구입니다. 배고픈 자에게는 일용할 양식이 간절합니다. 배부른 자에게 이 기도는 종교적 수사일 뿐입니다.

습관적으로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기 전에, 오늘은 허기와 갈증을 먼저 달라고 기도해 봅니다. 더부룩한 속이 가라앉을 때까지 쓸데없는 세상 군것질을 멈추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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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문섭

베이직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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