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칼럼

‘성찬’의 본질…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나는 오늘 무엇을 먹으며 누구와 연합하고 있을까요? 성만찬에 참여하면서도 선악과를 먹을 수 있고, 일상의 식탁에서도 우리는 주님을 먹고 마실 수도 있습니다.-본문에서. 그림은 ‘최후의 만찬’ 후안 후아네스 작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고전 11:23-24)

먹는 것, 마시는 것, 정말 중요합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사람은 먹을 것 때문에 마음이 열리기도 하고 상하기도 합니다. 잘 먹고 잘 마시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할 수도 있지만 잘못 먹고 잘못 마시면 한 영혼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먹고 마시느냐에 따라 ‘주의 만찬’이 될 수도 있고 ‘자기의 만찬’으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고전 11:21).

특정 형식과 순서를 갖추고 경건한 분위기를 연출하면 성찬식이 될까요? 성만찬에 참여하면서 예수님과 아무 상관없이도 빵과 잔을 받을 수 있습니다. 반면, 배가 고프고 사람이 고프고 사랑이 고픈 상대에게 밥 한 끼를 사는 그 식탁에 주님이 함께하시면, 그것을 주님의 만찬이라 말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 상대가 그 식탁에서 경험하는 것이 그저 배부름뿐일까요?

성찬의 본질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어느 타이밍에 먹을까, 빵은 찢어 먹어야 하는지 찍어 먹어야 하는지, 포도주로 해야 하는지 편의점에서 파는 포도주스는 안 되는지에 있지 않습니다.

먹고 마실 때 주님을 기념하는가? 그것이 기준입니다. “나를 기념하라.” 이것이 성찬의 본질이요 목적입니다. 살이 찢겨나가는 고통을 견디실 정도로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빵을 씹어서 삼키는 동안 느껴보고, 피 흘리기까지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포도주가 목으로 넘어가는 동안 느끼는 시간이 성찬입니다.

예수님이 왜 하필이면 음식을 먹는 행위를 가지고 당신을 기념하도록 하셨을까요? 더 엄숙하고 경건한 종교적 형식이 많았을 텐데, 먹을 것을 가지고 당신 자신을 기념하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에덴동산에 만드신 단 한 가지 금기 사항, 그것도 취식 가능한 열매 형태였습니다. 선악과도 먹을 것이었습니다.

인간이 외부의 것과 하나 되고 연합하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먹는 것입니다. 아담은 선악과를 먹음으로 죄가 내 안에, 내가 죄 안에 거하는 상태가 되었고, 우리는 성만찬을 통해 그리스도가 내 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을 경험합니다.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고전 11:28-29)

나는 오늘 무엇을 먹으며 누구와 연합하고 있을까요? 성만찬에 참여하면서도 선악과를 먹을 수 있고, 일상의 식탁에서도 우리는 주님을 먹고 마실 수도 있습니다.

석문섭

베이직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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