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대학병원 의료사고로 8개월째 무의식상태 16살 주희 엄마의 ‘소박하고 간절한 바람’

아시아엔은 서울의 한 대학병원의 의료사고로 의식을 잃은 딸의 어머니가 지난 8월 21일 한국환자단체연합회(환연)가 주최한 ‘환자샤우팅카페’(Patient Shouting Café) 행사에서 밝힌 호소문 전문을 게재합니다. 호소문을 쓴 류선 씨는, 지난해 12월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발생한 의료사고로 식물인간 상태가 된 딸 김주희 양(당시 중3)의 현재 상태와 사고 경위를 담담히 전했습니다. 주희 양은 50분간 16차례 기관삽관 재시도 후에 심정지와 광범위한 뇌손상을 입었으며, 현재 8개월째 의식 없이 중환자실에 누워 있습니다. 류선 씨는 이 사건이 단순한 한 가정의 불운이 아닌, 병원측의 무성의와 제도의 부재가 낳은 구조적 문제이며 ‘의료 난민’으로 방치될 수 있는 현실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는 피해자가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며 치료받을 수 있도록, 국가가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는 간절한 호소를 전하고 있습니다.<편집자>
안녕하십니까.
저는 지금쯤이면 고등학교 1학년이 되어 여름방학을 즐기고 있었을, 저희 집의 귀염둥이 김주희의 엄마 류선입니다.
하지만 겁이 많아 늘 제 곁을 떠나지 않던 아이는, 지난해 12월 10일 가장 안전할 것이라 믿었던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발생한 의료사고 이후 8개월째 의식 없이 홀로 누워 있습니다. 저는 조금 전에도 면회를 다녀왔습니다.
현재 아이 상태
▸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눈을 깜박이거나 하품을 하거나, 통증에 반응하는 정도뿐입니다.
▸ 위루관을 통해 영양을 공급받으며, 배설은 기저귀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 기관절개를 한 뒤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호흡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아이의 성장과 치료 과정
주희는 1.8kg의 미숙아로 태어나 처음 만남도 인큐베이터 안에서였습니다. 너무 작고 연약해 품에 안는 것조차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렇게 자라던 주희는 재활의학과에서 물리치료를 통해 걸음을 배우고, 돌이 훌쩍 지난 후에야 혼자 걷기 시작했습니다. 지적장애가 있어 인지& 감각통합치료, 그룹체육 , 미술치료 등 다양한 특수치료를 꾸준히 받아왔습니다. 어린 주희는 다소 벅찬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늘 웃음을 잃지 않았고, 좀처럼 짜증을 내지 않는 사랑스러운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엄마로서는 건강하게 낳아주지 못한 것이 늘 미안하고 안쓰러운, 아픈 손가락 같은 딸이기도 했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키가 자라자 척추측만이 점점 심해졌습니다. 발레와 수영, 물리치료까지 병행하며 변형을 막아보려 애썼습니다. 그러던 중, 중학교 3학년이던 지난해 11월 26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정형외과 교수로부터 척추측만증 교정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특히 경추측만이 심했던 주희는 교정을 하지 않으면 매년 척추가 계속 휘어진다는 진단을 받았고, 1년 넘게 여러 병원을 전전한 끝에 어렵게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사고의 경위
아이는 수술 후 회복 과정에서 심한 폐렴이 발생하여 2024년 11월 30일 중환자실로 급히 이송되었고, 기관삽관 상태에서 치료를 받던 중 10일째 되는 날 자정 무렵, 잠에서 깨어 스스로 삽관 튜브를 뽑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자가발관 방지를 위해 손목 보호대가 적용되어 있었으나, 아이는 직접 튜브를 제거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당직 중이던 호흡기내과 교수, 마취과 교수, 기도 확보팀이 50분 동안 16차례에 걸쳐 기관삽관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삽관에 실패하면서 심정지에 이르렀고, 17분간 심정지 상태를 겪은 후 기관절개를 통해 기도를 확보하였습니다. 그 결과 광범위한 뇌 손상이 발생했습니다. 의무기록지에는 기관삽관 재시도가 9차례로 기재되어 있었으나, 법원을 통해 확보한 CCTV 영상에는 실제로 16차례 시도가 있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주희는 척추측만증으로 인해 기도가 길고 좁으며 휘어진 특이 구조를 가지고 있었고, 의료진은 이를 이미 수술 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척추측만증 교정 수술 당시 마취과 담당의가 보호자에게 “삽관이 쉽지 않겠지만 최선을 다하겠다”고 설명한 사실이 있었으며, 중환자실로 이송될 당시에도 세 차례 시도 끝에 간신히 삽관이 이루어졌던 전례가 있었습니다.
사고 발생 5일 전, 이러한 기도의 특수 구조로 인한 응급상황에 대비해 이미 이비인후과에 기관절개 협진이 요청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고 당시 당직 의료진은 기관절개라는 대안 없이 무리하게 기관삽관만을 반복 시도하였고, 아이의 기도 특성에 관한 확인과 공유 과정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후의 상황
저희는 지난 4월 8일이 의료사고에 대해 민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판결까지 최소 2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 사이 병원은 사고 당시 아이의 처치에 대한 보호자의 질문도, 병원장 정식면담에 응답도 없이 오직 “의료적으로 안정이 되면, 즉, 폐렴이 가라앉으면 요양병원으로 전원하라”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격리치료가 필요한 항생제 내성균(CPE)을 보유한, 산소호흡기 의존 환자입니다.
서울·수도권 내 30여 개 병원에 전원을 문의했지만,
▸ 소아 전문병원에서는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입원 대기조차 허락되지 않았고,
▸ 성인 내과에서는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진료가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 산소 사용량이 많아 치료가 어렵다는 사유로 거절되었고,
▸ 내성균 감염으로 감염 관리가 어렵다는 이유로도 거절되었습니다.
결국 몇몇 요양병원을 제외하면 갈 곳이 없습니다.
더욱이 지난 4월 이후 폐렴이 네 차례 재발하였고, 욕창 부위에서도 균이 검출되었습니다. 척추측만으로 인해 상반신의 골격 구조가 일반적이지 않아 객담 배출이 어렵고, 엑스레이를 통한 폐 상태 확인에도 제한이 있어 폐렴에 특히 취약한 상황입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요양병원으로 전원된다면 폐렴 재발은 불가피하며, 그때마다 응급실을 찾아 사설 구급차로 전전할 수밖에 없는, 이른바 ‘의료 난민’ 상태에 놓일 것이 분명합니다.
피해가족의 현재 상황
의료사고로 중증장애를 입은 미성년 환자에게 병원은 치료를 포기하라는 압박을 가하고 있습니다. 책임은 외면한 채, 무기한의 침묵과 방관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재판이 끝난다 해도, 아이는 존엄은 커녕 치료를 구걸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가해자는 침묵하고, 국가는 제도가 없다는 이유로 외면하며, 피해자는 무력하게 버려집니다. 부모인 저희는 그 잔혹했던 50분과, 너무도 외롭고 힘들었을 지난 8개월의 중환자실 시간을 견뎌내고 있는 아이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이러다 아이를 다시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절망, 분노, 그리고 좌절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병원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의료사고 피해자가 국가와 제도로부터 보호받지 못해왔다는 사실을, 그리고 거대 대학병원을 상대로 한 개인이 정당한 권리를 끝내 지키지 못해왔다는 현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병원은 무대응으로 일관하며, 가족이 지쳐 스스로 물러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희의 질문
사고 당일, 면회 시간에 친구의 음성 메시지를 들으며 미소 짓고, 제게 휴대전화를 가져 달라 손짓하던 아이는, 아무런 잘못도 없이 의료사고 피해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유만으로 지금까지 무기력하게, 치료조차 구걸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이 일은 결코 한 개인의 불운이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어느 가정에나 닥칠 수 있는 일입니다.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는 것은 곧 제도의 실패이자 국가의 책임 방기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정부 역시 “같은 장소에서 같은 방식의 사고가 반복되는 것은 구조적 문제이며, 국가가 책임져야 할 사안”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의료사고 피해자가 생명과 존엄을 지키지 못하는 현실을 국가가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유가족으로 만나 위로를 건네기 전에 피해자가 안전하고 존엄하게 치료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재발을 방지할 책임은 국가에 있습니다.

저희의 요청
저희가 병원에 바라는 것은 아이를 예전 상태로 되돌려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저희의 바람은 단 하나, 아이가 안정된 상태에서 재활병원이나 중환자실을 갖춘 2차 종합병원으로 안전하게 전원할 수 있을 때까지, 일반 병실에서 의사의 직업윤리에 따라 환자에게 필요한 최선의 치료를 지속해 주는 것입니다.
국가에 바라는 것도 결코 거창한 제도가 아닙니다. 다만 다음과 같은 기본적인 안전망이 마련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중환자실에서 신체보호대가 제대로 관리되어, 환자가 스스로 기도삽관 튜브를 빼는 환자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
▸의무기록지에 기재된 기도의 특이 구조 등 환자 치료와 안전에 중요한 정보가 다른 의료진에게도 공유·확인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출 것
▸환자가 상급종합병원을 찾는 가장 큰 이유인 진료과 간 협진이 실제로 원활하게 작동되도록 제도화할 것
▸중증 피해자가 병원의 치료 포기, 전원 압박, 책임 회피로 인해 기본권을 침해당하지 않도록 보호할 것
▸갑작스러운 사고로 충격에 빠진 보호자가 환자 간호에 전념할 수 있도록, 생소한 의료·행정·법률 절차를 홀로 감당하다 지쳐 포기하지 않도록 지원 체계를 마련할 것
▸장기 치료와 돌봄이 필요한 경우, 환자가 ‘의료 난민’이 되지 않도록 통합적이고 지속 가능한 국가 지원 체계를 마련할 것
저희 가족의 호소는 단순히 한 아이의 문제가 아닙니다. 제2, 제3의 김주희와 그 가족이 저희와 같은 고통을 겪지 않도록, 국가가 끝까지 책임 있게 나서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끝으로 “다시는 이 나라에 국가의 부재로 인한 억울한 국민이 생기지 않도록 함께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대통령님이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민사에 대한 부분은 법정에서 다루어 질 테지만, 무엇이 그리 억울한지 귀 기울여 들어봐 주십사 간청드립니다.
*다음은 MBC 뉴스데스크 보도 제목과 링크 주소입니다.
[MBC] 수술 뒤 의식불명 17살 소녀‥병원은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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