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오늘의 시] ‘아버지의 가계부’ 김수원

아버지는 가계부를 족보처럼 적었다. 칠 남매 꾸리며 적은 가계부 숫자들이 족보의 이름처럼 빼곡했다. 아버지는 대청마루에 앉아 주판알처럼 햇살을 튕기고 엄마는 그 옆에서 밥을 쓸 듯 수입과 지출을 꼼꼼하게 적고 십 원이 비어도 다듬는 그런 살림살이 일곱 남매는 족보에 이름도 올리지 못했으면서 가계부 주변을 맴돌았다.
아버지의 하루는 가계부로 시작해 가계부로 끝나고, 일곱 남매는 도시락으로 시작해 도시락으로 끝나고, 엄마는 흘린 숫자를 밥풀처럼 주워 담는 그런 삶. 해가 져야 하루가 끝나는 다른 집과 달리 우리 집 하루의 마무리는 가계부를 덮는 일이었다.
가계부만큼 내 빚도 늘었다. 가령 가을운동회가 있던 날 아버지가 내게 사준 분홍색 운동화 가격이 천 원이어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나는 천 원을 빚진 여섯째가 되었다. 큰딸 운동화 만 원, 큰아들 납입금 30만 원, 수입과 지출의 비고란처럼 방이 한 칸씩 늘어가고 방을 치우며 근심이 들어오고 근심이 나가고 그렇게 대차대조표를 맞춰보던 우리 집 가계부 빼곡한 항목을 족보에 올릴 이름처럼 읽던 우리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