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잠깐묵상] 왜 서원인가?

https://youtu.be/r_TQ66i3OY8?si=7ikQXdX9rh2FlprM

레위기 27장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만일 어떤 사람이 사람의 값을 여호와께 드리기로 분명히 서원하였으면 너는 그 값을 정할지니” (레 27:2)

레위기는 27장으로 마무리됩니다. 복잡한 제사법으로 시작하여 명령과 규율로 가득한 책인데, 그 마지막이 ‘서원’입니다. 다소 뜻밖이지 않습니까? 왜 하필 서원일까요?

서원의 핵심은 자발성에 있습니다. 자발성이야말로 율법과 규례의 꽃입니다. 하나님은 ‘자원하는 마음’을 무척 귀하게 여기십니다. 우리를 프로그래밍된 기계나 로봇으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자동화된 신앙, 기계적인 순종이 아니라, 사랑과 기쁨으로 우러나오는 헌신을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억지로 드리는 예배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의무감에 젖을수록 영혼은 점점 메말라 갑니다. 자발성이 결핍된 예배에는 기쁨도 감동도 없습니다. 은혜가 아니라 강박과 불안이 신앙을 이끌어 가기 시작하면, 신앙은 나를 착취하고 타인을 억압하는 도구로 변질됩니다. 정죄와 판단이 신앙의 언어가 되고, 권력 의지가 강하게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드리는 예배는 냄새조차 맡기 싫다고 하셨습니다. 자발성이 증발하고 남은 위선이라는 찌꺼기에서 나는 냄새 말입니다.

신앙이 성숙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하나님의 뜻을 거부할 자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을 사랑하기에 스스로 그 뜻을 따르기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성숙한다는 것은 점점 더 자발적이 된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서원이라는 레위기의 결론은 거룩한 삶의 종착지가 결국 자발적 헌신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레위기 27장의 서원 규례에는 독특한 점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서원은 취소가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다만, 취소를 위해서는 일정 값을 치러야 합니. 하나님은 노예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택의 기쁨과 선택에 따른 책임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들의 믿음이 자발적인 서원을 통해 꽃을 피우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자발성이야말로 가장 큰 자유이며 영성입니다. 인간은 자발적일 때 가장 자유로울 수 있도록 창조되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갈 5:13)

레위기 구성

석문섭

베이직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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