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잠깐묵상] 복수에 선긋기…’동해보복법’과 ‘비보호좌회전’

https://youtu.be/Oy51YFrAtVs?si=gmhZYtzfrlpx5T6r

레위기 24장

“상처에는 상처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을지라 남에게 상해를 입힌 그대로 그에게 그렇게 할 것이며”(레 24:20)

분노는 다루기 어려운 감정입니다. 억누르기만 하면 화병이 되고, 표출한다고 해서 반드시 해소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분노는 표출할수록 더 커지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분노의 적정선을 찾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누군가 내게 피해를 입혔을 때, 똑같이 되갚으면 분노가 가라앉을까요? 현실에서는 한 대 맞고 나서 한 대만 때리고 끝나는 경우보다, 감정이 폭발해 걷잡을 수 없는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한쪽 눈을 잃었다고 해서 상대의 눈 하나만 빼앗고 멈출 사람이 있을까요? 복수의 충동은 더 큰 고통을 가하고 싶은 욕망으로 이어집니다. 분노는 끝을 봐야 풀립니다. 아니, 끝을 봐도 좀처럼 해소되지 않습니다.

“상처에는 상처,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이 원칙은 인간이 끝없는 보복을 향해 치닫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복수는 감정에 맡겨 둘 경우 끝없이 증폭되지만, 율법은 그것이 일정한 범위 안에서 멈추도록 선을 긋습니다. 이는 분노를 해소하기 위한 적극적 명령이 아니라, 오히려 무제한적인 보복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규제였던 것입니다.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신중하게 적용되어야 할 법적 원칙이지, 개인이 자유롭게 행사할 권리가 아닙니다.

이를 교통신호에 비유해 보면, “비보호 좌회전”과 비슷한 개념일 수 있습니다. 반드시 좌회전을 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특정한 조건이 갖춰졌을 때 신중하게 판단하여 허용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동해보복법’은 분노를 표출할 자유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판단 아래 극도로 신중하고 최소한으로 적용되어야 할 규례였습니다.

그리고 이 율법은 신약 시대에 와서 대폭 개정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율법보다 더 나은 법을 알려주셨기 때문입니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마 5:38-42)

석문섭

베이직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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