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아시아정치칼럼

이집트축구장 집단살해 배후는 군부정권?

2일(현지시각) 이집트 축구팬들이 카이로의 스핑크스 광장에 모여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신화사)

2011년 2월11일 독재자 무바라크가 권좌에서 내려온 후 지난 1년간 이집트 군부는 혁명이 무색하리만큼 온갖 만행을 저질러 왔다. 조금이라도 이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과거의 무바라크 대통령과 지금의 군부가 전혀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간의 만행이 너무 많아서 일일이 다 열거할 수도 없지만 바로 그제인 2월1일, 최악의 사건이 발생했다.

이집트 북쪽 포트사이드에서 열린 알 아흘리(Al-Ahly)와 알 마스리(Al-Masri)간의 축구 시합에 수 백만 명의 이목이 집중됐고 필자도 눈을 빛내며 경기를 지켜본 축구 팬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2시간이 넘는 경기 내내 주심이 경기를 중단시키거나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다가 그냥 종료 휘슬을 불어버린 것이 이상했다. 카이로에서 포트사이트로 원정 온 알 아흘리 팀을 향해 폭죽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오프사이드 라인의 선심들조차 날아온 돌을 가리키며 주심에게 경기를 중단할 것을 요청했지만 주심은 이런 모든 것들을 다 무시하고 오히려 원정팀의 주장 호삼 갈리(Hosam Ghali)에게 레드 카드를 주었다.

결과는 홈팀의 승리로 돌아갔는데 이 상황에서 참으로 희한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승리한 홈팀의 관중이 경찰의 아무런 제재 없이 각종 둔기와 돌 등을 가지고 패배한 원정팀 관중석 쪽으로 물밀듯이 몰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원정팀 관중들은 순식간에 갇혀 버렸고 이 와중에서 76명이 사망하고 1000여 명이 부상했다.

포트사이드 축구장에서의 비극이 단순히 축구경기 때문이거나 수도인 카이로 사람들이 시골인 포트사이드 사람들을 놀려서 벌어진 것이 아님은 자명한 일이다. 희생자들은 전부 알 아흘리의 팬들로서 바로 작년 이집트 혁명 때 최전방에 섰던 이들이다.

무바라크는 실제적 처벌없이 그저 보여주기 위한 재판에 참석하는 것으로 독재의 책임을 지고 있다. 그의 부인인 수잔은 독재자의 부인으로서 누렸던 호사를 책으로 냄으로써 수 백만 달러의 인세를 벌어들이고 있다. 그의 아들들은 아버지와는 별개로 그들의 기득권을 계속 누리고 있다. 그의 부하들은 다시 권력을 잡으려고 조용히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이집트 군부의 비호 아래 이뤄지고 있다.

앞으로도 더 많은 만행이 있을 것으로 충분히 예상되며 그에 따라 더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릴 것으로도 충분히 예상된다. 현재 이집트 군부 앞에는 두 가지 길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 중에서 새로운 독재자를 뽑거나, 아니면 지금 매일 반복하고 있는 유혈 사태 방치를 계속하거나.

필자가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각에도 수백 명의 시위자들이 내무부 앞에 모여 시위를 하고 있고 수 천명의 사람들은 타흐리르 광장으로 가 이집트 혁명 1주년을 기념하고 있다. 4일은 낙타 전투(Battle of Camel)가 발발한 지 꼭 1년이 되는 날이다. 지금으로부터 꼭 1년 전, 무바라크 정부는 낙타 부대를 시위 현장으로 보내 시위의 싹이 혁명이라는 나무로 자라는 것을 차단하려 했었다.

그때로부터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이집트 국민들이 자유와 정의를 누리려면 아직도 싸워야 할 전투가 많이 남아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만행을 저지른 자들을 처벌하지 못하는 한, 이집트 혁명 1주년을 기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아시라프 달리

이집트, 아시아엔(The AsiaN) 아랍어판 편집장, 아시아기자협회장, 실크로드 문학 시리즈, 이집트(The Silk Road Literature Series)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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