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든버러 백파이프와 용산에서 만난 전쟁의 기억…”그들은 늙지 않는다”

에든버러에서 한 곡의 백파이프 연주를 들었다. 웅장한 행진곡을 기대했지만, 들려온 것은 전혀 다른 음악이었다. 그 소리는 앞으로 나아가라고 독려하는 음악이 아니었다. 떠난 사람을 뒤돌아보며 부르는 애도의 노래였다.
곡 이름은 Lord Lovat’s Lament였다. 스코틀랜드 고원의 바람을 닮은 백파이프 소리는 길게 울렸다가 천천히 사라졌다. 마치 다시 돌아오지 못할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듯했다. 그 순간 나는 몇 년 전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찍어 온 한 장의 사진을 떠올렸다.
그날 나는 전시관에 전시된 육필편지들을 읽고 있었다. 젊은 병사들이 가족과 친구에게 남긴 마지막 글이었다. 짧은 문장 안에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큰 사랑과 책임감이 담겨 있었다. 그 옆에서 나는 Laurence Binyon의 시 한 구절을 만났다.
“They shall grow not old, as we that are left grow old.”(그들은 늙지 않는다. 우리처럼 남겨진 사람들이 늙어가는 동안에도.)
나는 그 문장이 마음 깊이 다가와 사진으로 남겼다. 당시에는 그 시가 가진 깊은 의미를 다 알지 못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뒤 다시 그 사진을 보게 되었다. 어린 시절 읽었던 강소천의 동화 <꿈을 찍는 사진관>이 떠올랐다.
1954년에 발표된 이 작품의 주인공은 전쟁으로 고향을 떠나온 실향민이다. 그는 어린 시절 함께했던 친구를 잊지 못한다. 어느 날 찾아간 신비한 사진관에서 그는 자신이 그리워하던 꿈을 찍는다. 잠에서 깨어 받아든 사진을 보고 그는 놀란다. 사진 속 친구는 어린 시절의 모습 그대로인데, 자신은 세월이 흐른 현재의 모습으로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떠난 사람은 그때 그 모습으로 남아 있고, 살아남은 사람만 시간이 흐른 것이다. 나는 이 장면이 전쟁의 기억을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전쟁에서 떠난 젊은이들은 늙지 않는다. 그들은 마지막 편지를 쓰던 모습으로, 마지막 행군을 떠나던 모습으로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러나 남겨진 우리는 나이를 먹는다. 사진 속의 사람과 그 사진을 바라보는 사람 사이에는 수십 년의 시간이 놓여 있다. 그럼에도 기억은 두 시간을 이어준다. 한 장의 사진이 책갈피처럼 기억을 열어주듯, 결국 중요한 것은 이미지가 아니라 마음속에 남은 사람이다.
그래서 전쟁기념관은 단순히 과거를 전시하는 장소가 아니다. 그곳은 멈춰진 시간 속에서 기억 속에 살아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공간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이름을 읽는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묻게 된다.
“당신은 누구였습니까?”
“무엇을 사랑했습니까?”
“무엇을 지키기 위해 떠났습니까?”
스코틀랜드의 애도곡과 한국전쟁 당시의 노래는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지만 같은 마음을 담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의 진중가요에는 <전우야 잘 자라>가 있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그것은 살아남은 사람들이 앞으로 나아가야 했던 노래였다.
반면 백파이프의 lament는 잠시 멈춰 서서 떠난 사람을 기억하는 노래였다. 하나는 행군이고, 하나는 애도이다. 그러나 두 노래가 만나는 곳에는 하나의 약속이 있다. 잊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전쟁은 사람을 죽인다. 그러나 기억은 사람을 다시 불러온다. 에든버러의 백파이프 소리는 바람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용산에서 찍어 온 한 편의 시와 이름 없는 병사들의 육필편지는 아직도 내 안에 남아 있다.
시간은 사람을 늙게 만든다. 그러나 기억은 사람을 다시 젊게 만든다.
그들은 늙지 않는다. 우리가 그들을 기억하는 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