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오늘의 시] ‘아버지’ 이희국

아버지와 아들

아버지는 언제나 돌아서 있었다
명문가의 고학력 아버지
하수들 설치는 꼴 보기 싫어 시대의 뒤편만 찾아다녔다
세월의 회오리에 청운의 꿈 부서지고
무너진 권투선수처럼 퍼렇게 멍든 채
역사의 태풍은 모질어
등록금 없어 어머니가 사방으로 뛰어다닐 때,
배워봐야 쓸모없는 책 다 태워버린다고 소리치고 나가던 아버지
멀리서 귀뚜라미소리보다 작은 울음이 들려오곤 했다
쌀독이 바닥을 드러내면
친구 같은 라디오를 들고 나갔고
한계까지 볼륨을 올린 듯 라디오가 울었다
골목이 떠나가도록 울리던 광복20년 연속극
여보시오 백범 제발 나를 도와주시오… 성우 구민의 목소리
다섯 식구가 귀로 먹는 밥이었다.
독립문표 메리아스 둑방 아래 단칸방
언제 꺼질지 모르는 백열등이 불안으로 깜빡거렸다
아버님 이름으로 아들이 첫 집을 사자,
35년 만에 가장 화난 얼굴로 뛰어오신 아버지

너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 무슨 억한 마음이냐!
아니요, 아버지니까요
부모님 집 사드리는 게 소원이었다고
아버지와 얼굴을 맞대고 한참이나 울었는데

15년이 지나 영정으로 마주한 아버지
활짝 웃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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