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결혼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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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포먼스 ‘금기’가 풍자하는 현대 결혼식

9월27일 저녁, 서울 논현동 ‘플래툰 쿤스트할레’에 젊은이들이 몰려들었다. 외국인도 제법 눈에 띄었다. 오후 6시30분 예정된 ‘특별한 결혼식 퍼포먼스’를 관람하기 위해서다. 70평 남짓 공연장엔 100여명이 신랑 신부의 일거수 일투족에 눈길을 주었다. 퍼포먼스 이름은 ‘금기’.

6시45분 신부역을 맡은 박준희(프랑스 낭뜨국립무용단원,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씨와 신랑역을 맡은 박종현(한양대 겸임교수)씨가 공연장 한 가운데 설치된 무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신부는 붉은 드레스, 신랑은 검은 정장을 입었다. 발엔 아무 것도 신지 않은 맨발. 한발 한발 떼는데 2~3초는 족히 걸렸다. 가로 세로 2m, 높이 50cm의 무대엔 양초가 40개 켜져 있었다. 무대까지 신랑 신부가 걸은 거리는 불과 20m, 한 걸음 한 걸음 그러길 5분, 드디어 무대에 오른다.

둘은 이내 손을 맞잡고, 허리를 감싸고, 둘이 하나 되는 퍼포먼스를 10여분 계속한다. 신부의 붉은 색 베일-무려 50m에 이르는-을 신랑의 붉은 핸커칩으로 묶어 무대 바닥에 버리며 결혼식은 마무리 된다. 두 사람은 결혼을 통해 그동안 자신들을 옭아매온 관습과 구태의연한 전통 등 과거를 단절하고 새로운 미래를 활짝 연다는 뜻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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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부터 저녁(황혼)에 열리는 결혼식을 예술적으로 풀어간 이날 퍼포먼스는 40분이 채 안 걸렸지만, 관객들 시선은 어느새, 통속화된 우리네 결혼식 모습과 오버랩됐다. 신랑 신부 두 사람의 새로운 맺음을 기리기는 뒷전. 집안을 과시하고, 부자와 권력자에게 쏠리는 블랙홀 같은 결혼문화를 이날 ‘금기’는 조용하지만, 날카롭게 풍자했다.

이날 공연을 기획 연출한 이경화 아티스트는 “우리의 전통혼례는 하늘(양)과 땅(음)이 만나는 혼시에 이뤄졌다”며 “그 순간에 세상은 전부 붉은 색으로 물들어간다. 본래 의미가 사라지고 왜곡된 오늘 우리 결혼문화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위해 무대에 올렸다”고 했다. 이씨 자신, 2001년 8월 경복궁 옆 ‘갤러리 인’에서 이같은 퍼포먼스를 통해 전용남(국제변호사)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이경화 아티스트는 , 2001년 8월 경복궁 옆 ‘갤러리 인’에서 동일한 퍼포먼스를 통해 전용남(국제변호사)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사진=이경화 제공>

한편 ‘금기’ 퍼포먼스 후 같은 장소에서 ‘멈춰라, 생각하라-슬라보에 지젝-알랭 바디우 철학 대중강연’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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