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28일] 이란 혁명의 불길 점화
2004 ‘미국의 지성’ 수전 손택 타계
2004년 12월28일 ‘뉴욕 지성계의 여왕’, ‘대중문화의 퍼스트 레이디’로 불리던 미국 소설가겸 예술평론가 수전 손택이 71세의 나이로 마지막 숨을 거뒀다. 뉴욕 슬론-키터링 기념 암센터에서 백혈병으로 타계한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저서 <해석에 반대한다>(1966년)에서 “해석은 지식인이 예술과 세계에 가하는 복수”라고 주장해 전 세계 지성인들의 이목을 모았다. 그녀의 논평은 인권문제와 결부된 정치, 외교, 사회, 문화 등에 걸쳐 있었으며 성역이 없었고, 국경과 종교에 얽매이지 않았다. 1960년대 미국의 베트남전 반대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이란 작가 살만 루시디가 ‘악마의 시’로 이란 종교당국에서 사형선고를 받자 미국 문학계의 항의운동을 주도했다. 1993년에는 사라예보 내전에 반대하는 뜻에서 전쟁터인 사라예보에 가서 ‘고도를 기다리며’를 공연했다. 대 테러전쟁을 벌이는 미국에 대해 ‘특정한 미국의 동맹관계와 행동에 의해 초래된 행위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1987~1989년 국제펜클럽 미국지부 회장을 지낼 당시 그는 1988년 서울에 와 김남주, 이산하 시인 등 구속된 문인들의 석방을 한국 정부에 촉구했다.
독일출판협회는 지난 2003년 제55회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 그에게 평화상을 수여했다.?
1999 투르크메니스탄 종신 대통령에 니야조프
지난 2006년 12월 21일 타계한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투르크멘어 Saparmyrat Ny?azow) 전 투르크메니스탄 대통령이 종신 대통령에 당선된 날이 1999년 12월28일이다.
1970년 소련 공산당에 가입, 1985년부터 1990년까지 투르크멘 소비에트공화국의 당 서기장을 지낸 그는 1990년 투르크멘 의회의 결의안으로 단독 후보로 출마, 대통령에 당선된다. 이듬해인 1991년 투르크메니스탄 공화국이 독립된 뒤 1992년 이 공화국의 대통령으로 다시 출마 당선된다. 7년 뒤인 1999년 다시 종신 대통령에 선출됐다.
국민들로 하여금 자신을 ‘투르크멘바시(투르크멘의 아버지)’로 부르게 하는 등 신격화와 숭배를 유도한 정치인으로 악명이 높다.?
1991 북한, 나진-선봉 자유무역지대 선포
1991년 12월 28일 북한은 함경북도 나진시와 선봉군 일대를 나진-선봉 자유무역지대로 지정한다고 발표했다. 꼭 20년째 되는 날이다.
중국의 경제특구를 닮은 이 조치는 외국의 자본과 기술 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었다. 주요 프로젝트로는 사회간접자본시설 부문에서 나진항 확장, 청진서 확장, 선봉공항 신설, 나진-새별고속도로·나진통신 센터·선봉화력발전소·위성통신지구국 신설 등이 있었다. 공업 부문에서는 정유공장과 자동차조립공장, 오토바이 공장, 집적회로공장, 텔레비전 공장, 청량음료공장의 설립 등이 있다.
북한이 시도한 경제개방정책의 일환이었는데, 결과는 완전히 실패했다는 평가가 많다. 세계일보는 27일자 보도에서 “북한의 첫 ‘경제특구’로 야심차게 출발했지만, 관련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고 인프라도 취약했기 때문에 결과는 완전한 실패였다”고 보도했다.?또 현장을 찾은 김 위원장이 유흥업소 간판만 즐비한 모습을 보고 “황색바람만 들어오고 이게 무슨 특구냐”며 화를 냈다고 보도했다. 첫 개방 실험 실패 뒤 북한은 2002년 9월 신의주 행정특구를 전격 선포했다.?
1978 이란, 팔레비 국왕 퇴진 시위
1978년 12월28일 500만 명이 넘는 시위 군중들이 테헤란 중심가를 가득 메웠다. 시위대는 팔레비 당시 국왕의 퇴진과 미국 비난 구호를 외쳤다. 팔레비 국왕은 미국의 지원을 받아 25년 동안 강압적으로 이란을 통치해 왔다. 당시 석유업체의 파업으로 석유수출이 되지 않자 외화 수입이 90% 줄어들고 생활필수품은 바닥났다. 퇴진 시위가 전개된 지 11개월 만에 전국에 계엄령이 선포된다.
호메이니를 중심으로 초당파적인 반정부운동이 거세게 일자 마침내 팔레비 국왕은 이듬해인 1979년 1월 16일 국외로 망명한다. 이른 바 ‘이란혁명’이다. 해외에서 이란혁명을 지도하던 호메이니는 수도 테헤란으로 귀환해 임시 혁명정부를 조직하고 1979년 말 이슬람공화국을 수립한다. 1979년 이란혁명으로 쫓겨난 친미(親美) 팔레비 왕을 미국에 치료차 입국시키자 성난 이란 국민들이 테헤란의 미국대사관을 점령하고 인질극을 벌이기도 했다.?
1926 나석주,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 투척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1910~1918년에 조선토지조사사업을 실시, 조선왕실에 의해 무단 점유됐던 많은 토지(국유지)와 삼림·산야·미간지 등을 총독부 소유로 확보했다. 일본 이주민들은 동양척식주식회사(동척)를 통해 이런 토지들을 불하받고 이주비용·경영자금까지 융자받아 지주 계급이 됐다.
그 뒤 소작 빈농은 공동체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식민지지주제의 발전과 함께 토지에서 유리돼 갔다. 1920년대의 유랑농민의 격증, 일본·만주로의 이민 증가로 이어졌다. 동척은 또한 광공업 분야에 대한 금융사업과 투자사업을 벌였는데, 투자한 회사의 경영을 장악함으로써 동척계(東拓系)라는 기업집단을 형성했다.
결국 동척은 한반도의 자원을 체계적으로 수탈하는 본거지가 됐다. 의열단원 나석주는 이런 일제의 악랄한 수탈을 응징하려고 1926년 12월 28일 일제의 최대 수탈기관인 동척에 폭탄을 던졌다. 폭탄 투척은 그러나 불발로 그쳤고, 나석주는 일본 경찰과 총격전을 벌인 끝에 “조선독립만세”를 외치고 권총 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