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임시 대통령 ‘헌재소장’ 취임
헌재소장 “무르시 사퇴로 ‘혁명의 길’ 바로잡아”
무슬림형제단 의장 체포에 ‘경찰 국가’ 비판도…아랍권서 군부 개입 반응 엇갈려
이집트 헌법재판소의 아들리 만수르(67) 소장이 4일(현지시간) 임시 대통령으로 공식 취임했다.
또 이집트 군부는 무슬림형제단 지도부 인사 200여명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하고 모함메드 바디에 의장을 체포하는 등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 축출 하루 만에 신속하게 과도 통치 체제를 정비하고 나섰다.
카이로에 있는 국가 기관과 기업도 이날 속속 문을 열었고 한때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주유 대란, 정전 문제도 눈에 띄게 줄었다.
◇ 헌재 소장, 임시 대통령에 공식 취임
만수르 임시 대통령은 이날 오전 카이로 헌법재판소에서 국영TV로 생중계된 가운데 취임사에서 “무르시의 사임을 촉구한 대규모 거리 시위를 통해 영예로운 혁명의 길을 바로 잡았다”고 말했다.
그는 무르시 대통령의 뒤를 이어 이날부터 대통령 선거가 치러질 때까지 국가수반을 맡게 된다.
다만 대선 날짜 등 정권 이양과 관련한 구체적인 일정은 공개되지 않았다.
만수르 임시 대통령은 현재 이집트 전역을 장악한 군에 대해서는 “정치권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1992년부터 헌재 부소장으로 있다가 무르시 대통령의 실각 이틀 전인 지난 1일에야 헌재 소장으로 취임한 인물이다.
군부의 이번 개입에서 실력자로 등장한 압델 파타 엘시시 국방장관과 함께 당분간 정국의 중심에 설 주요 인사로 평가된다.
그는 취임식 이후 기자들과 만나 무르시 전 대통령의 지지기반인 무슬림형제단을 포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는 “무슬림형제단 역시 국민의 일부로 국가를 재건하는 데 참여할 기회를 주겠다”며 “그들이 초대에 응한다면 환영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 무슬림형제단 지도부 체포에 ‘경찰 국가’ 비판 목소리
이런 가운데 이집트 검찰은 이날 무슬림형제단 지도부 인사 등 200여명에 대해 카이로 동부 모카탐에 있는 무슬림형제단 본부에서 일어난 시위대 사망에 책임을 물어 체포영장을 발부했다고 관영 메나통신이 보도했다.
주요 검거 대상은 무슬림형제단 모함메드 바디에 의장과 카이라트 알 샤테르 부의장 등으로 이집트군은 전날 이들의 출국을 금지한 데 이어 바디에 의장을 체포했다.
바디에 의장은 전날 밤 카이로 서쪽의 휴양지인 마르사 마트루흐 마을에서 이집트군 헌병에 체포돼 카이로로 입송 중이다.
샤테르 부의장은 지난해 무슬림형제단이 대선 후보로 내세웠던 인물이나 테러지원 등의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아 후보자격이 박탈됐고 무르시가 대체 후보로 나선 바 있다.
이집트군은 이미 자유정의당(FJP) 당수인 무하마드 사드 알 카타니와 라샤드 바유미 무슬림형제단 부의장을 체포했다.
무슬림형제단 지도부가 체포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 단체는 성명을 내고 “새로운 경찰 국가”라고 비판했다.
이 단체는 이어 “무슬림형제단 지도부를 체포하고 우리의 위성방송 채널을 폐쇄하는 경찰 국가의 테러에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이집트 시민은 이날도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 등 거리로 나와 환호를 지르거나 자동차 경적을 울리는 등 무르시 축출을 환호했다. 그러나 카이로 나스르시티에서는 수천명이 모여 무르시 사진을 들고 ‘군부 반대’ ‘민주주의 복귀’를 외쳤다.
현재 무르시는 공개되지 않은 장소에서 연금 상태에 있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 국제사회, 이집트 군부 통치에 우려…아랍권은 반응 엇갈려
이집트 군부가 빠른 속도로 통치권을 장악하자 국제사회에서는 군부 통치에 대한 일부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됐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이집트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면서 민주적 절차의 복구를 강조했다.
덴마크를 방문 중인 반 총장은 이날 코펜하겐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민들의 요구와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면서도 “지금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무너진 민주적 절차를 복구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집트 지도부 인사들과 연락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날 중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집트 지도부 인사가 구체적으로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았다고 AP 통신은 전했다.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무총장도 조속한 민간 통치로의 복귀를 촉구했다.
라스무센 총장은 이날 브뤼셀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지역에서 차지하는 이집트의 비중을 고려할 때 폭력 등으로 사망자가 발생한 상황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인권과 소수자의 권리, 법의 지배 등을 존중해 모든 세력에 폭력 사용을 삼가고 자제할 것을 촉구한다”면서 조속한 민주주의로의 복귀를 당부했다.
아랍권 국가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온건 이슬람 정당이 집권한 튀니지의 몬세프 마르주키 대통령은 이집트에서 발생한 군부 개입 사태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마르주키 대통령은 이날 튀니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군부의 무르시 대통령 축출은 받아들일 수 없으며 이집트는 무르시의 안전을 보장해야한다”고 밝혔다.
반면 이집트의 무르시 대통령과 무슬림형제단을 지원해 온 카타르 정부는 새 임시 대통령의 취임을 축하했다.
카타르 외무부 대변인은 이날 관영 뉴스통신 QNA를 통한 성명에서 “카타르는 아랍과 이슬람 세계에서 이집트의 지도적 역할을 계속 지지할 것”이라면서 “이집트 국민의 선택을 항상 존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즉위한 카타르의 셰이크 타밈 빈 하마드 알 타니 국왕은 만수르 이집트 임시 대통령에게 축전을 보냈다고 통신은 덧붙였다. <연합뉴스/한상용, 유현민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