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정교 분리 마땅한가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마태 22,21).

어떤 이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종교인들의 정치 참여를 금지하는 말씀으로 해석하여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주장하는 근거로 삼는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그런 문제로 사람에게 올가미를 씌우려 하지 말고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데에 더 힘쓰라는 강력한 촉구가 담긴 말씀이다.

우리는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주장하는 사람들과, 종교의 정치 참여는 당연한 것이라는 사람들의 주장이 맞서는 것을 자주 본다.

부정한 정권이나 그를 추종하는 세력들이 더 강하게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주장한다.

정치에 대한 종교의 간섭을 배제하려는 이들의 속셈은 그들의 부도덕을 위장하려는데 있다.

그들은 자기 개인의 영달과 이익 추구에 몰두해 있어 다른 이의 충고를 듣지 않는다. 잘못하고 있는 정치 행태를 바꿀 뜻이 전혀 없다.

반면에 인간 삶의 질을 높이고 인권 신장에 관심을 갖고 사회 정의를 실현하려는 종교인은 종교의 정치 참여는 불가피하다고 여긴다.

그렇다고 종교인이 직접 제도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더러 ‘종교인’들 가운데 현실 제도 정치에 참여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진리의 보루인 종교가 제 기능을 다할 수 없는 일들이 생겨 바람직하지만은 않다.

종교와 정치는 운영체계가 분명 다르다. 정치는 정치인이 더 잘 하는 건 당연하다.

종교는 정치인이 좋은 정치를 할 수 있도록 때로는 ‘친구’가 되고, 때로는 따끔한 비판자가 되는 것에서 제 길을 찾는다.

좋은 정치인은 종교가 하는 비판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종교가 추구하는 가치와 목표가 정치의 그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종교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좋은 정치를 할 수 있다. 정치는 종교와 같은 길을 갈 때 제 길을 가는 것이다.

종교는 결코 정치인의 걸림돌이 아니다. 종교는 정치인이 쥐고 있는 배의 키를 잘 조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한다.

종교는 그를 위한 충분한 능력과 자기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정치 참여를 목적으로 자기 정체성을 잃고 혼란에 떨어지는 그런 종교는 없다.

종교는 하느님을 바라보면서 세상 사람들과 함께 살아간다.

하느님을 향한 수직적 관계는 언제나 사람을 향한 수평적 관계에 눈을 고정시키게 한다. 어느 하나를 잃으면 더 이상 종교가 아니다.

신약성경의 <요한의 첫째 서간>은 종교의 이러한 특성을 잘 가르쳐 주고 있다.

“누가 ‘나는 하느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그분에게서 받은 계명은 이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도 사랑해야 하다는 것입니다”(1요한 4,20-21).

<야고보 서간>은 더 구체적으로 가르쳐 준다.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실천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한 믿음이 그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날 먹을 양식조차 없는데, 여러분 가운데 누가 그들의 몸에 필요한 것은 주지 않으면서,? ‘평안이 가서 몸을 따뜻이 녹이고 배불리 먹으시오.’ 하고 말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2,14-17).

예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로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하고 말씀하시고,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마태 25,40.45)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 교회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잘 이해하여 신자들에게 가르치고 또 실천하게 하였다.

그리스도교와 마찬가지로 모든 종교는 결코 하늘만 보고 살아가지 않는다.

‘그분’을 섬기는 만큼 사람을 사랑하신다. 그러기에 사람이 버려지고, ‘상처’를 입으면 외친다. 그를 돌보라고. 이 외침이 정치 참여로 나타난다.

종교는 재앙이 일어난 뒤에 구제, 구호만을 제 몫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재앙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책을 마련하라는 충고를 자기 의무로 여긴다.

시대가 바라는, 국민이 원하는 새로운 정치를 하라는 요구가 크다.

한국에서 있었던 지난 10월 26일의 재보선, 특히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나타난 여러 현상들과 결과는 매우 커다란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 상징을 해석하는 능력이 좋은 정치를 하게 할 것이다.

“진리 안의 사랑”을 실천하며, 인류의 공동선을 이루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그들은 행복한 사람이며 좋은 정치인이라고 나는 본다.

AsiaN이 아시아인, 특히 한국 사람들에게 시야를 넓혀 인류 공동체의 연대성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되기를 바란다.

그런 시각이 아시아의 긴급한 문제들을 해결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