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만큼이나 다양한 장례관습

[문화의 파도를 타라] 죽어도 못 쉬는 문화

한국 A 기업의 미국 뉴저지 지사 파견 주재원 박씨는 어느 날 현지 거래선의 영결식에 초청됐다. 남부 이태리계 미국인인 고인의 영결식은 인근 성당에서 치뤄졌다. 비즈니스 프로토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박식한 박씨였건만 현지인의 장례식, 그것도 이태리 사람들의 영결식에 참가해보기는 처음이라 다소 긴장됐다.

그래, 옷은 검은 색 수트에 검은 넥타이를 매지. 그러면 유족들에게 무슨 위로의 말을 해야 하나? 그리고?장지까지 따라가야 하나 아니면 영결식만 참가하면 되나? 등등 많은 질문들이 쏟아졌다.

고인에 대한 추도미사가 시작됐다. 성당의 앞 쪽에는 고인의 관이 놓였다. 미사가 끝난 후 조객들은 한 명씩 앞으로 나아가 고인에게 마지막 작별인사를 한다. 박씨는 앞의 2m 남짓한 거구의 서양 남자 뒤에 바짝 붙어 앞으로 나간다. 도대체 죽은 사람에게 어떻게 인사를 한단 말인가? 그래, 그저 묵도하는 정도면 되지 않을까? 아니야, 앞 사람이 하는 대로 따라만 하자! 그런데 박씨를 난감하게 한 것이 앞 사람이 죽은 자의 볼에 키스를 하며 흐느끼기 시작한?것이었다.

‘장례’는 문화를 넘어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이 함께 치루는 중요한 통과의례다. 고인에게는 이생에서의 삶을 마감하고 저승으로의 삶을 시작하게 되며, 유족에게는 고인과의 시간을 정리하며 자신들과 다음 세대가 함께 새로운 삶을 맞이하도록 준비하는 하는 절차이다. 이웃들에게는 이 통과의례를 함께 하여 공동체 의식을 확인하는 자리가 된다.

필자가 얼마 전 방문한 중미 과테말라에서는 모든 이웃주민들이 몇날며칠을 밤샘을 하며 유족들을 달래고 음식을 함께 나눈다. 물론 음식이래야 옥수수를 갈아서 만든 또띠야(tortilla)정도다. 모든 것이 주문과 배달과 인사치례의 형식으로 장례절차가 간략화된 현대화된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다.

하지만 장례의 보편적인 의미는 여전히 이 세상 어디가나 보편적인 반면 장례를 치르는 절차나 관습은 우리의 이해를 뛰어넘을 정도로 다양하고 고유하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부족들은 죽은 자의 망령이 따라오지 못하도록 죽은 자의 두개골을 박살낸다. 미국의 나바호 인디안들은 죽은 자가 살던 집과 그 안에 있던 모든 것을 불태워 버린다. 히말라야의 고산족들은 죽은 자의 시신을 갈갈이 찢어 독수리 밥으로 바위 위에 널려놓는다.

합리주의를 추구하는 서구인들의 장례는 이들과 완전히 다르다. 독일인들은 이미 죽었거나 앞으로 죽을 가족들의 관 수를 미리 가늠하며 땅을 깊게 파며, 죽은 순서대로 관을 아래에서 위로 포개어 놓는다(유교의 나라 한국에서는 경을 칠 일이다). 이들은 가장 적은 평수로 가족 묘를 장만하고 일정 기한이 되면 이마저 없앤다.

얼마전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값 비싼 장례문화에 대한 대안으로 수직으로 세워 놓는 장례방법을 선보였다. 죽은 자가 쉬지도 못하고 서 있어야 될 판이다. 물론 이런 경우 땅의 크기가 줄고, 관 대신 긴 가방을 사용함으로 장례비가 줄어든다는 이점이 있다.

불교와 뗄래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일본의 경우는 죽으면 대부분 사찰에 가서 장례를 치르고 화장을 한다. 화장터에서 화장을 할 때 죽은 사람과 가까운 사람이 마지막까지 시신을 태우는 것을 지켜보며 처리하고 화장된 유골을 몇 군데로 분리하여-사찰이나 집이나 납골당- 모시는 것이 일본의 관습이다.

과거 중국에는 사람이 죽은 후 우선 염을 하고 아직 장사를 지내지 않은 영구를 관에 넣어 집에 두었다가 몇 일, 몇 달 또는 몇 년이 지난 후에 장례를 치르고 땅에 묻고 묘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1956년 마오쩌둥 주석의 ‘모든 사람의 신체는 사후에 모두 화장하여 뼈가루만 남기고 시체를 남기지 말며 더욱이 묘를 만들지 말라’는 지시에 따라 중국의 장묘문화는 화장으로 바뀌었다.

인구에 비해 넓은 국토를 가지고 있는 미국과 캐나다는 기독교의 영향을 받아 화장보다 주로 매장을 한다. 북미 장례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장례식장(funeral home)에서 시신을 방부처리한 뒤 일정 시간에 한해 조문객에게 보여주는 절차다(viewing 또는 visitation). 이에 익숙치 않은 한국계 이민자들이 시신을 밤새 지키겠다고 우려 실랑이기 벌어지기도 한다.

장례식에는 가까운 친지가 아니면 방문하지 않으며, 영결식만 참석하는 것이 보통이다. 한국에서처럼 부의금을 전달하는 관습은 없으나, 대신 고인의 이름으로 자선기금을 조성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누구나 여가를 즐기는 공원의 벤치들은 주로 죽은 자들을 기념하기 위해 유족들이 만들어 기증한 것들이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지만 이들은 죽어 벤치를 남긴다.

이런 지역적이고 형식적이고 고유한 장례문화가 미국의 맥도널드 같이 전 세계적으로 규격화되고 간편화되어지는 추세다. 하지만 일상에서 가장 엄숙한 예식이 영결이고 장례이니만큼 현지의 장례 상황에 적절한 수용의 매너를 갖추는 게 국경을 넘나드는 비즈니스맨들에게는 필요하다. 엄숙한 장례식장에 가서 남들을 웃길 일은 없지 않는가!

<서구에서 조문 전 점검사항>

-무엇을 입어야 하나: 나라마다 장례의 색상이 다를 수 있으나 대개 검은 단색의 양복에 검은 색 넥타이가 보편적이다. 반면 토속색이 강한 문화일수록 현지의 복장에 대해서 민감할 필요가 있다.

-방명록에 사인하라: 장례식장에 도착하면 우선 자신의 참석을 증빙으로 남긴다.

-위로의 말을 하라: 유족에게 한 두 마디 위로의 말을 건넨다. 진부한 말은 필요없다. 정 할 말이 없으면 ‘“I don’t know what to say.” 정도면 된다.

-꽃을 보내라: 화환이 가장 좋은 장례선물이다. 단, 꽃의 종류와 색상과 숫자에 유의하라.

-부조는 하는가: 하는 경우도 있고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금액도 생각보다 많이 하는 경우(중국)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으니 현지의 관행에 민감하라.

-장례 후의 ‘절차’가 중요하다: 장례를 마친 후 유족들을 찾아가 위로 하는 것은 좋은 마무리다. 단, 방문시 미리 전화로 예약하고 접견시간은 10~15분을 넘지 않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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