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언론인, “북한은 그저 무너지고 있을 뿐”

파키스탄의 유력 인사들로 구성된 ‘필댓(PILDAT, Pakistan Institute of Legislative Development And Transparency)’ 대표단이 지난 4월 21일 한국을 찾았다. 주한 파키스탄 대사관의 안내로 10여명의 대표단은 아산정책연구원, 국방연구원, 세종연구소, 국회, 대기업 등을 방문했다. 이들의 방문 목적은 ‘한국의 개발 전략’을 각계에서 배우는 것이었다.

아시아엔(The AsiaN)은 파키스탄 대표단의 한국 방문 둘째날인 지난 4월 22일, ‘필댓’에 속한 파키스탄 언론인 2명과 ‘아시아와 언론’ 전반에 대해 인터뷰하는 시간을 가졌다.?봄비 내리는 오후,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손인숙 관장이 운영하는 한국수(繡)박물관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파키스탄의 가지 살라후딘 기자(왼쪽)와 살림 사피 앵커(오른쪽에서 두번째)가 한국수박물관 손인숙 관장(가운데)으로부터 작품 설명을 듣고 있다. 동행한 아시아엔 이상기 발행인(오른쪽)과 박소혜 편집장(왼쪽에서 두번째). <사진=리사 위터 기자>

필자와 리사 위터 기자가 함께 만난 파키스탄 언론인은 파키스탄에서 영향력 있는 인사들이었다. 먼저 언론인 경력 40년이 넘었다는 가지 살라후딘(Ghazi Salahuddin)의 직함은 ‘Senior Analyst’ 우리말로는 ‘선임 평론가’ 정도가 된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살림 칸 사피(Saleem Khan Safi)였는데, 현재 파키스탄 Geo TV의 앵커다. 파키스탄에서는 꽤나 얼굴이 알려진 유명인사였다.

살림 칸 사피(Saleem Khan Safi) 파키스탄 Geo TV 앵커.

먼저 주로 인터뷰에 응한 가지 살라후딘 기자는 이번이 3번째 한국 방문이라고 했다. 1992년과 1993년 대전 엑스포 취재, 그리고?그 당시 파키스탄에서 고속도로 건설 계약을 한 대우건설 초청으로 한국에 왔는데, 조선소 등을 둘러봤다고 했다. 특히 대부분의 파키스탄 사람들이 ‘대우’를 파키스탄의 버스서비스 이름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이번 방한에서 각 기관들로부터 한반도의 상황과 정책 등에 대해 들었다는 그는 “파키스탄에는 한국국방연구원(KIDA)과 같은 군사부문 기관이 없는데 매우 인상적이었다. 종교가 어느 분야든 큰 역할을 하는 파키스탄과 한국은 분위기가 다르다. 20년만에 서울에 와보니 참 활기찬 도시라는 느낌”이라고 했다.

파키스탄의 언론 상황이나 아시아 교류에 대한 생각 뿐 아니라 남북관계에 대한 의견, 북한 방문 경험 등 다양한 주제에서?이야기를 나눴다.

가지 살라후딘(Ghazi Salahuddin) 파키스탄 선임 평론가.

-파키스탄 언론인 입장에서 한반도의 남북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나.

가지 살라후딘 : “인도가 1988년 첫 핵무기를 개발한 이후 파키스탄과 인도는 4번 전쟁을 치렀다. 그래서 지금의 한국이 처한 어려움을 이해한다. 한국정부의 리더십이 이 상황을 잘 해결하길 바란다. 국제사회에서도 지원해줄 수 있을 거다. 남북이 전쟁을 치르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한반도가 통일될 것이라 믿는다.”

30년 전의 평양…”아름답지만 이상한 도시”

그는 북한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1982년 파키스탄 대통령과 함께 기자로서 평양에 3일간 머물렀다고 했다.

“매우 독특한 경험이었다. 당시 북한은 아주 훈련이 잘 돼 있었고 억눌려 있는 듯했다. 환영행사를 보고는 정말 놀랐는데,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춤을 추고 있는 여성 무용단이 보였다. 공항에서 평양까지 가는 길에는 정말 단 한 사람도 못 봤다. 평양에 도착하니 또 우리를 환영하는 여성 무용수들이 두 줄로 늘어서 있었다.”

-30년 전인데, 그 당시 평양의 모습은 어땠나.

가지 살라후딘 : “거리의 경찰은 교통을 통제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을 감시했다. 김일성이 파시즘적인 리더라는 것이 느껴졌다. 평양은 아름다웠지만 이상한 도시였다. 도로는 넓은데 텅 비어 있었다. 기자로서 평양의 시내를 둘러볼 수 있을 거라 흥분해 있었는데, 호텔 밖으로 나가는 순간 경찰이 제지하며 못 나가게 했다. 당시 만난 모든 사람들은 완장을 차고 있었고, 아파트 창문며 산골짜기며 곳곳이 김일성 포스터로 도배가 돼 있었다. 우리는 또 수백명의 어린이들이 하는 연극을 봤는데, 정말 완벽했다. 수없이 많은 리허설을 했다는데, 연극은 역시 김일성에 대한 것이었다.”

살림 사피에게 북한에 대한 관점을 물었더니 이렇게 말했다. “북한은 군사정권이다. 북한은 죽어가고 있는 사회다. 탈북자가 얼마나 되나. 2만명? 3만명? 그렇다면 남한에서 북한으로 넘어가는 사람들은 얼마나 되나. 거의 없지 않은가. 그런 수치들이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우리는 단지 북한 정권이 무너져 가는 것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아시아기자협회와 아시아엔(The AsiaN)은 다양한 아시아의 교류와 소통을 지향한다. 아시아가 어떻게 통합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가지 살라후딘 : “아시아는 굉장히 다양한 지역을 포괄하는 넓은 대륙이다. 아시아의 모든 지역을 연결하려는 아시아기자협회(AJA)와 같은 기관도 있는데, 서로의 지역에 대해서 배우는 게 중요하다. 그러는 과정에서 우리는 생각보다 공통점이 더 많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아시아 교류를 촉진하기 위해 중동지역과 남아시아의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필요한데, 우선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갈등을 해결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스라엘은 많은 지원을 받았지만 팔레스타인은 그렇지 못했다. 전 세계가 그들의 고통과 슬픔을 이해해야 한다. 지금 이라크 전쟁은 그런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어 왔다. 이라크 전쟁에는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 미국이 이라크와 전쟁할 이유가 없다. 미국은 민주주의 뿐 아니라 종교적 광신도 가능하다. 이라크가 독재자를 가졌을 지도 모르지만 미국이 개입하기 전에는 자유로운 곳이었다.

미국은 시리아 반란군을 지원하고 있는데, 시리아에 독재자가 있더라도 시리아는 내전 이전에 자유롭고 발전하는 나라였다. 문제는 그런 사회의 안정이 흔들리는 것이다. 우리는 아시아의 모든 곳에서 평화와 상호이해를 위해 일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평화를 원하지만 무기도 팔고 싶어한다.”

파키스탄, “문맹률은 높고 정치에 관심은 많고…”

-파키스탄의 언론 상황은 어떤가?

가지 살라후딘 : 지난 10년간 파키스탄 언론도 완전히 바뀌었다. 독립적인 TV 채널이 나오면서 주요 뉴스들을 다루게 됐다는 것은 큰 변화다. 언론의 역할도 전례가 없던 일이다. 80여개 TV 채널 중 20여개 채널에서 뉴스를 다루는데, 2007년의 경우 언론은 사법 위기에서도 최전선에서 이를 다뤘다.

하지만 언론의 힘이 너무 센데다가 직업윤리를 준수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한국언론과 파키스탄이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수용자’다. 파키스탄에서는 문맹률이 높고 교육수준이나 학식이 높지 않은데 한국은 지식기반이 단단한 편이다. 그래서 파키스탄은 센세이셔널한 것을 찾는 경향이 있다. 파키스탄 언론은 교육 받지 못한 대중의 수준에 맞출 필요가 있다. 아직 파키스탄은 완전히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는 없지만 국민들은 정치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선거 이슈를 위해서라도 국민들의 교육은 우선돼야 한다.

언론의 긍정적인 역할은 사람들에게 사회 이슈와 정보들을 알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다. 또 언론을 통해 부정부패도 밝혀진다. 언론은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백신 역할도 할 수 있다.

-파키스탄에 대해서 꼭 알아줬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가지 살라후딘 : “파키스탄은 유명한 나라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국제사회가 파키스탄을 극단주의자와 핵무장 국가로 알고 있다. 그런 것들이 고정관념과 편견을 갖게 한다. 하지만 파키스탄 역시 젊은이들도 여러분과 똑같은 음악을 듣고 똑같은 영화를 본다고 말하고 싶다. 세상은 좁아지고 있고, 우리 젊은이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

노벨평화상 후보 ‘말랄라’, “파키스탄의 자랑스러운 얼굴”

-파키스탄에서는 지난해 소녀들의 교육권을 주장하는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탈레반에게 총상을 입은 말랄라(Malala Yousafzai)가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아시아엔(The AsiaN)은 말랄라를 아웅산수치와 함께 ‘2012년 아시아 인물’에 선정한 바 있다. 파키스탄에서 말랄라는 어떤 사람인가.

가지 살라후딘 : “말랄라는 파키스탄에게 있어 신이 준 선물이다. 그녀는 파키스탄의 자랑스러운 상징이다. 파키스탄의 상황이 그녀를 완전히 영예롭게 만들지 못하고 있지만 그녀는 우리가 정말로 자랑스러워 하는 파키스탄의 얼굴이다.”

살림 칸 사피 : “5년 전 말랄라를 만난 적이 있다. 매우 똑똑한 소녀다. 대부분의 남자보다도 훨씬 용감하고 적극적이다. 그녀는 어렸지만 사람들이 40~50대에 겪는 대부분의 이슈를 이해하고 있었다. 탈레반에 저항할 정도로 용감했다. 그녀는 배우느라 바빴을 뿐 아니라 다른 여자 친구들을 배우게 만드는 데도 열심이었다.”

인터뷰 막판에 얻은 뜻밖의 수확. 우리는 여러 경로로 직접 말랄라의 아버지와?통화할 수 있었다.?말랄라의 아버지 지아우딘 유사프자이(Ziauddin Yousafzai)는 “아시아엔에서 말랄라를 ‘2012년 아시아의 인물’로 선정해줘서 영광이고 고맙다. 여러분들의 응원이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말랄라는?영국에 머무르며 치료를 받았고 현재 영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다.

민족과 종교와 지역 분쟁이 끊이지 않는,?자살폭탄테러가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핵무장 나라 파키스탄.?하지만 그들은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파키스탄에서도 열풍이었다고 했고, 사람들은 크리켓과 스쿼시를 좋아한다고 했다. 한반도에 평화가 깃들길 기원한다는, 무장세력의 총격 위협에도 굴하지 않았던 소녀의 용감함이 온 세계를 감동시킨 그 나라가 바로 파키스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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