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1일] 터키 술탄제 폐지한 독립영웅 케말(1922년)

2010년 메드베데프 대통령 러시아 최초로 쿠릴열도 방문

2010년 11월1일 오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일본과 영유권 분쟁이 있는 쿠릴열도의 쿠나시르(일본명 구나시리) 섬을 전격 방문했다. 일본은 거세게 항의했고 양국관계는 급속히 냉각됐다.

마에하라 세이지 당시 외무상은 이날 미하일 벨리 주일 러시아 대사를 불러 ‘유감과 함께 강력한 우려’를 표시했다. 일본은 이를 계기로 양국 최대 현안인 평화조약 교섭이 정체되고, 확대돼오던 양국 경제협력에도 악영향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일본은 같은 해 6월부터 본격화된 남중국해 갈등, 같은 해 9월의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중-일 충돌에 이어, 러시아 쿠릴열도 영유권 문제로 동아시아 영토분쟁의 중심에 서 있었다. 중·러 양국이 일본을 협공하는 가운데 미국이 일본 편에 서서 개입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이날 아침 쿠릴열도를 관할하는 사할린주의 주도 유즈노사할린스크 공항에 도착한 뒤, 소형기로 갈아타고 쿠나시르를 방문했다. 러시아 국가원수가 쿠릴열도의 섬을 방문한 것은 소련 시절을 포함해 처음이다.

메드베데프의 이런 행보는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쿠릴열도 남쪽 4개섬(일본명 북방영토)에 대한 영토주권을 분명히 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메드베데프는 이날 쿠나시르 섬에 3시간 반가량 머물며 지열발전소와 공장 등을 시찰한 뒤, 지역 주민들에게 ‘지역 개발을 위한 예산 투입’을 약속했다.

일본에서는 메드베데프가 201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강한 러시아’를 부르짖는 재료로 쿠릴열도 문제를 이용하고 있다는 관측이 많다. 러시아는 같은 해 9월2일을 ‘제2차 세계대전 종전기념일’로 새로 지정, 일본을 자극했다.

쿠릴열도의 남쪽 끝, 일본 쪽에서 보면 홋카이도 동쪽 가까이에 있는 쿠나시르 섬은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이른바 ‘북방 4개섬’ 가운데 하나다. 애초 아이누족이 살던 이 지역은 18세기 이후 러시아인들의 남하가 본격화하면서 100년 넘게 양국의 영토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러시아는 소련 시절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쿠릴열도 섬 전체를 장악해 현재 실효지배를 하고 있다. 1956년 일-소 공동선언 때 ‘평화조약 체결 뒤 (4개 섬 가운데) 시코탄과 하보마이는 일본에 반환한다’고 밝혔으나, 평화조약은 체결되지 못했다. 일본은 4개 섬 모두의 반환을 요구해왔다.

 

2010년 만화 ‘원피스’ 日 발행 부수 2억부 돌파


2012년 11월1일 일본의 인기 만화 ‘원피스(ONE PIECE)’ 발행 부수가 일본 만화로는 사상 최단 기간에 2억부를 넘어섰다.

이 만화책을 펴낸 일본 슈에이샤(集英社)는 이달 4일 발매 예정인 제60권 초판 340만부를 포함해 원피스 1∼60권의 발행 부수가 2억부를 돌파했다고 집계했다. 1997년 일본 만화잡지인 ‘주간 소년점프’에 연재를 시작하고 곧이어 단행본을 펴낸 원피스가 발행 부수 2억부를 넘어서는 데 걸린 13년으로, 일본 만화사상 최단 기간이다. 또 제60권의 초판 발행 부수인 340만부는 지금까지 일본 최다 기록이었던 원피스 59권의 320만부 발행 기록을 넘어선 것이다.

오다 에이치로(尾田榮一郞.35)가 그린 원피스는 해적 왕을 꿈꾸는 소년 루피와 친구들이 전설 속의 보물인 ‘원피스’를 찾아 갖은 역경을 극복해가며 모험을 한다는 내용으로 TV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됐다. 슈에이샤 관계자에 따르면, 2억 부는 일본 국내 발행 부수만 따진 것으로 한국 등 해외 발행 부수를 포함한 숫자는 집계하지 않은 수치였다.

 

2009년 ‘태양의 나라’ 향해 뛰는 일본

2009년 11월1일부터 일본 정부는 모든 가정에서 쓰고 남은 태양광 발전 전력을 기존 2배 가격에 의무적으로 사주는 새 제도를 시작했다. 기존에는 전력회사의 가정용 태양광 발전 잉여분 구매가 자율에 맡겨왔지만, 이날부터 1킬로와트당 48엔에 사들이게 된다.

일본이 ‘태양광발전’에 박차를 가하고 나선 것은 무엇보다 온실가스 감축 때문. 하토야마 유키오 당시 총리는 2020년까지 1990년 대비 온실가스를 25% 감축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가전회사와 태양광 주택 건설업체에겐 비즈니스 기회도 된다. 여기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의 보조금 덕택에 개인들은 기존에 비해 5년 정도 빠른 10년 안에 설치비용을 회수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전력회사가 가정용 태양광 발전을 사들이는 비용은 ‘공짜’가 아니다. 전력회사는 올해 구매비용을 내년 전기요금에 반영시킬 예정이었다. 이에 따라 2010년 4월부터 4인 가족 기준 월 30엔~100엔 가량 전기요금이 인상될 것으로도 전망됐었다.

간 나오토 부총리는 하루 전인 같은 해 10월31일 도쿄 민주당 본부에서 한 강연에서 “2010년부터 잉여분 뿐 아니라 가정용 태양광 발전 전량을 모두 전력회사가 사들이게 하겠다”고 밝혔다.

전력회사가 가정 태양광 발전 전량을 일단 높은 가격으로 사들인 뒤 가정에서 필요한 전기는 이보다 낮은 가격에 되판다는 구상이다.

태양광발전 전량 구입 제도는 태양광 발전 1위인 독일이 이미 시행하고 있는 제도다. 한국에서도 발전차액보전제도(FIT)를 시행해왔으나 2008년 이명박 정권 취임 이후 사실상 폐지됐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2012년 5월 “2013년부터 FIT를 다시 시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1996년 아랍 위성방송〈알자지라〉개국

1996년 11월1일 카타르 도하에 본사를 둔 위성방송〈알자지라〉가 개국했다. 카타르 왕실이 투자해 〈비비시(BBC) 월드〉 아랍어방송 직원 20여명을 끌어들여 개국한 것이었다.

알자지라 방송은 격동하는 중동 국제정치의 한복판에서 서구 언론들이 정작 주인공들인 중동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하지 않는다는 비판 속에서 탄생했다. 중동문제에서 아랍어로, 아랍인들의 목소리를 전해 온 이 방송 시청자는 10년이 지난 2006년 11월1일 기준 5000만 명을 넘어섰다.

2012년 10월25일 북아프리카의 튀니지는 카타르 주재 자국 대사관을 폐쇄했다. “형제국”인 카타르 정부와의 마찰 때문이 아니라, 카타르 도하에 본사를 둔 위성방송〈알자지라〉의 “적대적 시도”를 묵과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붙었다. 이 방송이 튀니지의 반정부 인사를 인터뷰한 게 발단이었다.

언론보도를 이유로 대사관을 문닫거나 외교사절을 소환하고, 언론사 지국을 폐쇄하는 일은 중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알자지라〉는 그런 일에 단골로 등장한다. 이 언론사 보도를 빌미로 리비아와 모로코가 카타르 주재 대사를 소환했고, 사우디아라비아와 바레인은 〈알자지라〉의 특파원 파견을 불허하고 있다.

2001년 9·11테러 뒤 오사마 빈라덴의 메시지를 담은 녹화테이프를 방영해 크게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알자지라〉의 보도태도는 미국·영국 등의 서방국가들은 물론 권위주의적인 아랍 정권들 도 불편해한다. 미국의 고위 관료들은 심지어 “사악하고 용서할 수 없다”는 ‘저주’까지 <알자지라>에 퍼붓기도 했다.

1963년 베트남 군부쿠데타(1차)로 고 딘 디엠 피살

1963년 11월1일 베트남 수도 사이공에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다. 쿠데타 군은 고 딘 디엠 베트남 초대 대통령을 축출하고 정권장악에 성공한다. 쿠데타의 주역은 대통령의 군사고문이었던 투옹 반 민 장군이었다.

그는 쿠데타 성공이후 고 딘 디엠 정권의 부패와 독재에 항거해 쿠데타를 일으켰다고 발표했다. 1956년 대통령이 된 뒤 철권통치를 펼쳤던 고 딘 디엠과 고 딘 누 형제는 이튿날인 11월2일 쿠데타 군에게 피살됐다.

이 쿠테타 이후 약 1년 동안 여섯 번에 걸쳐 정권이 교체되는 등 극심한 정치혼란을 겪게 된다.

 

1952년 에네베택 환초에서 수소폭탄 실험

1952년 11월1일 마셜 제도(Marshall islands)의 에네베택(Enewetak) 환초에서 미국의 과학자들이 개발한 열핵폭탄에 대한 실험이 있었다.

암호명은 ‘마이크(Mike)’. 이 수소폭탄의 폭발력은 헝가리 출신의 과학자 에드워드 텔러(E. Teller)가 이 수소폭탄의 개발을 주도했다.

열핵폭탄은 수소의 동위원소들이 초고온에서 결합해 헬륨으로 바뀌는 핵융합의 연쇄반응을 이용한 무기로서 엄청나게 큰 폭발력을 가진다.

수소폭탄이라고도 하며 원자폭탄보다 수백 배 더 강력하다. TNT 10.4Mt로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보다 500배 강한 위력이었다. 폭발 과정은 1초 이내의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나는데 열핵폭탄이 폭발하면 폭풍과 빛, 열, 방사성 낙진이 생긴다. 또한 반경 수㎞ 안에 있는 건물은 완전히 파괴되고 수십㎞ 떨어져 있는 사람이 강렬한 백색광을 볼 경우 눈이 먼다.

대륙간 탄도 미사일 탄두에 장착할 경우 20~25분 안에 지구의 반 바퀴를 돌 수 있으며, 유도장치를 이용해 목표물을 중심으로 반경 수백m 안에 투하할 수 있다.

미국이 1952년 실험한 이후 소련이 1953년 8월 12일 실험했고, 영국이 1957년 5월, 중국이 1967년, 프랑스가 1968년 개발에 성공해 현재 세계에 열핵무기가 2만 개 이상 쌓여 있다. 핵무기의 개발 이후 거대한 파괴에 대한 공포가 지속되고 있다.

1925년 한국 민족사학자, 독립운동가 박은식(朴殷植) 사망

1925년 11월1일 민족 사학자 겸 언론인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2대 대통령을 지낸 백암 박은식(1859∼1925) 선생이 사망했다. 황해도 황주에서 태어난 백암은 어릴 때 서당에서 한문과 주자학을 공부했다. 20대에 접어든 백암은 다산의 제자 신기영으로부터는 실학을, 성리학자 박문일로부터는 주자학을 각각 배웠다.

이를 계기로 백암은 개화를 사설이라고 배척하는 전형적인 위정척사파 유학자가 되었으나 독립협회의 자주 민권 자강운동에 관심을 가지면서 개화사상가로 대전환을 하게 됐다.

주자학자로서 출발해 개화자강론자·애국계몽사상가·학자·언론인·독립투사로, 민족이 처한 조건의 변동에 따라 자신의 사상과 행동을 발전시키면서 전 생애를 민족의 해방과 독립에 바쳤다.

1922년 오스만 투르크 제국 멸망

1922년 11월1일 무스타파 케말이 주도하는 ‘투르크 대(大)국민의회’가 술탄(황제)제를 전격 폐지, 623년 역사의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1299년 창건된 오스만 투르크는 전성기 때는 서아시아·북아프리카·발칸반도·흑해 북부까지 아우르고, 1453년에는 콘스탄티노플의 동로마를 함락해 유럽인들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짓밟았던 대(大)제국이었다.

그러나 술탄의 무능, 지배계급 내부의 알력, 산업 침체 등이 거듭되면서 16세기 후반부터는 점차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 19세기 발칸반도 국가들의 독립운동은 오스만 투르크제국의 기반을 뿌리째 흔들었고, 1차대전의 패전은 오스만 제국을 열강들의 각축장으로 전락시켰다.

이때 제국의 보존을 위해 영국이나 미국의 보호령으로 두자는 의견이 제국 내에서 제기됐지만 케말은 단호히 이를 거부하고 투르크 민족 중심의 독립국가 건설을 꾀했다.

연합군이 이스탄불로 진주하고 그리스군 부대가 1919년 2월 이스미르를 점령하자 술탄은 케말을 소규모군대의 총사령관으로 임명, 보호군인 연합군 점령에 대한 반대시위를 침묵시키도록 명령했다. 하지만 그는 국내외의 터키 독립반대 세력을 쫓아내도록 터키국민들을 선동했다.

케말은 1919년 5월19일 술탄이 자신을 육군총사령관직에서 해임하려는 계획을 묵살하고 군인과 민간인들이 한덩어리로 뭉쳐 독립을 위해 투쟁할 것을 명령했다. 1920년 케말은 마침내 앙카라에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다음 2년간 군사작전을 진두지휘, 그리스 점령군을 쫓아내는데 성공했다. 그는 이처럼 외부 적을 무찌른 다음 방향을 국내로 돌려 1922년 11월 1일 술탄제도를 철폐했다. 개혁개방에 착수, 이슬람 종교의 영향력을 축소하고 서구의 법과 의상, 행정기능을 도입했다.

케말이 민·군의 지지에 힘입어 오스만 의회로부터 자신의 독립안 지지를 이끌어내자 영국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고 의회를 해산시켰다. 케말은 새로운 ‘투르크 대(大)국민의회’를 구성하며 이에 맞섰다.

케말의 관심은 과거 오스만 제국의 광활했던 영토가 아니라 투르크 민족만의 독립된 영토였다. 따라서 투르크 영토 안에 있는 타국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었던 케말은 해결책을 독립전쟁에서 찾았다. 케말은 결국 그들을 모두 내쫓고 이듬해인 1923년 10월 29일 터키공화국을 수립했다. 당연히 초대 대통령은 무스타파 케말이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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