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창가에서>돼지의 행복

얼마 전 마지막 예비군 훈련에 참가하였다. 한창 야외 훈련 도중 막간을 이용하여 조교가 물었다. “6·25전쟁이 일어난 연도 아는 사람 거수!” 몇몇이 손을 들고 답했다. “1948년이요!”, “1951년이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조교가 다시 물었다. “그럼, 남침이냐 북침이냐?” 묵묵부답이다. 그때부터 조교는 6·25전쟁의 역사와 우리나라 발전사에 대해 열변을 토하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예비군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 고등학교 시절 배운 역사과목의 내용을 떠올리며 심오한 표정으로 조교의 말을 경청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 공산군은 38선을 넘어 북쪽에서 남쪽으로 침범하였다. 그렇다. 우리는 남침을 당했다. 그들이 넘어온 38선은 1945년 일제의 패전 뒤 광복 직후 9월에 소련군과 미군이 한반도에 들어와 위도 38선을 경계로 남북 관리구역을 나눈 군사분계선이다. 한반도는 다시 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 체결 후 휴전협정 제2조에 의해 설정된 군사분계선인 휴전선으로 남과 북으로 나뉘게 된다.

아주 간단하다. 1950년, 38선을 넘어 북의 남침으로 6·25전쟁이 일어났고 1953년 휴전을 하면서 휴전선이 만들어졌다. 복잡하지도 않고 중등교육과정에 전부 포함되어 교육 받은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왜 젊은이들은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지 않으며 무감각한가? 전쟁과 휴전이라는 이 두 단어, 실제로 그 일이 다시 일어난다면 제일 먼저 우리는 마음의 준비는 되어있는가? 유서를 남겨놓고 평화로운 생활을 뒤로 한 채 적을 향해 달려갈 자신은 있는가?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릴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우리나라는 휴전 후 반세기만에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고 이제는 도움을 받는 국가에서 도움을 주는 국가로 성장했다. 이래서일까, 눈부신 발전에 우리 젊은이들은 그저 좋은 세상과 환경이 나에게 당연히 주어진 것이고 우리 부모님, 윗세대들이 거쳐 간 피와 눈물로 범벅이 된 그런 세월, 기억들은 한 번도 생각도 공감도해보지 않은 그런 씁쓸한 이야기로 되어버렸다. 평화, 사실 추상적이고 우리 세대에서는 당연한 것, 내가 신경 쓰고 있지 않아도 없어지지 않는 것, 그래서 그냥 자연스러운 것으로 되어버렸다.

우리는 우리나라의 역사로부터 배울 수 있는 전쟁과 평화 그리고 발전과 성장에 대해 조금 더 알고 공부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누리고 있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며, 얼마나 힘겨운 세월을 거쳐 지금의 우리로 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우리가 고쳐야할 삶에 대한 태도와 다음 세대들을 위한 국가단위의 평화와 행복을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

돼지는 평생 자기 몸을 최대한 살찌우게 하는 것이 행복이라 생각한다고 한다. 돼지들은 열심히 먹고 살을 찌우고 행복해하며 우리는 그런 친구들을 잡아먹는다. 그 돼지를 먹는 우리는 지구라는 행성에 단 한 번만 태어나서 80여년을 살고 타인에 의해 또는 노화에 의해 생을 마감한다. 과연 우리는 누구를 위해 그리고 무엇을 위해 80여년을 보내며 살아가는 걸까. 돼지의 행복 1개와 우리의 포만감 1개가 같다고 생각해보자. 그럼 다시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생명 1개 = 돼지고기 요리 1개. 생명 1개를 희생하고 얻는 우리의 포만감, 그 돼지들도 치열하게 먹이 다툼을 하며 살아왔을 텐데 허무하게 사람의 손에 의해 모든 것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처럼 우리도 누군가의 희생에 대가로 우리가 원하는 1개를 얻는 것이고 만약 이 1:1 공식이 성립하지 않는다면 바로 전쟁인 것이다. 상황이 나빠지면 더 많은 희생이 있어야 원래의 것을 얻을 수 있다. 전쟁이라고 다를 것이 있겠는가! 사회생활 속에서 치열한 승진 싸움, 학교생활 속에서 성적 싸움, 즉 작게는 가족단위에서 크게는 국가단위에서 이 모든 것이 자기 이권 챙기기로 이어져 최악으로 치닫게 되면 진짜 전쟁이 되는 것이다. 그럼, 이런 싸움은 우리는 도대체 왜 하는 것인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소중함을 몰라서가 아닐까. 경제학에서는 ‘인간은 이기적인(또는 합리적) 존재이다‘라고 가정을 하고 경제를 해석한다.

다시 말해 남이 가진 것보다 내가 가진 것이 많아야 하며 손해보다는 이익을 원래 좋아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거래‘라는 것이 생겨났고 국가 간 교역으로 발전해 결국 한 국가의 덩치 불리기로 이어지기 때문에 싸움이 일어나고 강자가 약자를 지배해 아무 잘못 없이, 가진 것 없이 태어나 평화롭던 세상엔 불평등과 불만이 생겼고 평화가 깨지게 되어버린 것이다. 이처럼 조금만 더 욕심을 부리거나 남의 것을 탐하고 내가 가진 것이 불만족스럽다면 자기도 모르게 가슴 속 깊이 어딘가부터 침해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한반도가 가진 특수한 상황과 아픈 역사를 가진 그리고 좁은 땅에 정말 많은 인구와 함께 살고 있다. 이런 공식이 있다. 행복=가진 것/원하는 것. 원하는 것을 줄여, 원래 가진 것에 만족하여 더 큰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뜻이다. 돼지처럼 우리도 스스로에게 진정한 행복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고 만약 답이 나왔다면 행복추구의 수단이 무엇이 됐던 지금 가진 것을 최대한 활용하며 지난 역사를 잊지 않고 감사한 마음으로 우리와 다음 세대를 위해 서로를 위하는 평화로운 하루하루를 만들어 나갔으면 한다.
<서은석?seoeunseok@gmail.com>

The AsiaN 편집국 news@theasian.asia

*필자 서은석은 외교통상부 국제기구국과 유엔 뉴욕본부 경제사회국에서 근무했다. 현재 유엔 세계 평화의 날 한국조직위원회에서 NGO 컨설턴트(유엔 경제사회이사회 협의적 지위)로 일하고 있다. <대학생이 만들고 대학생이 꿈꾸는 대학문화>?대표 저자이며, <THE NGO COMMITTEE TEN YEAR REVIEW>를 공동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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