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평화위협세력에게만 이로운 감성적 反日
히틀러 탓에 숨진 수백만 독일인들의 넋도 조롱거리…그게 민족주의
국책연구기관의 한 연구원이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한일정보협정)을 중국의 ‘북한 편들기’를 견제하는 지렛대로 삼아야 한다”는 취지로 주장했다고 한다.
반면 야당들은 “절차적 잘못을 넘어, 36년 강점한 나라에 군사비밀을, 그것도 핵 군사력 보유 시도를 선언한 일본에 군사정보를 몰래 내주려고 하다니 기가 막힌다”면서 연일 공세를 펼치고 있다.
현 집권세력은 한미일 군사협정을 충실히 따르고, 북한에 대해선 대립강경책을 유지해왔다. 북한과 독특한 관계를 맺고 있는 중국에는 외교적 친화정책을 유지하되 군사?안보 측면에서는 미국의 의도 안에서 행동하고 있다.
현 정권의 한반도 안보 및 외교전략, 대국민 소통 수준 등을 봤을 때 이번 일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협량(狹量)한 정치세력 취급을 받고 있는 제1야당 입장에서는 연말 대선 승리를 위해 더 없이 좋은 소재다. 전방위 공세 수위를 높일 만하다.
집권이 목적이니 이런 공세를 누가 나무라겠는가. 다만, 집권세력을 향한 공세가 그들의 협량함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으니 씁쓸한 것이다.
좋은 야당과 합리적 평화세력은 이번 일을 계기로 한반도를 둘러싼 ‘지구촌의 평화를 원하는 세력’과 ‘원하지 않는 세력’을 쟁점으로 제시해야 한다. 누가 더 평화에 위협적인지, 누가 먼저 위협했는지 등을 규명하면서도 평화롭지 못한 체제를 고착화 하려는 세력이 누구인지 분명히 하고, 평화세력들을 규합해 그들에 맞서는 프레임을 제시해야 한다.
반일(反日)은 결과적으로 평화 위협 세력에게만 이롭다. “일본에는 계급과 계층, 양심적 지식인, 반핵평화세력이 없고, 일본인들 모두가 제국주의자로서 한국인을 우습게 여긴다”는 식의 결론 밖에 뭘 얻을 수 있나. 누군가 이런 저급한 ‘반일감정’이 평화와 상충되지 않는다고 믿는다면, 그는 인류역사상 모든 전쟁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셈이다. ‘나치즘’까지도.
식민지 조선의 마지막 조선총독을 지낸 아베 노부유키(阿部 信行, 사진)가 패전 후 조선을 떠나면서 “(일본이 심어놓은 식민교육 탓에) 한국인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라고 한 말이 또 다시 인터넷과 SNS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오마이뉴스나 나꼼수 등 민주통합당과 친밀한 미디어가 주도하는 이런 반일캠페인은 ”느슨해진 정신을 추슬러 일본에 대한 적대감을 다시 극대화 하자“는 취지로 읽힌다.
그러나 지구촌 평화세력의 관점에서 보면, 일그러진 제국주의자인 조선총독의 발언은 별로 낯선 게 아니다. 이 자는 아마도 ‘조선의 노예적 삶이 일본인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천박하고 야만적인 제국주의 세계관에 갇혀 있다.
일본 민중과 조선 민중을 적대시 하도록 하는 이런 세계관은 국가와 국경의 틀 속에서 자국 민중을 전쟁으로 몰아넣음으로써만 자신의 정치권력의 안정성과 절대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던 구(舊)시대의 전형적 통치 이데올로기다.
시대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던 이런 협량한 통치자들은 그러나 그 달콤한 지역 패권을 누리는 대가로 지구촌 평화를 위협해온 군수산업계 독점자본들의 몸종 노릇을 해왔음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사고의 틀을 깨고 용기를 내어 더 높은 가치를 지향한다면, 이런 졸렬한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발언은 두려운 것도 아니고 새로울 것도 없다. 그것을 인정하며 자조에 빠질 일도 아니다. 평화와 합리적 민주주의를 바라는 일본 민중들과 연대해서 퇴치할 수 있는 ‘범죄’, ‘사이비종교’ 따위에 불과한 것이다.
한 나라의 집권세력이 되고자 하는 정치지도자들이라면 제국주의자들의 사이비종교와 범죄적 사고, 그 프레임에 민중들이 그대로 빠져들지 않도록 이끌어야 한다.
표에 도움이 되는 즉자적 반일감정과 반정부 여론을 위해 사람들의 반일정서에 휘발유를 붓고 불을 당기는 것은 성폭력 예방교육 때 청소년들에게 포르노를 보여주면서 자위행위를 권유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집권을 위해 유권자를 일회용 들러리로 동원하는 행위다.
반일감정을 부추길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 통치자들과 반핵평화 세력들의 긴장관계를 부각시키고, 평화세력과 협력하고 그들을 지원하는 식의 접근을 모색해야 한다. 그것이 한국 민중들을 편협하고 배타적인 제국주의자들의 프레임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는 길이다.
이상현 기자 ?coup4u@theasian.as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