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명절 ‘노루즈’ 맞이한 이란의 세 사람 이야기
*아시아엔 해외필진 기고문의 한글번역본과 원문을 함께 게재합니다.
[아시아엔=알리레자 바라미 이란 ISNA통신 편집장] 봄의 첫날, 페르시아는 ‘새날’을 의미하는 새해 ‘노루즈’(Nowruz)를 맞이한다. 대체로 3월 21일을 전후해서다.
봄은 새로운 시작의 상징으로, 페르시아는 옛 것과 거리를 두고 새로운 것을 맞이하며 새해를 자축한다. 이란을 비롯해 아프가니스탄, 중앙아시아 코카서스 지역의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아제르바이잔, 한때 페르시아제국의 영토였던 터키와 이라크 일부 지역도 노루즈를 기념한다.
노루즈는 역사적 인물의 탄생일을 뜻하여 이란인들은 한 해의 마지막 목요일에 고인을 추모한다. 또한 매년 새해마다 작년에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이들을 기리기도 한다. 필자는 올해 노루즈를 빛낸 3인을 소개한다.
노래 한 곡으로 그래미 어워드 수상한 셔빈 하지푸르
셔빈 하지푸르(Shervin Hajipour)는 홈스튜디오에서 아마추어로 노래 부르던 26세 청년이다. 그는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약 300km 떨어진 바볼사르라는 소도시에서 살고 있다. 하지푸르는 별도의 정규 앨범 발표는 물론 마케팅도 하지 않았지만 단 하나의 곡으로 2023년 그래미 어워드를 수상했다.
작년 가을 이란에서는 시위와 불복종운동이 연일 벌어졌다. 수도 테헤란에서 시작된 시위는 곧 이란 전역으로 퍼졌다. 이전까지 하지푸르의 커리어는 그리 눈에 띄지는 않았다. 이란 공영TV ‘Got talent program’란 프로에 등장하긴 했지만 최종 우승에는 못 미쳤었다.
이란에서 시위가 시작될 즈음 다수의 이란 시민들은 “(때문에)…”로 시작하는 문장을 트위터에 업로드하며 정부에 대한 항의를 표현했으며, 이런 문장들을 모아 사회적 고민을 담은 노래를 만들었다. 당시 하지푸르도 홈스튜디오에서 여성들의 자유를 염원하는 ‘바라예’(Baraye)라는 곡을 만들었고, 노래 영상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이 영상은 며칠 만에 4천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이란 시위의 대표곡으로 전세계에 퍼져 나갔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곡을 반복해 재생했으며 다른 나라의 가수들도 이 곡을 번역해 부르기도 했다.
2023년 그래미 어워즈는 ‘사회변화를 이끈 곡’(Best Song for Social Change)이란 상을 새로이 추가했는데, 이 글의 주인공 셔빈 하지푸르는 ‘사회변화를 이끈 곡’ 최초의 수상자로 그래미 어워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셔빈 하지푸르는 이란 정부에 항의하는 곡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는 이유로 법원에 소환됐고, 그에 따라 해당 영상을 삭제한 후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는 그래미 어워드 수상 당시에도 개인페이지에 “우리가 승리했다”는 짧은 메시지를 남겼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래미 어워드 ‘사회변화를 이끈 곡’을 대리수상한 미국 대통령 영부인 질 바이든이 정치색이 짙은 메시지를 전달함에 따라 셔빈 하지푸르도 이에 대한 공식적인 답변을 남기게 됐다. 그는 “예술가로서 내 작품이 정치적인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원하진 않는다”고 강조하면서도 “이 상을 받게 돼 이란 국민으로서는 기쁘다”는 말을 남겼다. 그럼에도 하지푸르는 이 상을 수여한 미국 정부의 경제 제재에 의해 이란과 이란 국민이 큰 고통을 겪고 있는 사실에 마음 아파했다.
올해 봄, 이란은 여느 해와 다름없이 새해 명절 ‘노루즈’가 다가왔고, 셔빈 하지푸르도 26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새해와 생일을 동시에 맞이한 그는 자신의 SNS에 한번쯤 곱씹어 볼만한 문장을 남겼다. “지난 한 해, 우리는 1년 그 이상으로 부쩍 자랐다”
3세기에 걸쳐 생존한 명편집자 아마드 사미에이 길라니
3세기 동안 살았던 이란의 문화인이 노루즈 명절에 사망했다. 아마드 사미에이 길라니(Ahmad Samiei Gilani)는 이란의 태양력(Shamsi) 기준 13~15세기에 걸쳐 생존했던 이란의 가장 저명한 편집자였다.
아마드 사미에이는 서기 1921년 1월 31일, 즉 이란 태양력으로 1299년(13세기)이 끝나기 약 7주 전 이란 북서부의 라슈트 시에서 태어났다. 아마드 사미에이는 102세 생일을 몇 주 앞두고 엉덩이뼈 골절 수술을 받았다. 이후 고향에서 회복돼 가던 중 102년 1개월 20일의 생애를 마감했다. 이란 태양력으로 1402년의 둘째날이였다. 그는 자신의 장수 비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수많은 책을 페르시아어로 번역했고 또 편집했지만 나는 그다지 창의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그저 좋은 발신자이자 수신자가 되려고 노력했을 뿐이다.“
아마드 사미에이는 다른 사람의 작업에 너무 많이 관여했기 때문에 결코 좋은 편집자가 아니었다며 자신을 낮췄다. 그러나 최고의 편집을 위해 이런 과정은 필수불가결했으며 그 역시 이러한 자신을 통제하진 못했다. 페르시아어문학아카데미는 아마드 사미에이의 사망 2년 전 그의 100주년 생일을 기념하며 그가 작업해온 결과물들을 정리했는데, 이는 이란 문학의 보물창고와 다름없었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40이 넘은 나이에 편집일을 시작했으며, 45세 즈음에 첫 책을 펴냈다는 점이다.
생애 대부분을 이란의 주요 출판사 등에서 몸담았던 아마드 사미에이는 수많은 동료와 후학들로부터 존경받은 명편집인으로 기록될 것이다.
신념 따라 행동에 나선 무명의 청년들
지난 한 해는 이란 국민과 이란 정부에게 잊지못할 한 해였다. 이란이란 이름이 세계 유수의 통신사 뉴스에서 수도 없이 언급되었는데, 그 발단은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취임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 핵협상을 중단함에 따라 이란산 석유 판매는 감소됐고, 이란의 통화 가치도 크게 떨어졌다.
조 바이든이 대통령이 되면 상황이 바뀔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서방과의 협상에 반대하는 정파의 이란에서 득세했다. 이들 보수·우익 세력은 개인의 자유를 놓고 젊은 세대와 첨예한 갈등을 빚었다. 작년 가을 경찰서에서 어린 소녀가 의문사 당하면서 일어난 이른바 히잡 시위가 그 산물이다.
필자는 기자로서 23년 전, 13년 전, 5년 전, 그리고 3년 전 모두 4차례에 걸쳐 이란의 거리시위를 직접 경험했다. 작년 시위에는 이전과는 다른 세대의 시위대가 주축을 이뤘는데, 어린 소녀들이 뜻을 갖고 시위에 앞장섰다는 점이 특징이었다. 그 영향일까? 이란 정부 역시 이전보다 관대하게 시위대에 대처한 측면도 있었다.
작년 시위에는 국외 거주중인 반정부 인사들도 큰 역할을 했다. 이들이 이란의 청소년들이 폭력적인 행동을 하도록 부추김에 따라 시위가 일부 폭력적으로 변질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 결과 시위대와 경찰 간의 충돌과 경찰 조사 과정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숨졌다. 시위는 점차 수그러들었지만, 이슬람 규율에 따라 시위대에 대한 법원명령 집행이 이뤄지며 새로운 시위가 벌어졌다. 이를 취재하는 언론인들도 이로 인해 체포되는 등 고초를 겪었다.
어느새 이란에서 시위가 시작된 지 6개월이 지났다. 그 사이 이란도 지난 3월 중순 수년 전 단절됐던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국교를 재개하는 등 큰 변화를 맞이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스라엘의 동맹국이지만 중국의 중재를 받아들여 이란과의 재수교를 결정했다.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양국은 지난 몇달 동안 중재국인 중국과의 경제협정을 체결하기도 했다.
이란은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아랍에미리트(UAE)와의 관계도 개선했다. 이후 바레인, 이집트, 쿠웨이트 등 다른 아랍국가와의 수교관계가 수립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란과 다른 아랍국가들은 같은 이슬람교를 믿지만, 페르시아와 아랍 지역 사이에는 항상 갈등이 존재해 왔다. 이들은 때때로 전쟁도 불사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현실 정치 세계에서 늘 벌어지는 일들이다.
그러나 이란의 젊은 세대는 국익에 기반한 정치적 굴레에서 벗어나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믿고 행동에 나섰다. 그래서 필자는 현재 이란의 상황이 해외언론에서 보도되는 것보다 차분하다고 당당히 얘기할 수 있다.
이란 국민들은 새해를 맞이해 저마다의 명절을 보냈다. 이란 국민들은 거리로 나와 쇼핑을 하거나 서로에게 덕담을 건네며 교류한다. 어떤 이들은 그리운 고향집으로, 어떤 이들은 여행을 다녀오기도 한다. 그럼에도 지난 몇달 간의 시위에서 가족을 잃은 이들은 지금도 슬픔에 젖어 있을 것이다. 현실 정치는 항상 이런 식이다. 언제까지 국민들의 희생을 강요할 것인가?
3 Iranian personality of the year
By Alireza Bahrami
Persian New Year is on the first day of spring. It is called “Nowruz”. Nowruz means “new day” in Persian language. Spring is a symbol of a new beginning, and the Persian New Year ritual is based on this reason: distancing from the old and greeting new things. In addition to Iran, Nowruz is also celebrated in Afghanistan, Tajikistan, Turkmenistan, Uzbekistan, Azerbaijan and other countries of Central Asia and the Caucasus region, as well as parts of Turkey and Iraq that were once in the cultural territory of the Persian Empire? From one day to 13 days.
In legends, Nowruz is the birthday of certain historical figures. Iranians also honor the memory of the deceased on the last Thursday of the year.
In different cultures, in each new year, the chosen characters of the previous year are chosen. We will also talk about 3 selected characters in this article. I am sure you will be thrilled.
First character; Winner of the Grammy Awards, without releasing a track in music marketing!
Shervin Hajipour is a 26-year-old who used to sing as an amateur in a home studio. He lives in a small town called Babolsar, which is about 300 kilometers away from Tehran, the capital of Iran. This small city in the north of Iran, on the edge of the Caspian Sea, has a population of 60,000.
Shervin won the Grammy Award in 2023 even though he had not released any music album and not even a commercial track.
The beginning of autumn last year was the beginning of street protests and civil disobedience in Iran. Protests that started in Tehran, but soon took place in other cities as well. Before that, Shervin had only been seen in a got talent program on Iran’s official television. His style of singing, which was in the style of Iranian pop music, was noticed to some extent, but he was not among the final winners.
At the beginning of the protests, many Iranian citizens published the reason for their protest in the form of tweets, including sentences starting with “for (because)…”. By putting together a number of tweets, the young musician made a song containing social concerns. He sat down in his home studio and performed his song on a melody. He posted this piece on his Instagram. It was viewed more than 40 million times in a few days. Soon, this piece became the anthem of the protests. Iranians abroad also played it in their meetings. Many people reread the piece. Even singers from other nationalities performed the translation of this song with the same melody and in the same style.
The Grammy Awards added a new award this year, Best Song for Social Change.
This award went to “Sharvin Hajipour” in the first round. The award was presented to him by the wife of the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in Afshin’s absence on the stage of the crypto.com competition in Los Angeles. Shervin, who was summoned and interrogated by a court in Iran a few days after the release of his song and deleted the video of the song from his Instagram, has been silent since then. But after winning the Grammys, he posted a short message on her personal page: “We won.”
But because the wife of the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had made a political speech while presenting this award to the young Iranian singer, Shervin reacted in an official statement. He emphasized that as an artist, he does not like his artwork to be used as a basis for the demands of politicians; Especially the politicians who have put pressure on the people of his country with their policies.
Shervin said that I and my people are happy to receive this award, but I wish an artistic personality would give it; Because a large part of the life and happiness of the people of Iran and the region has been destroyed by a government whose president’s wife gave him this award.
Now that these lines are being written, Shervin’s 26th birthday is during the Iranian New Year holiday. On this occasion, he wrote on his page on social networks: “This year we grew up more than a year.”
Second character; A man who lived in 3 centuries
A cultural figure in Iran who lived for 3 consecutive centuries, died during Nowruz holiday.
Ahmad Samiei Gilani was the most famous editor of Iran, who lived in the 13th, 14th and 15th centuries of Solar (Shamsi, Iranian calendar). Something that happens to few people.
He was born on January 31, 1921, while there were about 7 weeks left to the end of the solar year 1299, in the city of Rasht in the northwest of Iran. Accordingly, he spent a year and a few weeks of the 13th century in his infancy.
Samiei experienced the entire 14th century as a child, teenager, youth, middle age and old age and lived more than a year in the new century of Iran (1401, 15th solar century).
He fell at home a few weeks before his 102nd birthday, and underwent surgery at the hospital due to a broken hip bone. After that, he was transferred to his hometown to spend his recovery period. Finally, he died on the second day of the solar year 1402, while he had lived for one century, two years, one month, and 20 days.
He knew the secret of his long life in the fact that he never had a grudge against anyone and as a result he was never harmed.
Samiei Gilani, who translated many books into Persian and was a master of editing, said that he was not very creative and only tried to be a good sender and receiver.
He also believed that he was not a good editor because he interfered too much in other people’s work! But he had no choice because he couldn’t control himself not to look for the best.
Persian Language and Literature Academy celebrated the centenary of this old member two years ago.
Samiei Gilani’s important feature of this Abode is that he recalled the memories of decades ago in detail, and in this sense, he was an accurate historical source in the field of Iranian culture.
Another interesting thing about him was that he was over 40 when he started editing and over 45 when his first book was published.
During these years, he worked in the most important publishing houses and encyclopedias in Iran and was highly respected by his colleagues and students. His body was buried in a cultural place in the city where he was born.
Third character; The youth of Iran
The past year was very strange for the Iranian people and the Iranian government. The name of Iran was mentioned many times in the news of the world’s leading news agencies.
It all started a few years ago when Donald Trump became the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His country withdrew from negotiations with Iran on the nuclear issue. Since then, Iran’s oil has been sold less and the value of the national currency has decreased in Iran.
When Joe Biden became president, there was an expectation that the situation would change, but it did not.
The failure of the negotiations made the people of Iran not to participate in the presidential elections. As a result, another political faction was elected that was not in favor of negotiating with the West.
The conservative and right-wing faction in Iran fought with the young generation over individual freedoms.
In the middle of the year, the death of a young girl at the police headquarters caused a new wave of protests to form in Iran. I have personally experienced street protests in Iran as a journalist 23 years ago, 13 years ago, five years ago and three years ago.
This time another generation of protesters had emerged. They were reckless and angry; Especially young girls who played a greater role than before. Of course, the government dealt with the protesters with more tolerance this time.
Foreign opponents played a greater role in the protests. The protests gradually turned violent. Opponents abroad also encouraged the youth to commit violent acts.
Little by little, people were killed among the protesters, the police and the police forces.
The protests subsided little by little, but the execution of the court order against several protesters, which was carried out according to the rules of Islam, created new protests. Journalists also experienced difficult working conditions. Some of them were arrested.
But six months have passed since the beginning of the protests, diplomatic relations with Saudi Arabia, which were severed a few years ago, were resumed last week.
Saudi Arabia was supposed to be an ally of Israel, but in a twist, it accepted Chinese mediation.
Iran and Saudi Arabia signed economic agreements with China in the past months.
After Saudi Arabia, relations with the United Arab Emirates also improved.
Then it was heard that relations will be established with Bahrain, Egypt, Kuwait and some other Arab countries.
Iran and Arab countries have commonalities; Including the religion of Islam, but there have always been conflicts between Persians and Arabs that have sometimes led to historical wars.
This is how the world of politics has always been. Political rotation based on national interests. But young people have always stuck to their beliefs or become disillusioned.
The situation in Iran is calmer than what is published in the media. People shopped for New Year in crowded streets.
With the beginning of the Persian New Year (Nowruz), people congratulated each other, went to each other’s houses and went on trips; Except for the families who lost their children in the protests of the last few months. The world of politics is always like this; It always requires a sacrifi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