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로로 잡힌 거제포로수용소장과 문민 국방장관
1952년 5월 7일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수용소장 프란시스 도드(Francis Dodd) 준장이 북한군 포로에 포로로 잡히는 일이 벌어졌다. 콜슨이 소장으로 와서 공산측의 요구로 그들이 작성한 문서에 서명하고 도드를 구출하였다,
격분한 클라크 유엔군사령관은 도드와 콜슨을 준장에서 대령으로 강등시키고, 보트너 준장으로 하여금 공수부대를 동원하여 수용소를 확보하였다.
유엔군사령관 클라크 장군은 진노했다. 그 중에 아이젠하워가 대통령 당선자로 한국에 왔다. 그는 2차대전에서 이탈리아 주둔군 최고사령관 클라크의 직속상관이었다. 아이젠하워는 국민에게 한국전을 끝내겠다고 약속하고 대통령이 되었다. 따라서 공산군이 휴전을 수락하도록 하기 위해 대규모 확전이 필요하다는 클라크의 확전구상을 들어줄 수 없었다. 결국 전쟁은 그로부터 1년반을 더 끌었고 금성전투 등 엄청난 희생 끝에 1953년 7월에야 마무리되었다.
휴전회담에서 공산측은 갖가지 협상전술로 유엔사측을 괴롭혔다. 클라크는 그 아픈 감회를 <다뉴브에서 압록강까지>에 저술하여 공산주의자들과의 협상에서 배워야 할 바를 요약했다. 우리 지도자들도 배워야 한다. 북핵문제를 두고 기나긴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미국과 한국대표 등은 클라크 장군의 저서를 정독하기 바란다.
미국에서 한미연합군사령부, 구주연합군사령부 등 통합군사령관은 통상 총사령관(commander in chief)으로 불리웠다. 오바마 대통령이 “commander in chief는 앞으로 대통령만이 쓰고 장군들은 모두 commander로 부르도록” 했다. 미군 장군은 아무도 불평을 하지 않았다.
동병상련의 한국 장군이 위로를 해도 문민우위라는 교과서적 원칙만 되풀이 할뿐이었다.
육군성에 육군장관이 있으며 교범도 육군장관 명의로 나간다. 육군 참모총장은 별도로 있다. 2차대전에서 육군은 전쟁성, 해군은 해군성이 지휘했고, 공군은 1948년 육해군 항공대가 합해져 생겼으며 국방성은 1954년에야 비로소 생겼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적 연고로 국방조직(Pentagon)은 방대하다.
그러나 21세기 관리혁신에 맞추어 미국도 국방성과 합동참모본부, 각 군 성과 각 군 본부가 따로 있는 것은 개혁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싶다.
문민장관은 군의 발전을 위해서 필요하다. 한국에서는 일부 제외하고 주로 군 출신이 장관이 되다보니 국방장관 자리가 합참의장, 각군 총장을 마친 다음의 진급 자리가 되어 여기에 목을 매게 되었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문민우위라 하여 일반직을 떠올리나 문민관료는 무인관료, 군인과 다를 바가 별로 없다.
따라서 PPBS(Planning Programming Budgeting System) 방식 경영으로 미군의 경영관리를 일신한 맥나마라 장관과 부시, 오바마 두 정부에서 5년간 국방장관을 지내고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최고의 공직자(Civil Servant)로 칭송받은 게이츠 국방장관과 같은 인재가 필요하다.
전설적인 국방장관이 아니더라도 우리에게 익숙한 와인버거와 럼스펠드와 같이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하는 인사가 국방장관이 되어야 한다. 국방장관은 미국에서는 총사령관 대리(DEPUTY COMMANDER IN CHIEF)로 명문화되어 있다. 합참의장은 그들의 최고 군사보좌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