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항진 여주시장 인터뷰…세종대왕 롤모델, 창의·행복 도시 여주
[아시아엔=인터뷰 이상기 기자, 정리 민다혜 기자, 사진 여주시청 제공] 이항진 여주시장은 시의원과 시장에 당선되기 전 환경운동전문가로 활동한 경험이 있다. 환경운동가에서 지방행정기관장이 됐지만 인생관은 변함이 없다고 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간’과 ‘사람’이다. 여주시장으로 취임한 후 그의 머리 속엔 여주라는 공간이 하나 더 추가됐을 뿐이다. <아시아엔>은 이항진 시장과 만나 그의 여주사랑에 대해 들었다.
여주의 ‘여(驪)’ 자는 ‘검은 말’을 뜻하는 것으로 예로부터 말(馬)과 관련이 많은 고장이다. 여주는 또한 우리나라 고유의 말(言語)인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이 잠들어 계신 곳이기도 하다. 여주는 그래서 ‘말’의 두 가지 의미를 품은 도시다.
“여주에 비가 많이 오면 말발굽 소리가 울리는 것 같다”는 이 시장의 말처럼 여주는 실제로 말과 관련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여주시는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가 공모한 ‘2021년 말산업 육성사업’에 선정됐다. 내년 12월이면 여주시 상거동 4만㎡에 실내외 마장과 원형마장 등을 갖춘 공공승마시설이 들어선다. 그 옆에 들어설 반려동물테마파크와 함께 지역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여주시는 말산업을 발전시켜 일자리를 창출하고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한다. 여주시 대신면 당남리섬 일원에서 경기도말산업협회가 주관하는 ‘경기도 지구력 & 유소년 승마대회도 열 계획이다.
세종대왕의 혼이 깃들어 있는 여주 세종대왕 영릉에선 지난 5월 15일 세종대왕 탄신 624돌을 기리는 숭모제전이 열렸다. 이항진 시장은 “세종대왕은 애민정신으로 백성들과 소통하기 위해 한글을 창제해 역사 속에서 화합과 통합을 이뤘다. 여주를 사람을 중심으로 소통하고 행복을 공유하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여주시는 지난 5월 말 세종대왕릉역에 건강계단을 설치했다. 해외의 유서 깊은 도시들은 계단이란 매개체를 통해 주변 풍경을 돌아보며 이웃과 소통하는 공간을 마련하곤 한다. 세종대왕릉역의 ‘계단’이 시민들의 쉼터로 사랑 받는 모습이 떠오른다.
여주의 ‘남한강’은 친환경 도시계획과 관련해 매우 매력적인 소재다. <아시아엔>은 이항진 시장 인터뷰를 위해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학)에게 질문을 요청했다. ‘명견만리’ ‘알쓸신잡’ ‘어쩌다 어른’ 등의 TV프로를 통해 대중에게도 친숙한 유현준 교수는 건축으로 세상을 조망하고 사유한다. 그는 저서 <공간의 미래>를 통해 ‘보행자 중심의 도시’ 여주를 주목했으며, 남한강변에 인프라를 구축해 자전거 인구를 끌어들이면 ‘매력적인 현대도시’가 될 것이라 제언했다. 실제로 여주시는 유 교수를 초청해 도시계획에 대한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유현준 교수는 서울과 인접해 있으면서도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보행친화도시’로서의 비전에 대해 이항진 시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여주의 미래비전은 탄소배출 제로의 친환경 ‘자족도시’라 생각한다. 2050년까지 탄소 배출이 제로화 되지 않으면 지구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자연과 이웃, 그리고 나와의 관계가 원만한 도시가 이상적인 도시다. 남은 임기동안 탄소 저감을 실현하는 지속가능한 친환경도시의 기반을 닦을 것이다. 이에 맞춰 여주의 체질도 자동차 중심에서 보행자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 보행자 중심의 ‘보도교’는 탄소중립 사회 구현에 선도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보행도시’를 기본 콘셉트로 하되, 장거리는 자전거나 전동킥보드 등 환경을 고려한 개인형 이동장치(PM)를 활용하면 된다. 여주는 한강을 끼고 흐른다는 지리적인 특성이 있다. 여주의 나루터는 예부터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는 통로이기도 했다. 과거에는 여주의 강줄기를 따라 도시가 연결됐다면, 미래에는 자전거와 같은 친환경 이동수단을 통해 도시가 연결될 수 있다.”
“부는 문화를 창출할 수 없지만 문화는 부를 창출할 수 있다. 여주시가 다양한 문화 창달에 역점을 두는 이유다.” 문화관광도시 여주의 활성화를 구상하는 이 시장의 지론이다. 여주는 한글과 남한강, 신륵사 등 많은 문화유산과 관광자원을 가지고 있다. 남한강의 물줄기 중 여주를 가로지르는 구간을 지칭하는 ‘여강’의 경관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여주만의 특성을 담은 ‘친환경 관광도시’를 계획하고 있다.
“친수(親水) 기반형 도시재생 벨트를 조성해 지속발전이 가능한 친환경 관광도시 구축에 매진하고 있다. ‘남한강주변 관광·문화·생활SOC 벨트 마스터플랜수립’은 이미 완료됐다. 보행자 중심의 보도교는 탄소중립 사회 구현을 위한 선도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역사유적지인 신륵사 관광지구와 금은모래유원지를 잇는 출렁 다리는, 국가하천에 최초로 세워지는 515m 길이의 보도교다. 지난 2월에 착공해 본격적인 하부 교각 공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출렁다리는 여주시와 수도권을 아우르는 복합 문화단지가 될 것이라 기대한다.”
여주 하면 도자기가 빠질 수 없다. 여주는 고려시대부터 북내면 중암리 가마에서 도자기를 구워 낸 전국 최대의 도자산업 집적지다. 한국전쟁 이후 급속히 성장한 여주시 도자산업은 1990년대 호황을 맞이했지만 값싼 수입 도자기 유입과 생산 설비 노후화, 종사자의 고연령화, 시대 변화에 따른 생활방식 변화 등으로 침체를 면치 못했다. 한때는 관련 업체만 600여 곳에 달했으나 현재는 부침을 겪고 있는 ‘도자산업’. 하지만 이항진 시장은 이를 되살릴 청사진을 갖고 있다고 했다.
“여주 도자산업은 오랜 세월 쌓아온 훌륭한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흩어진 도자산업 역량을 한데 모아 상품기획, 기술개발, 시제품 생산, 제품화, 상품화, 마케팅, 사후관리에 이르기까지 각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갖도록 돕고 있다. 이를 통해 자생력과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토록 지원할 예정이다. 여주시 도자산업은 문화와 산업이 함께 성장해야 한다. 특히 여기 종사하는 영세 소공인을 강소기업으로 성장시키는 것이 목표다. 여주시 도자 제조업 분야는 중소벤처기업부 주관 공동기반시설 구축사업에 선정되며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여주시는 도자산업 지원을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고, 나아가 한국 도자산업 부흥의 마중물이 될 것이다.”
여주시는 국내 최초 컨소시엄형 표준사업장인 ㈜푸르메여주팜을 통해 장애인의 안정적인 고용정책을 마련하고 친환경 설비 도입을 통해 지속가능한 선진형 농업모델을 제시했다.
“이 사업은 발달장애인의 부모가 스마트팜 건립을 위해 여주시에 토지 3,600평을 기부하면서 시작됐다. 버섯과 토마토 등을 키우는 ‘푸르메스마트팜’에 더해 가공 및 판매시설, 카페와 레스토랑, 체험교육장까지 결합한 복합문화시설이 건립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장애인 고용에 대한 국가책임을 확대하는 데 의의가 있다. 발달장애인 부모들의 고민에 사회 전체가 함께 답을 찾아간다는 공감대가 확대되기를 바란다.”
인터뷰 후 둘러본 현장. 푸르메여주팜 관계자는 “직원들이 자신감을 갖고 긍정적인 태도로 삶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변화를 느낀다”며 “식물이 쑥쑥 잘 자라나는 환경 속에서 사람도 성장하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푸르메여주팜’이란 공간을 통해 사회적 불균형을 해결하려는 여주시와 이항진 시장의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항진 시장도 여주의 일꾼으로 헌신한 지 어느덧 3년 세월이 흘렀다. 지난 임기동안의 소회를 물었다.
“민선 7기 5대 분야 7대과제 63개 공약사항 중 추진율은 71% 정도 된다. 특히 노인, 아동 등 복지분야 과제는 96% 이상의 성과를 거둬 모두 함께 누리고 나누는 ‘복지도시’로 거듭났다. 이를 통해 2020년 전국 기초단체장 매니페스토 우수사례 경진대회 ‘최우수상’ 등 2년 연속 우수기관으로 선정됐다. 여주시는 현재 학교시설 복합화를 통해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마을교육공동체를 계획하고 있다. 학교의 교육, 문
화·체육, 휴식, 복지, 자치활동 공간을 확보·구성하여 지역주민들과 함께 공유하는 것이다. 좋은 학교가 있는 도시는 더딘 것 같아도 발전을 거듭한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GTX 노선은 그에게 아픈 손가락이었다. 이항진 시장은 “GTX-D 노선의 경기도 연장이 반영되지 않은 점이 아쉽다. 여주가 전국 사통팔달의 교통의 중심지로 거듭나기 위해 경기 광주, 이천시 등 인근 시와 협력, 균형발전을 이룩할 것”이라 말했다.
전체 면적 608.38㎢의 대부분이 농산촌 지역인 여주는 65세 이상 인구(2만2279명)가 인구(11만1939명)의 20%를 넘어서는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었다. 그런 가운데 노인, 아동 등 복지분야에서는 큰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현 복지수준을 유지하기엔 어려움이 뒤따른다고 이항진 시장은 볼멘소리 했다. 이 시장은 어떤 복안을 갖고 있을까?
“인구의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삶의 질은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 외국인 인력 도입이 하나의 해결방안이 될 것이라 본다. 현재 여주시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은 약 5% 정도다. 21세기 열린사회에서 활동하게 될 다음 세대들을 위해선 다문화지향적인 정책과 문화가 필수적이다. 민족주의를 넘어 세계시민의식을 함양하는 데 주력해 나갈 방침이다.”
“다문화, 다민족 국가는 역사의 흐름”이라며 ‘글로벌 마인드’를 강조한 이 시장은 여주시의 국제교류 또한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현재 여주시는 일본의 니가타현 진남정(쯔난마치), 사가현 상봉정(카미미네마치)과 우호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진남정 눈축제와 도자기 축제 상호방문, 청소년 홈스테이 등을 진행했고, 중국 및 중앙아시아 국가들과도 우호교류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엔 ‘아프리카 등에 한글을 전파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소통이 가능한 무한한 공간 인터넷에서 한글을 전파해 우리의 문화와 기술의 우수성을 알리면 좋겠다.”
여주의 슬로건은 ‘사람이 하늘’이라는 동학 2대 교주 해월의 사상에 기인한 ‘사람 중심, 행복 여주’다. 행정가로서 이항진 시장이 생각하는 리더십은 무엇일까?
“시스템과 모니터링, 두가지를 고려해 정책을 결정한다. 시스템이 존재하더라도 자신을 객관적으로 모니터링하지 못하면 실패하기 십상이다. 자신이 옳다고 과신할 때 극단적인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 민주주의는 효율성도 중요하지만, 치명적인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사실에 의거해 행동하는가? 혹은 생각에 의거해 행동하는가? (민주주의는) 사실을 기초로 판단해야 하는데, 더하고 빼면 답이 나오는 산수와 달리 복잡한 이해관계를 고려해야 한다. ‘사실’은 세부적으로 철학적 사실, 수학적 사실, 과학적 사실로 나뉜다고 본다. 말과 글은 사실들을 왜곡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도구다. 말 또는 글로 정리된 사실을 시스템에 대입시키고 모니터링해야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으며, 그에 따른 리더십이 형성된다. 되돌아보면 사실이 아닌 생각에 의거한 결정이 시스템을 흔들어 놓는 경우가 많았다. 생각은 나 또는 누군가의 이해관계와 결부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사회구조는 정해져 있는 시스템 안에서 어느 정도 돌아간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시스템 밖에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며, 시스템은 이러한 문제들까지 보살피진 못한다. 이같은 문제들까지 책임지고 해결하는 것이 ‘리더십’이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간에서 이해관계에 따른 갈등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시스템 너머의 문제들까지도 함께, 그리고 지속적으로 고민하는 행정가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