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마지막 펼친 책은···

마음 속 대통령, 고(故) 노무현!


5월23일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3주기가 다가온다.?3년 전의 기억들이 생생하게?떠올라 가슴이 멘다. 그맘때 나는 고인을 마지막으로 만났다. 고인에게도 내가 마지막 방문객인 줄은 나중에 봉하마을 사저를 방문해서 권양숙 여사와 얘기를 나누다 알게 되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서재. 의자 옆 손을 뻗으면 닿을 만한 곳에 '한국의 야생화'(가운데 아랫줄 초록색 책)가 있고 바로 옆?USA라고 적힌 빨간색 표지의 책이 보인다.

그즈음 나는 미국 출장일정이 있었다. 뉴욕에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의 만찬이 방문 이틀째 저녁 일정으로 잡혀 있었기 때문에, 반 총장에게 노 대통령의 인사도 전할 겸 봉하마을 사저로 노 대통령을 예방했다. 고인이 반기문 당시 외교부장관을 유엔사무총장으로 세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지원을 했는지 익히 아는 터였다.

돌이켜 보면, 고인은 대통령이었을지언정 생활인이나 사업가로는 낙제점이었다. 물 사업, 식당 등 이것저것 손대는 일마다 말아먹지 않은 적이 없고, 그때마다 권여사의 속을 태운 것이 어디 한 두 번인가. 그러나 노 대통령은 정말 대통령직만큼은 국민과 나라를 위해 성심을 다해 수행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 생가에 걸려 있는 대통령 선서문

어느 일요일인가 노대통령 비서관 출신 S의원과 청와대에서 점심을 얻어먹은 적이 있다. 밥값이라도 할 요량으로 내가 역사에서 꼭 성공한 대통령이 되시라고 말했다가 노 대통령이 먹던 밥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언성을 높이며 항변하듯 울분과 고뇌를 토로하는 걸 지켜봐야 했다.

물론 그때는 탄핵소추로 정지됐던 대통령직에 직무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여러 가지로 국정이 꼬이고 어려운 처지이기도 했다.

그 당시 나는 면박 당한 것만 무안하고 은근히 부아가 나기도 했으나, 국정최고책임자인 대통령으로서 느꼈을 고독과 고뇌는 고인이 없는 지금에 와서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기득권 의식, 아직도 반칙과 특권이 만연하는?역사와 시대의 물줄기를 바꾸기란 참으로 지난한 일임을 이제와 더욱 절절하게 공감하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마지막 읽었던 '한국의 야생화(이유미 지음, 다른세상 펴냄)'

고인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본 책은 <한국의 야생화>였다.

내가 출국인사도 할?겸 봉하마을 사저를 방문하여 서재로 들어섰을 때 고인은 카세트테이프로 금강경을 틀어놓고 이 책을 보고 있었다. 내가 들어서자 뿔테 안경을 책갈피에 내려놓으며 대뜸 책이야기를 했다.

“모르는 야생화가 참 많네요. 정말 예쁩니다. 김 의원도 한 번 꼭 보세요.”

고인이 봉하마을 뒷산 부엉이 바위에서 몸을 던져 죽음을 택했다는 소식은 뉴욕 방문 이틀째 거기 시간으로 늦은 오후 무렵 전해졌다. 방문단 일행 중 나를 포함한 일부는 반기문 총장과의 만찬 일정도 취소하고 가장 빠른 항공편으로 급히 서울로 돌아왔다.

내가 다시 봉하마을에 내려가 서재에 들어섰을 때 고인이 이틀 전 나를 맞이하면서 책갈피에 안경을 내려놓은 그대로 <한국의 야생화> 그 책은 펼쳐져 있었다. 한 장도 더 넘겨지지 않은 채.

그때 고인은 나를 맞으면서도 마음은 이미 뒷산 부엉이바위에 가있었던 건 아닐까. 내색 없이 의연하게 방문객을 맞는 그의 심정은 또 얼마나 내면 깊은 곳에서 요동쳤을까. 공권력의 이름으로 야비하고 더욱 교묘하게 압박해 오는 권력에 맞서 달리 저항할 방법이 없었던 것일까.

노무현 생가 담장에 핀 들꽃과 그 앞 텃밭.

어찌 잊을 수가 있을까. 봉하마을 사저를 나와 마지막 가는 길 집앞 골목길 잡초도 뽑아보고 구석에 피어난 민들레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선이며,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는 그 먹먹한 표정, 뒷짐을 지고 구름을 밟듯 부엉이바위로 향하는 허허로운 그의 발길을.

출국하기 하루 전 고인이 꼭 보라고 권했던 그 책을?1년 뒤 보게 되었다. 마지막 먼 길을 떠나기 전 그가 눈에 넣었을 우리 산하, 들녘의 어디 이름 모를 아름다운 꽃들을.

아, 내 마음 속의 대통령, 노무현! 오늘 그가 한없이 그립다.

<글·사진=김종률 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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