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속살③] 현대미술 4대천왕···장샤오강·웨민쥔·팡리쥔·쩡판즈

쩡판즈 ‘가면’

[아시아엔=서형규·황가영·안주영·심형철·이희정 교사] 중국의 현대미술은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1980년대부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문화대혁명 시기는 미술도 암흑기였다.

문화대혁명은 1966년부터 10년간 마오쩌둥(毛澤東)의 사상을 받들어 사회주의 문화를 이룩하자는 취지로 학생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홍위병들이 문화, 예술, 교육 등 거의 모든 영역에 걸쳐서 반사회주의적인 것들을 탄압한 운동이다.

1976년 마오쩌둥이 사망하면서 문화대혁명이 끝나기까지 당연히 예술에서도 개인의 자유로운 창작활동은 통제되었고, 미술 역시 사회적 분위기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문화대혁명 당시의 미술작품은 사회주의 이념을 선전하기 위한, 밝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연출한 작품들이었다. 그래서 이 시기에 그려진 그림들은 화풍이나 스타일이 천편일률적이어서 작가가 누구인지 알아보기도 어렵고, 작가가 누구인지 알 필요도 없었다.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기능인으로 전락했다.

문화대혁명이 종결된 후 중국은 개혁개방의 실용주의 노선을 택하면서부터 예술계에서도 문화대혁명에 대한 비판이나 자유로운 창작의 여지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중국 현대미술이 점차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1980년대 중반에 일어난 청년 예술작가들의 ‘새로운 움직임’의 정점은 ‘85미술운동’이다. 85미술운동은 한마디로 혁명이나 마오쩌둥을 우상화하는 사회주의 시기의 미술 작품에서 벗어나
서구 자본주의의 모더니즘 양식을 받아들이자는 움직임이었다. 당시 젊은 예술가들을 중심으로 100여 개의 미술단체들이 생겨났다.

198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가장 핫한 중국 현대 작가라고 할 수 있는 중국 현대미술의 4대 천왕을 소개한다. 이들은 모두 문화대혁명 이후 급변하는 중국의 현실을 작가만의 예술적 시각으로 담아내고 있다.

그들은 겪고 느낀 중국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장샤오강 ‘혈연 대가족 NO.3’

먼저 소개할 인물은 장샤오강(張曉剛). 그는 1958년 쿤밍(昆明)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청년이 될 때까지 문화대혁명을 겪었고, 이 경험이 그의 작품에 큰 영향을 미쳤다. 장샤오강은 문화대혁명 시기인 1972년 농촌으로 쫓겨나기도 했지만, 여전히 미술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았다. 그는 문화대혁명이 끝난 후인 1977년 미술대학에 입학하여 전문적인 미술 공부를 시작했다.

장샤오강의 작품 중에 자신의 낡은 가족사진에서 영감을 얻어 그린 「혈연: 대가족 NO.3」는 2014년 홍콩 소더비 경매에서 9420만 홍콩달러(한화 128억원)에 낙찰되면서 최고가를 기록했다. 2007년 그의 그림은 고작 6달러에 팔렸었다. 그의 대표작품인 대가족 연작시리즈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무표정한 얼굴에 크고 맑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 이 사람들은 회색 혹은 청회색의 배경 때문에 더욱 냉정하고 차분하게 느껴진다. 전체적으로 무채색의 작품에 일부 사람만 붉은빛과 흰빛으로 색칠한 것이 장샤오강 작품의 특징이다.

장샤오강의 작품을 두고 비평가들은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중국인과 중국사회의 자화상이다”, “오랜 사회주의의 장막을 걷어내고 변화의 바람을 맞고 있는 개인의 심리에 초점을 맞췄다”고 평가한다. 현재도 장샤오강은 국제 미술시장에 커다란 이슈를 만들며 주목을 받고 있다.

무표정한 인물이 장샤오강 작품의 특징이라면, 이번엔 정반대로 입을 크게 벌리고 하얀 이를 드러낸 채 활짝 웃는 그림으로 유명한 작가가 있다. 1962년 태어난 웨민쥔(岳敏君)이다. 평단에선 냉소적 사실주의를 보여주는 작가라고 한다.

웨민쥔 ‘처형’

냉소적 사실주의가 뭘까? 웨민쥔은 대부분 호탕하게 웃고 있는 사람들을 그렸다. 그런데 웃고 있는 사람들 모습이 마치 대중가요의 노래 제목처럼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라고 말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이런 그림들을 통해 웨민쥔이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을 짐작할 수 있다.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중국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대한 풍자와 조롱, 집단화에 대한 거부를 웃음을 통해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웨민쥔의 「처형」이라는 작품은 2007년에 590만 달러에 낙찰되었는데, 이 그림은 속옷만 입은 남자 네 명이 나란히 서서 크게 웃으며 처형당하길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또 이들을 마주보고 처형을 집행하려는 사람은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은 채 마치 소총으로 조준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밖에도 웨민쥔의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크게 웃고 있지만 기뻐 보이진 않는다. 그 웃음 뒤에 결코 웃지 못하게 만드는 요소들이 배경으로든, 색깔로든 혹은 제목으로든 작품 곳곳에 깔려 있다. 이런 게 바로 ‘냉소적 사실주의’다. 그런데 웨민쥔은 “내 그림 속에는 결코 냉소적인 것이 들어 있지 않다”며 “그저 표면적인 메시지만 읽어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작가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무언가 의미심장한 의미가 있다.

팡리쥔 cloud edition

이번엔 무표정한 얼굴도 웃고 있는 얼굴도 아닌, 대머리를 그린 작가가 있다. 팡리쥔(方力鈞)이다. 1963년 태어난 팡리쥔은 4살 때부터 문화대혁명을 겪으며 힘든 유년시절을 보냈다. 1989년 천안문사태를 겪으면서 중국인의 아픔을 내면화 했다. 팡리쥔 작품 속 인물들은 대머리가 트레이드 마크로, 복잡한 감정이 뒤섞인 표정을 짓고 있다. 얼굴형도 반듯하지 않고 턱선이 약간 비뚤어져 있다거나 고함을 지르는 듯 악을 쓰는 얼굴 등 표정이 다양하다. 이는 앞서 한결같이 웃고 있는 웨민쥔의 작품 속 인물들과 다른 점이다.

팡리쥔의 작품 속 인물들의 표정을 보고 있으면 침울하기도 하고, 또 어떤 얼굴은 모든 걸 체념한 듯한 느낌도 든다. 비평가들은 무표정한 얼굴은 사회 구조 속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개인의 무력감을 상징하는 것이며, 이 또한 냉소적 사실주의라고 평가하고 있다. 팡리쥔은 자신의 작품에 대해 “모든 것을 상실했고, 허탈하고, 위기에 처했고, 건달 같고, 막막해 보이는, 이 개운치 않은 인물들이 마치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맑고 쾌청한 하늘 아래 등장했다”고 표현했다. 작가가 겪어온 중국을 함축해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팡리쥔의 최고가 작품은 「시리즈 2, No.4」로 약 83억원에 이른다.

쩡판즈 ‘가면’

4대천왕의 마지막 인물인 쩡판즈(曾梵志)는 가면을 쓴 얼굴 그림으로 유명한 작가로 1964년 태어나 문화대혁명과 천안문사태를 겪은 세대다. 그는 일명 ‘가면 시리즈’로 명성을 높였다. 《뉴욕타임스》에서는 ‘중국의 떠오르는 스타’로 쩡판즈를 소개했다. 쩡판즈는 85미술운동 시기에 처음으로 모더니즘을 접하고 강한 충격을 받았는데, 이것이 그의 창작활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비평가들은 그의 작품들 속 무표정하거나 인공적인 웃음의 가면 이미지는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급속히 이동하는 과정에서 표정을 잃어버린 중국인들을 표현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가면을 썼다는 건 무얼 의미할까? 마치 ‘당신들은 내면의 진실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꾸민 표정만을 보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솔직하지 않은 가식적인 인간의 모습을 표현한 것 같기도 해서 한편으로는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한편으론 작가가 바라본 세상 사람들의 모습을 작품으로 그려낸 것 같기도 하다.

쩡판즈의 「최후의 만찬」은 소더비경매에서 2330만 달러(약 250억원)에 낙찰되었다. 이 작품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본떠서 「최후의 만찬」에 등장하는 예수와 12명의 제자를 모두 가면을 쓰고 붉은 넥타이를 맨 젊은 공산당원들로 바꾸어 그렸다.

그런데 예수를 팔아넘긴 가롯 유다의 자리에 있는 공산당원만 노란색 넥타이를 매고 있다. 이를 두고 한 비평가는 예수를 배반한 유다의 자리에 있는 공산당원이 서양 스타일의 노란 넥타이를 매고 있는 것은 중국이 자본주의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해석으로는 노란색은 예로부터 부와 권위를 상징하거나 황제의 색이었으니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것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작품 속 노란 넥타이의 남자는 중국 사회주의를 따르지 않겠다는 작가 자신의 상징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중국 현대 미술 4대 천왕의 공통점은 4명의 작가 모두 사람의 얼굴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무표정한 얼굴, 웃는 얼굴, 대머리에 체념한 듯한 얼굴, 가면을 쓴 얼굴까지 표현하는 방식은 제각각이지만 모두 얼굴을 그렸다. 왜 중국 현대 미술 작가들은 사람 얼굴을 그리는 데 집착하는 걸까?

문화대혁명 시기까지 가장 많이 그려졌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보았던 중국의 초상화는 마오쩌둥이었다. 마오쩌둥의 시대에는 고된 노동을 하는 인물들을 밝고 활기찬 얼굴로 미화해서 그려냈다. 그러다 문화대혁명이 끝난 후 개인의 느낌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되자 그 시절의 절망과 두려움 등을 자유롭게 풍자하면서 자연스럽게 감정을 얼굴에 그려내는 데 집중하게 된 것이라고 짐작된다.

작품에 대해 이렇게 자유롭게 짐작할 수 있고 열린 해석이 가능하게 된 것도 문화대혁명의 억압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작품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현대 미술의 특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중국 현대 미술은 1990년대 초반부터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는데, 불과 20년 만에 미국의 뒤를 이어 세계 미술시장에서 2위를 점유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빠른 속도의 발전에 전 세계 미술계는 놀라움과 두려움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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