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금강산 남측 시설 철거” 지시···문 대통령 ‘평화경제’ 국회연설 하룻만에 ‘초강수’
[아시아엔=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 경제협력의 상징인 금강산 관광사업을 ‘잘못된 일’로 규정하며 남측 시설의 철거를 지시하는 ‘초강수’를 내놓으면서 향후 남북 경협 전망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김 위원장은 23일 북한 매체에 보도된 금강산관광지구 시찰에서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 시설들을 남측의 관계 부문과 합의하여 싹 들어내도록 하고 금강산의 자연경관에 어울리는 현대적인 봉사시설들을 우리 식으로 새로 건설하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선임자들의 의존정책이 매우 잘못되었다”고 남측과의 협력을 통한 금강산관광을 직접 비판한 뒤 “우리의 명산인 금강산에 대한 관광사업을 남측을 내세워서 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거듭 밝혔다.
김정은 위원장의 이런 발언은 “조건이 마련되는 데 따라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을 우선 정상화한다”는 지난해 9월 문재인 대통령과의 평양 공동선언 합의와 정면으로 어긋난다.
지난해 남북정상회담 과정에서 양 정상이 도출한 9·19평양공동선언은 올해 들어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고 남북관계가 정체된 와중에서도 화해·협력 기조의 ‘보루’ 역할을 해 왔다.
김 위원장이 이를 사실상 번복한 것은 지난해 시작된 대남 협력 기류에서 방향을 틀겠다는 신호일 수 있는데, 이 경우 남북관계에 장기적 파장이 불가피하다.
특히 이번 발언은 남북 경제협력 자체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드러낸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기본적으로 남한에 의존한 경제개발을 하지 않겠다는 중요한 원칙을 밝혔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며 “관광재개를 압박하는 초강수를 던진 것이기도 하지만, 재개될 가능성이 작다는 판단을 하면서 근본적인 남북관계 전환을 시도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동안 금강산관광이나 개성공단 같은 주요 남북경협 사업 재개는 북미협상 과정에서 북한의 비핵화를 촉진할 수 있는 반대급부 ‘카드’로 꾸준히 거론돼 왔다. 즉, 당장은 대북제재로 전면 재개가 어렵지만, “제재 완화 초기국면에서 예외적인 조치”(김연철 통일부 장관 지난 6월 인터뷰 발언)로 고려할 수 있다는 인식을 정부도 가지고 있었다. 남북 경협을 비핵화 진전 지렛대로 삼으면서 남북관계와 비핵화의 ‘선순환’을 꾀하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남북경협에 거부감을 드러낸 만큼 이런 정부의 구상도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무엇보다 김 위원장의 ‘직접 지시’가 문재인 대통령이 ‘평화경제’를 강조하며 북한의 호응을 촉구한 지 하루 만에 나왔다는 점도 이런 전망에 무게를 싣고 있다.
문 대통령은 전날 국회 시정연설에서 “남북 간 철도·도로 연결, 경제·문화·인적교류 확대 등 한반도 평화와 경제협력이 선순환하는 평화경제 기반 구축에도 힘쓰겠다”며 “북한의 밝은 미래도 그 토대 위에서만 가능하다. 북한의 호응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2016년 가동이 전면 중단된 개성공단까지 충격파가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다만 김 위원장은 ‘남측의 관계 부문과 합의’해 남측 시설을 철거하라는 지시도 했는데 이는 남측과의 협의 필요성을 시사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이번 시찰에는 대남관계를 담당하는 장금철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도 동행했다.
북한은 2008년 7월 남측 관광객인 고(故) 박왕자씨 피격사망사건으로 금강산관광이 중단된 후 2010년 남측 자산을 몰수(정부 자산)또는 동결(민간 자산)했지만, 일단은 남측과 ‘합의’ 필요성을 전제한 것이다.
김 위원장의 지시를 계기로 남북 당국 또는 북측과 사업자인 현대아산이 마주 앉을 계기가 마련될 가능성도 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이날 배포한 정세브리핑 “부분적 남북협의 재개 시그널”로 평가하면서 “하노이 결렬 이후 대남 불만이 지속되고 있으나, 남북협력 불가피성을 간접 시사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금강산 사업 성과를 위해서는 대남 협력이 불가피한 현실 고려했다는 설명이다.
연구원은 또 “남측에 독점권을 부여해서 진행하던 기존 사업 방식의 변화를 예고하면서 우리의 전향적 입장 전환을 압박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정부 관계자는 “남측 관계기관과 합의하라고 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등을 파악해봐야 할 것 같다”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북한의 최근 남북교류 거부 태도를 볼 때, 협의가 성사되더라도 북한의 일방 통보 등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
또 김 위원장이 철거를 지시한 ‘남측 시설’에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가 포함될지도 관심사다. 일단 이날 김 위원장이 돌아봤다고 언급된 시설에 면회소는 빠져 있지만, 혹시라도 포함된다면 금강산에서 진행돼 온 이산가족 상봉 등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9월 평양 정상회담 당시 금강산 이산가족 상설면회소의 전면 가동을 위해 면회소에 대한 몰수 조치를 해제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