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女교무도 결혼할 수 있다···’독신서약’ 공식 폐지·104년 만에 허용

     원불교 여교무들도 결혼할 수 있게 됐다. 또 검정치마 흰저고리도 바뀔 듯하다.

‘검정치마·흰저고리’ 정복도 바뀔 듯···정녀지원서 삭제

[아시아엔=연합뉴스] 원불교가 개교 104년 만에 여성 교역자(교무)의 결혼을 허용했다.

원불교는 “지난달 교단 최고 의결기구인 수위단회(首位團會)를 열어 여성 교무 지원자가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했던 ‘정녀(貞女)지원서’를 삭제하는 내용의 ‘정남정녀 규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고 12일 밝혔다.

원불교에 따르면 정녀지원서는 원불교 여성 교무로서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겠다고 약속하는 일종의 서약서다. 원불교는 여성 예비 교역자가 대학 원불교학과 입학을 지원할 때 이 서약서를 제출하도록 의무화했다. 이런 탓에 원불교 여성 교무는 결혼할 수 없었다.

이번 교헌 개정으로 정녀지원서 제출 의무가 사라지면서 앞으로는 원불교 여성 교무도 남성 교무처럼 자율적인 의사에 따라 결혼을 선택할 수 있게 됐다.

원불교 최고지도자이자 수위단회 단장인 전산(田山) 종법사는 “이번 정남정녀규정 개정의 건은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한 결의가 될 것이며, 교단의 큰 방향이 되고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자평했다.

1916년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가 개교한 원불교에서는 여성 교무들이 독신으로 사는 것이 불문율처럼 여겨져 왔다. 어린 나이에 결혼했지만 일제강점기나 한국전쟁을 거치며 배우자를 잃은 여성이 교무로 들어오는 경우는 있었다.

1986년에는 아예 교헌을 개정해 정녀지원서 제출 의무를 명시화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정녀지원서를 두고 남녀 차별이라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됐다.

원불교 초기 정남정녀 규정은 정남은 물론 정녀 지원도 스스로 희망할 경우에 하며, 지원 이후 정식 인증을 받기 전 언제라도 지원 변경이 가능하도록 했다.

또 지원을 변경한 사람에게 손해가 가지 않도록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번 정녀지원서 제출 의무 폐지는 이 같은 초기 정남정녀 규정의 정신을 되살리는 데 의의가 있다고 원불교 관계자는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여성 (교무) 사이에서 정녀지원서가 자율적인 선택조항이어야 한다는 요구가 많았다”며 “정녀지원서 제출 의무 폐지가 원불교 초기 정신에도 더 부합한다는 판단에 따라 규정을 다시 개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다만, 이번 교헌 개정으로 정남정녀 지원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변경된 규정에 따라 정남정녀 희망자는 정남정녀 승인을 받은 때로부터 42세 전까지 지원서를 제출한다. 이들이 독신 서약을 지켜 60세가 되면 교단은 정식으로 정남정녀 명부에 등록한다.

원불교는 교역자들의 신병 치료와 노후 봉양을 할 때 정남정녀 교역자를 그렇지 않은 교역자보다 우선해 살피도록 한다.

원불교는 여성 교역자의 상징으로 여겨진 ‘검정 치마, 흰 저고리’ 정복에 변화를 주는 방안도 본격 검토한다. 기존 정복은 외부에 원불교 교역자로서 상징적인 이미지를 주는 이점이 있지만, 활동성이 떨어지고 관리가 쉽지 않다는 여론도 제기돼 왔다.

2 comments

  1. 원불교는 기본적으로 출가자의 결혼과 직업을 각자의 원에 맡기고 사가가 있는 경우 그 지원방안 등을 모색하여 출가자로서 공중사에 헌신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여러 제도적 보완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공중사하는데, 가정사가 방해가 되지않도록 하였습니다. 이는 수도와 생활, 불법공부와 일상생활이 서로 둘이 아니라는 영육쌍전의 살아있는 종교가 앞으로 시대에 필요하다는 입장에 따른 것입니다. 그래서 초기에 여성 9인 제자들은 모두 결혼한 분들이었으며, 그 신분도 기생 출신으로부터 첩실, 왕가 출신 신여성, 거상의 안주인 등 다양했습니다.
    정남정녀 제도는 1927년(원기12, 정묘) 1월에 ‘유공인 대우법’에서 1조로 공식적으로 명시되는데, 이 법의 취지는 정남/정녀으로서 공중사에 헌신한 이들을 ‘유공인’으로 더욱 대우하자는 취지였습니다. 이로 인해 이후 많은 훌륭한 정남정녀들이 나와 공중사에 헌신해고 그 동력으로 일제시대와 한국동란 등 간고한 시절을 잘 견디고 오늘날 원불교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1. 원불교는 기본적으로 출가자의 결혼과 직업을 각자의 원에 맡기고 사가가 있는 경우 그 지원방안 등을 모색하여 출가자로서 공중사에 헌신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여러 제도적 보완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공중사하는데, 가정사가 방해가 되지않도록 하였습니다. 이는 수도와 생활, 불법공부와 일상생활이 서로 둘이 아니라는 영육쌍전의 살아있는 종교가 앞으로 시대에 필요하다는 입장에 따른 것입니다. 그래서 초기에 여성 9인 제자들은 모두 결혼한 분들이었으며, 그 신분도 기생 출신으로부터 첩실, 왕가 출신 신여성, 거상의 안주인 등 다양했습니다.
      정남정녀 제도는 1927년(원기12, 정묘) 1월에 ‘유공인 대우법’에서 1조로 공식적으로 명시되는데, 이 법의 취지는 정남/정녀으로서 공중사에 헌신한 이들을 ‘유공인’으로 더욱 대우하자는 취지였습니다. 이로 인해 이후 많은 훌륭한 정남정녀들이 나와 공중사에 헌신해고 그 동력으로 일제시대와 한국동란 등 간고한 시절을 잘 견디고 오늘날 원불교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자교무의 경우도 꼭 정녀만이 했던 것이 아니며, 최초의 여자교무는 오히려 당시 재가자였던 경성지부의 이공주(법호 구타원) 선진이었습니다. 1930년(원기15) 4월 23일(음 3월 25일)에 열린 제8회 평의회에서 결의하여 이공주를 정식경성교무로 발령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104년 만에 여교무 허용”이란 기사 제목은 정정해야 옳습니다. 이미 과거에도 재가자, 그것도 결혼했던 분도 교무를 할 수 있었으며, 이후에도 ‘세대전무출신’이라 하여 부부가 교무를 한 경우도 있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실제 소태산 대종사(박중빈)는 1933년(원기 18) 4호(11월호)에서 정남정녀제도의 취지와 달리 “혹 본회에서 규칙적으로 정남 정녀를 장려하야 결혼을 구속하는가 하는 오해하에 각자 이상을 실현치 못할까 하는 염려가” 있어서 ‘예비정남정녀부’와 ‘정식정남정녀부’라는 두 명부의 실행을 보류한 적이 있습니다. 이를 통해 본래는 “연령 25세 이상은 예비정남정녀부에 등록하고, 여자로 50세, 남자로 60세 이상이 될 시에 정식정남정녀부에 등록”한다는 이 제도의 골자에 대한 대중의 오해를 불식시키려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이 제도는 일생을 독신으로 공중사에 헌신한 분들의 공덕을 특별히 대우하라는 취지가 그 본의였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1986년에 여성에게 정녀지원서 제출을 의무화한 것은 여성교무의 역할이 커짐에 따라 독신여성이 주류가 되었고 관행처럼 여성교무들은 정녀로 살아가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으며, 이것이 제도화되면서 지금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정녀지원서 제출의무 폐지는 원불교의 교리나 시대적 역할, 소태산 대종사의 본의 등에 따른 조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일찍부터 여성을 교육시키고 지도자로서 활동하도록 지도했던 원불교의 자력양성과 교육평등정신을 복원한 것이며, 남녀평등이라는 시대적 요청에 부합된 결정이라고 생각됩니다. 평소 관심이 있었던 내용이라 몇 가지 사실관계를 찾아서 밝힙니다. 이를 통해 공중사에 헌신하셨던 정녀 교무님들의 삶이 더욱 빛나길 바라며, 지금까지의 남/녀, 출가/재가, 성/속 등 이분법적이고 차별적인 제도나 인식에서 벗어나 앞으로 결혼과 직업 등 생활이 결코 종교활동에 방해가 되지 않는 ‘탈종교시대의 종교’로서 원불교가 좋은 모범이 되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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