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300년’ 박노해 “이 나이가 되도록 집도 없이 떠다니는 나는”
이삿짐을 꾸리다 슬퍼지는 마음
언제까지 이렇게 떠다녀야 하나
반지하 월세방에서 전셋집으로
재개발로 뉴타운으로 떠밀리며
짐더미에 앉아 짬뽕 국물을 마시다 보니
문득 사라져버린 고향 집 생각이 난다
300년생 굵은 소나무 기둥을 세워
향내 나는 새집을 짓고 난 아버지가
마을 뒷산 할머니 묘터 곁에다
어린 금강송 열두 그루를 심으며
평아, 이 나무 잘 봐두거라
우리 집은 튼튼히 지어서 300년은 갈 테니까
지금 심어둔 이 나무가 잘 자라 300년 후에
집을 새로 지을 때는 안성맞춤일 거다
잘 봐두어서 대를 물려 가꿔나가도록 일러야 한다
아 300년이라는 시간 감각
어린 나는 아기 장수라도 되는 양
숨을 크게 쉬며 고개를 끄덕였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그 집도 팔려나가고 묘터의 소나무만
내 나이만큼 쓸쓸히 자라나고 있는지
이 나이가 되도록 집도 없이 떠다니는 나는
300년의 시간 감각으로, 300년의 대물림으로,
무얼 심고 기르며 살아가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