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천안함, 러시아의 쿠르스크함···유사점과 차이점

폭발사고로 휴지조각처럼 돼았는 천안함. 해군 2함대사령부에 전시돼 있다.

[아시아엔=남현호 연합뉴스TV 앵커, <러시아, 부활을 꿈꾸다> 저자] 천안함 사건을 언급할 때마다 조심스럽다. 희생 장병 유족과 부상자들이 받은 상처는 영원히 아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북한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속 시원하게 얘기하지 않는 이상 진실 공방은 언제든 수면 위로 부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사건 당시 국방부는 민·군 합동조사단을 구성해 침몰원인 규명하고, 북한 잠수함정의 기습적인 어뢰 공격을 받아 천안함이 침몰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민·군 합동조사단은 조사 과정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제고하기 위해 국내 12개 민간기관의 전문가 25명과 군(軍) 전문가 22명, 국회추천 위원 3명, 미국·호주·영국·스웨덴 4개국 전문가 24명으로 편성했다.

조사단은 과학수사·함정구조 및 관리·폭발유형분석·정보분석 등 4개 분과로 나눠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조사를 진행해 ‘북한 소행’으로 최종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국내외 일각에선 암초설·금속피로설·유실기뢰설·자침설 등이 제기됐다.

한동안 잠잠하던 천안함 사건이 다시 거론됐다. 계기는 천안함 폭침의 주범으로 알려진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남북관계 전면에 나서면서다. 김영철 부위원장은 지난 2월 평창동계올림픽 폐막행사 참석을 위해 북측 고위급대표단 단장으로 방남해 ‘천안함 논란’의 불을 지폈다.

천안함 사건이 있기 8년 전인 2000년 러시아에서도 우리와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2000년 8월 12월 러시아 북부 바렌츠해에서 훈련 중이던 핵잠수함 쿠르스크 폭발 참사가 그것이다. 두 번의 폭발로 잠수함은 108m 아래 심해로 가라앉았고 118명이 사망했다.

러시아 해군 사상 가장 참혹한 참사로 기록되고 있는 쿠르스크함

쿠르스크함 참사에도 애달픈 사연이 있었다. 23명의 부하와 함께 최후를 맞았던 콜레스니코프 대위는 마지막 비상등마저 꺼지고 차가운 바닷물이 차오는 격실에서 연필로 생존자들의 명단을 작성하고 자신의 아내에게 마지막 편지를 썼다. “살아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10~20%나 될까. 모두여 안녕. 절망하지 마라”라고. 그가 연필을 놓은 순간 9번 객실에서 또 다른 폭발이 일어났고 마지막 생존자들도 모두 숨졌다. 잠수함은 사고 1년 뒤 네덜란드 회사에 의해 인양됐다. 115명의 승조원들의 시신도 수습됐다.

사고 후 20개 가까운 가설들이 제기됐다. 러시아 검찰이 발표한 사고원인은 내부 어뢰 폭발설이다. 러시아 검찰은 사고 2년 뒤 발표한 2천 페이지에 이르는 공식 보고서에서 쿠르스크함이 발사 직전에 있던 훈련용 어뢰의 폭발로 가라앉았다고 밝혔다. 연방보안국(FSB)도 쿠르스크함 침몰을 야기한 어뢰 폭발이 외부 충격이 아니라 잠수함 내부 결함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정확히 무엇이 어뢰 폭발을 일으켰는지에 대한 답은 내놓지 못했다.

러시아 정부의 공식 발표를 믿지 못하겠다며 미 해군의 공격 등 다른 가설을 주장하는 사람도 많았다. 쿠르스크함이 폭발 사고 몇주 전 지중해에서 미국 항공모함에 근접해 정보수집 활동을 한 것이 화근이 됐다는 것이다. 미 항모 바닥 바로 밑까지 접근해 작전을 했는데도 미군이 이를 알아채지 못했다는 이유로 여러 명의 미 해군 고위 장교들이 해임됐으며 이 사건에 대한 복수를 위해 미 해군이 쿠르스크호에 어뢰 공격을 가했다는 것이다. 참사가 있고 얼마 뒤 미국 중앙정보국(CIS) 국장이 급거 러시아를 방문했고 소련시대 진 채무를 감면해 줬다는 설도 서방 언론에서 흘러 나왔다.

천안함 최종보고서에는 합동조사단에 참여했던 미국과 영국, 호주, 스웨덴 등 4개국의 조사팀장이 조사결과에 동의하다고 자필로 서명했으나 사건 조사를 위해 일주일 동안 방한했던 러시아 조사단의 조사 결과는 포함되지 않았다.

천안함 사건은 한국과 러시아 양국 관계를 시험대에 올려 놓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천안함 사건 이후 러시아는 중국과 달리 한국에 별도의 조사단을 파견했다. 우리 정부는 북한 소행이라는 조사 결과를 국제적으로 승인받을 수 있다고 기대하며 러시아 조사단 파견을 수용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천안함 침몰 사건에 대한 자체 조사단 결과 보고서를 한국 측에 넘기지 않았다. 러시아 조사단의 보고서는 국가 지도부를 위해 내부용으로 작성된 비밀문서로 러시아 정부는 이를 한국이나 북한 어느 쪽에도 전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면서 의문을 증폭시켰다.

2010년 7월 한 언론매체가 천안함 침몰 사고를 직접 조사했던 러시아 조사단이 작성한 문건을 보도했다. 어뢰가 아니라 기뢰 폭발일 가능성이 크다는 내용이었다. 천안함 사건의 진실은 남북뿐 아니라 미국과의 관계에서 한미동맹, 나아가 동북아질서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천안함 사건 재조사를 통해 기존 결과와 같은 결론에 이르면 북한은 궁지에 몰리게 되고 해빙 분위기의 남북관계는 일시에 얼어붙을 수 있다. 최근 서해와 비무장 지대엔 ‘평화의 바람’ 불고 있다.

9.19 평양공동선언의 부속 군사합의서 때문이다. 8년 전 서해상에서 남북이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갔던 것을 감안하면 격세지감이다. 이런 남북화해 분위기에 편승해 북한이 천안함 사건을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자백하며 용서를 구할 지는 미지수다. 다만 남북관계가 다시 급랭할 경우 천안함 사건은 언제든지 남북 내지 남남 갈등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