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하노이 HIBS국제학교 사을람 이사장 “히즈멧교육 30년전에도, 지금도 희망”
[아시아엔=하노이/글·사진 이상기 기자] 5년 뒤인 2023년은 터키공화국 건국 100주년이 되는 해다. 기자는 2009년 이후 두 번의 터키 현지방문과 국내 체류 터키인들을 만나면서 가장 부러웠던 것이 이 나라의 교육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다. 2009년 방문한 이스탄불과 앙카라의 파티대학과 사만열루고교, 그리고 이후 두차례 방문한 서울 양재동 소재 무지개국제학교(Rainbow International School, RIS)는 신선한 충격 그 자체였다. 이들 학교를 방문할 때마다 동행한 이가 있었다. 터키출신의 에쉬레프 사을람(51) 이사장이다. 10년간 RIS 이사장을 맡았던 그는 2016년 베트남 하노이의 Horizon International Bilingual School, HIBS)로 옮겼다. 기자는 베트남사회과학아카데미(VASS) 초청으로 11월 15~18일 ‘중동·아프리카 포럼’ 참석차 하노이를 방문한 길에 사을람 이사장을 15일 오전 인터뷰했다. 터키나 한국이 아닌 제3국에서 만나니 반가움이 더했다. 기자는 한국어로 묻고 그는 터키어로 답했다. 통역은 2016~2017년 <아시아엔> 기자로 활동했던 도우칸씨가 맡았다.
-터키사람들이 왜 그다지 교육에 관심을 갖고 지원을 아끼지 않는지 궁금하다.
“사람들한테는 세가지 병이 있다. 가난, 심신의 갈등과 분열, 그리고 무지다. 무지로부터 해방되지 않으면 나머지 둘도 해결할 수 없다. 1980년 터키쿠데타 이후 지식인 사이에서 ‘국민들을 제대로 교육시키지 않고서는 나라의 미래가 없다’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했다. 당시 히즈멧운동을 이끌던 페툴라 귤렌 선생의 헌신이 무척 중요한 역할을 했다.”
-페툴라 귤렌이 한 역할을 구체적으로 소개해 달라.
“그는 기업인들에게 학교를 지어달라고 설득했다. 당시 기업인들은 학교 대신 이슬람 사원 건축에 관심이 더 많았다. 귤렌 선생의 간청에 따라 독지가들이 기금을 내 학교를 지었다. 학교는 세워지는데 이번엔 학생을 가르칠 교사가 부족했다. 귤렌은 고교생들에게 ‘법대나 의대에 가는 것보다 학생을 가르칠 사범대에 입학하라’고 호소했다. 터키의 젊은이들은 사범대에 진학해 교사의 길을 택했다.”
-사을람 이사장은 언제부터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됐나?
“나는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다. 대학 2학년 때인 1986년 귤렌 선생을 만나 교사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 학교 졸업 후 사설학원에서 잠시 강사를 하다 카자흐스탄으로 건너가 9년 교육 기관에서 여러가지로 일을했고, 그리고 한국에서 10년반 동안 이사장으로서 학교 운영 전반을 맡았다.”
사을람 이사장은 터키, 카자흐스탄, 한국에서 각각 태어난 21살·17살·6살 난 2남1녀를 두고 있다. 1996년부터 카자흐스탄 근무 때 만났던 제자 이야기를 꺼냈다. “카자흐스탄 학생들은 똑똑하긴 한데, 이기적인 면이 많아 맘이 아팠다. 얼마 전, 당시 나한테 배운 학생이 내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는 계좌번호를 알려달라는 거다. 무슨 일이냐 물으니 그때 내게 50달러를 빌렸는데, 지금 갚겠다는 것이다. 20년 전 일을 잊지 않고 있었던 거다. ‘내게 갚지 않아도 되니, 그 대신 주변에 있는 어린 학생들 잘 살펴주라’고 했더니,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고 답하는 것이었다. 당시 안타깝게만 여겼던 제자들 마음을 이제야 알 것 같더라. 그리고는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바른 길을 가고 있는 게 맞다’는 확신이 들었다.”
-한국의 무지개학교나 베트남 하노이의 HIBS와 같은 학교는 전 세계에 얼마나 있나?
“1980년대 중반 터키에서 처음 시작해 뿌리를 내리면서 1990년대 초반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키르기스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에 학교를 세웠다. 그 다음에는 발칸반도 지역으로 확산됐다. 보스니아 내전 때 터키 외의 나라가 세운 학교들은 모두 국경을 넘어 탈출했는데 우리가 세운 학교는 그대로 남아 교육을 계속했다. 현재 전 세계 170개국에 1000여 학교가 세워져 있다. 아시아·아프리카 대부분의 나라와 미국·프랑스·독일 등 서구, 중남미 등에도 있다. 평양에는 아직 없지만, 여건이 되면 들어갈 수 있다고 본다.”
-나라마다 교육 내용은 비슷한가?
“그렇지 않다. 국가와 지역특성에 맞게 교육한다. 교육은 다양성이 가장 중요하다. 예를들어 베트남에 있는 학교들이 영국 캠브리지대학의 Bilingual Language(이중언어) 시스템을 토대로 교육하는 점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또 다른 국제적인 교육제도를 실시할 수 도 있다. 일부에선 이슬람 교육을 시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갖고 있는데, 이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 우리는 일체의 종교 교육을 시키지 않는다. 우리 학교의 경우 유치원에서 고교 과정까지 전체 학생 250명 가운데 한국 학생이 30% 정도 된다. 만일 특정 종교를 교육한다면 가만히 있을 학부모가 누가 있겠는가?”
-HIBS의 교육 특징은 무엇인가? 그리고 중점적으로 가르치는 것은 뭔가?
“수학·물리·생물·화학·지구과학 등 자연과학과 지리·역사·문화 등 사회과학 그리고 문학과 언어학 등을 가르친다. 그런 면에서는 일반학교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하라’ ‘저건 하지 마라’ 이렇게 가르치진 않는다. 학생들 스스로 느끼도록 도와주고 교사들이 학생한테 롤모델 되는 게 우리의 역할이다 즉 인성교육을 시킨다. 이렇게 교육받은 아이들은 술·담배와 거짓말이 자기의 심신은 물론 사회에 해독을 끼친다는 사실을 터득하게 된다.”
아침 외부인용 식당을 끼고 있는 건물 2층 이사장실에서 진행되던 인터뷰 도중 아제르바이잔의 나히체반자치구 출신의 뷔가르 바바예브(39) 교장이 자리에 합석했다.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그는 미얀마에서 교사에서 부터 교장을 하다 2015년 이 학교로 옮겨왔다고 했다. 뷔가르 교장 역시 히즈멧학교 출신이다. 그는? 소련이 붕괴면서 나히체반에 온 히즈멧 교사들이 그곳에도 학교를 세웠는데, 뷔가르 교장은 그 학교 2기 졸업생이다. 히즈멧학교 1세대 학생이 교사가 돼 학생들을 가르치다 교장 직책을 맡게 된 것이다.
뷔가르 교장은 “작년에 우리 학교 졸업생이 연세대에 합격했다”며 “인성교육뿐 아니라 학문적인 면에서도 앞서가는 학교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사을람 이사장은 수업용 교실과 교장·교무·연구실 등이 있는 본관으로 기자를 안내했다. 이동 중 그는 만나는 학생들 머리를 쓰다듬거나 손짓을 하며 아는 체했다. 아이들은 스스럼 없이 사을람 이사장, 뷔가르 교장, 기자 일행에게 다가와 사진 찍기 포즈를 취했다. 물리실험실에 들어서니 기타가 두 대 보였다. 사을람 이사장은 얼른 기타를 들어 줄을 튕겼다. “소리의 발생과 전파 등을 말로 해선 이해시키기 어려워요. 기타 치면서 설명하면 금세 알아듣거든요.”
그는 “공부는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 흥겨운 일이란 걸 학생들이 깨닫게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며 “학교는 학생들이 자신의 길을 스스로 개척하도록 돕는 역할에 충실할 뿐”이라고 했다. 학생들의 성장·발전의 ‘최고 조력자’가 바로 학교라는 것이다. HIBS에선 교사 1명이 3명 정도의 학생을 담당하는데, 학생들은 팀을 이뤄 영국 에딘버러 듀크의 6·12·18개월짜리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교사와 학생은 서로 속에 있는 얘기를 허물없이 터놓으며 속속들이 알아간다고 한다. ‘복수담임제’로 운영되는 것도 이 학교의 특징이다.
기자는 이 학교에 재학 중인 한국학생들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는지 궁금했다. “처음 우리학교에 오는 한국학생들을 보면 참 똑똑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문제 풀이도 잘 하고 성적도 좋습니다. 결과에 강하다고 해야겠지요. 그런데 누군가 시키기 전에 먼저 입을 열거나 행동을 하는 학생은 드물어요. 수동적인 편이지요. 그런데 이들도 여느 학생들처럼 점점 적극성을 띠면서 능동적으로 바뀌어 갑니다. 반년 정도 걸리죠. 그렇게 변화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얼마나 보람있는 일인지 한번 상상해 보세요.”
사을람 이사장은 “우리는 어떤 결과를 예상하고 교육을 하기보다 올바른 지향점을 갖고 꾸준히 행동해 나가면 결과도 반드시 좋을 거란 믿음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는 “꾸지람이나 보챔보다 칭찬과 격려를 끊임없이 해주는 게 아이들한테는 훨씬 필요하고 또 중요하다”고 했다. 인터뷰가 마무리 될 무렵 기자는 그에게 한국 이름 ‘史友林’을 지어 맘에 드냐고 했다. 사을람 이사장은 “너무 너무 너무 좋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