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촌동 전처 살해사건과 페미사이드 범죄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지난 10월 22일 서울 강서구 등촌동의 한 아파트 지상주차장에서 전 부인 A(47)씨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모씨가 경찰에 체포됐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이혼과정에서 쌓인 감정문제 등으로 전 아내를 살해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지난 10월 2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강서구 아파트 살인사건 피해자의 딸입니다’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청원 글에서 피해자의 자녀라고 밝힌 작성자는 “아빠는 심신미약이 아니다. 사회와 영원히 격리해야 하는 극악무도한 범죄자다”고 적었다. 그리고 이틀 뒤인 10월 25일 오전 10시 기준, 청원자는 10만명을 돌파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전체 살인사건의 20% 가까이가, 남편이 아내를 살해한 범죄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정춘숙 의원이 최근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남편이 아내를 숨지게 한 사건은 모두 55건이었다. 정 의원은 “남편이 아내를 숨지게 한 사건 상당수는 가정폭력이 살인까지 발전한 경우”라고 말했다.
사람의 인연이란 무엇일까? 인간관계에는 선연(善緣)도 있고 악연(惡緣)도 있다. 그러나 선연이든 악연이든 분명 보통 인연은 아닌 것이다. 어쨌든 부부는 7천겁(劫)의 인연으로 만난 사이라는데 일주일에 한 사람씩 ‘아내’가 남편에 의해서 살해된다는 기사는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불교의 <삼세인과경>(三世因果經)을 보면 우리가 서로 옷깃을 스치는 것은 500겁의 인연이며, 1천겁의 인연으로 한 국토에 나게 되고. 2천겁의 인연으로 하루 동행을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3천겁의 인연이면 하룻밤을 같이 자게 되고, 4천겁의 인연으로 한 고향에 동족으로 나게 되며, 5천겁의 인연으로 한 동네에 나서 살게 되고. 6천겁의 인연은 같은 목적을 가지고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리고 부부로 만나기 위해서는 7천겁의 인연이 필요하고, 부모자식관계는 8천겁, 형제자매로 태어나는 것은 9천겁의 인연이며, 1만겁의 인연으로 불연(佛緣)인 도반(道伴)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부부간의 인연이 9천겁의 형제보다 못한 7천겁의 인연인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된다. 그 의문은 작년 살인 5건 중 1건이 남편이 아내를 살해했다는 보도를 보면 풀린다.
왜냐하면 부부의 인연은 선연도 많지만 그만큼 악연이 만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부부간의 인연을 7천겁으로 표현한 것인지 모른다. 그런데 부부 사이에 사이가 좋으면 좋지만 나쁠 경우는 어찌하면 좋을까?
그 방법을 소태산(少太山) 부처님께서는 “미워하는 마음도 사랑하는 마음도 다 여의고 무심으로 대하라”고 했다. 부부간에 경계를 맞아서 해결할 자신이 없으면 그 경계를 피하는 피경(避境)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다.
피경공부의 요체(要諦)는 공익사업에 매진하는 것이다. 공익사업은 농부들이 음식을 먹기 전에 짐승들에게 먹이를 주는 ‘고수레’의 의미가 있다. 고수레는 옛날 고씨 성을 가진 지주가 마음이 후덕하여 그 지방의 농민들은 그를 존경하는데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농민들은 언제 어디서든 음식물이 생기면 먼저 고마운 고씨에게 감사의 뜻으로 “고씨례” 하고 음식을 던졌다.
그 ‘고씨례’가 ‘고수레’로 변한 것이다. 고수레는 음덕(陰德)을 행하는 것이며, 이 음덕이 하늘의 보답을 불러 천지음조(天地陰助)로 나타나는 것이다.
‘페미사이드’(Femicide)라는 말이 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살해당하는 현상을 말한다. 페미사이드는 여성(Female)과 살해(Homicide)를 합성한 말로, 좁게는 여성에 대한 증오범죄부터 넓게는 일반적인 여성 살해를 포괄하는 광의의 개념이다.
페미사이드는 1976년 여성학자 다이애나 E. H. 러셀(Diana E. H. Russell)이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제1차 ‘국제 여성대상범죄 재판위원회’에서 공식 사용하면서 알려졌다. 그런데 ‘페미사이드’의 가해자는 대개 남성이지만, 여성이 가해자가 되는 사례도 있다. 그러니까 여성이 피해자인 살해만이 페미사이드는 아니라는 것이다.
페미사이드는 사회가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이 심한 불평등 사회일수록 많이 발생한다. 페미사이드는 국가나 지역, 사회에 따라 여러 형태로 존재하며 인종이나 성소수자(레즈비언, 트랜스젠더 등), 성 노동자, 장애인 등에 대한 혐오와 결합해 범죄로 이어지는 사례도 많다. 따라서 같은 환경이라면 경제적·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인 여성이 페미사이드를 포함한 폭력의 대상이 될 확률이 높다.
다이애나 러셀은 페미사이드의 범주에 감춰진 형태(Cover Forms)에 낙태를 포함하기도 한다. 피임이나 낙태를 금지하는 나라에서 불법 낙태를 시도하다 수많은 여성이 사망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WHO에 따르면 매년 2천만명 이상의 여성이 불법 낙태를 경험하며 그 중 4만7천명 정도의 여성들이 사망한다.
1998년 모든 종류의 낙태를 전면 금지한 엘살바도르의 경우 낙태 시술을 받고 유죄가 선고된 여성은 징역 2년에서 최대 8년형을 받는다. 생명이 위급하거나 강간으로 인한 미성년자의 임신 역시 마찬가지로 처벌받는다. 심지어 자연 유산한 여성의 경우에는 가중처벌 살인죄로 최대 징역 50년을 선고받을 수 있다고 하니 놀랍다.
인도나 중국 등 아시아에서 주로 발생하는 여아낙태도 페미사이드에 포함될 수 있다. 남아선호사상이 뚜렷한 국가에서 태아 성감별을 통해 여아만을 낙태하는 행위로, 해당 국가에서는 출생성비 차이로 인한 성비 불균형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