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개혁개방 40년①] 1976년 주은래·주덕·모택동 사망과 등소평

중국현대사를 이끈 모택동 주은래 등소평(왼쪽부터). 1976년 주은래와 모택동이 사망하고 잠시 4인방이 권력을 쥔 후 곧이어 등소평이 집권하면서 중국은 죽의 장막을 걷어내고 본격적인 개혁 개방을 시작한다.

[아시아엔=이중 전 숭실대 총장] 어느새 날이 밝아왔다. 광장에는 수만명의 인파가 붐비고 있었다. 저우언라이에게는 무덤이 없다. 여기가 바로 그의 무덤이었다. 얼마나 웅장한 무덤인가? 인산인해라 했다.

1976년 1월 8일 저우언라이의 숨이 멎었다. 시간은 아침 9시 57분, 그의 나이 78세였다. 기록은 그의 마지막 ‘말’을 다음과 같이 전해준다.

숨 거두기 하루 전 날인 1월 7일, 대략 밤 11시가 넘은 시간, 저우언라이가 주치의 우제핑(吳介平)을 불렀다. 혼수에 빠졌다가 잠시 잠깐 깨어나기를 반복하던 저우였다.

의료진들은 그를 둘러싸고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맑은 정신으로 되돌아 온 듯한 모습으로 우제핑을 돌아보며 말했다.

“우 동지, 당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소. 여긴 별 일이 없으니 빨리 가서 다른 사람들을 돌보도록 하오. 그들은 당신을 필요로 하고 있소.”

이 ‘말’을 남기고 저우언라이는 다시는 입을 열지 못했다.

마지막 유언이 되고 말았다. 그의 뇌는 이미 기능을 거의 잃어버린 상태였는데도 그의 입은, 나보다 남을 먼저 챙기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곤 영원히 닫히고 말았다.

뉴욕 시내 한 복판에 있는 유엔(UN) 본부가 다음 날 반기(半旗)를 올려 저우언라이의 죽음에 조의(弔意)를 표했다. 중국은 이미 유엔에서 타이완(臺灣) 정부를 밀어내고 중국을 대표하는 회원국이 되어 있었지만 저우는 명목상 중국의 제1인자가 아니었다. 더구나 유엔에서 반기를 올리는 관례가 그때까지는 없었다. 그 뒤 반기로 조의를 표하는 것이 법으로 정해졌지만 국제기구인 유엔으로서는 전례 없는 일이었다. 몇몇 회원국 대사들이 따졌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죽었을 때엔 유엔 깃발이 그냥 나부꼈는데 중국의 제2인자가 죽었다고 해서 유엔에서 반기를 올리고, 또 다른 나라 국기마저 다 내리는 이유가 무엇인가?”

쿠르트 발트하임 사무총장이 해명했다. “저우언라이를 추모하기 위해 그렇게 했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중국은 고래로 금은보화가 많은 나라인데 그 나라 총리인 저우언라이는 은행에 저금 한 푼 남기지 않았습니다. 둘째로, 중국은 인구가 10억이 넘지만 그는 평생 아내 한 사람만 사랑하고 자녀도 없습니다. 귀국의 지도자나 어느 나라 국가원수이든 두 가지 중 한 가지만이라도 해당된다면 서거했을 때 반기를 올리겠습니다.”

?1976년에 접어들면서 중국 사람들은 문화혁명이 앞으로 얼마나 더 끌 것이며, 뒷마무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 추이에 극도로 민감해 있었다. 난폭하고 혼란스러운 문화혁명이 벌써 10년째다.

그런데 느닷없이,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이었던 ‘저우 총리’가 총총히 가버렸으니 날벼락이 따로 없었다. 4인방은 내내 기승을 부리고 있었고, 저우 총리는 병상에 누워있었다. 인민들이 수소문을 통해 얻어들을 수 있는 정보란 고작 그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저우언라이의 죽음이 중국 인민들에게 준 좌절감과 상실감은 크고 깊었다.

중국의 문화혁명이란 것은, 인류역사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특수한 혁명적 실험이었고, 실험적 혁명이었다. 따라서 문화혁명은 엄청난 재앙과 혼돈(混沌)으로 그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10년이면 이제 슬슬 꼬리를 내릴 만도 한 시점이었다. 너무도 가혹했던 시련이 더 이상 이어진다는 것은 중국 인민들에겐 잔혹하고 치명적인 고통이었다. 나라 자체의 망가짐을 뜻했다. 돌파구가 있어야 했고, 종결의 빌미가 있어야 했다. 그런 참에 저우가 죽었다.

저우언라이의 죽음은 의학적으론 병사(病死)이고 자연사(自然死)였다. 하지만 역사적인 성격을 부여한다면 그의 죽음은, 하나의 역사를 마감하고 또 하나 새로운 역사의 문을 여는 단초가 된다.?

1월의 저우언라이 죽음에 이어 7월 6일, 홍군(紅軍)의 상징 주더(朱德)가 세상을 떴고, 9월 9일에는 천하의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이 세상을 등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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