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평가기준 ‘신언서판’을 다시 생각해본다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사람의 가치는 한평생 얻은 평판보다 죽은 뒤에 남긴 흔적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 본다. 사람의 평가는 그의 생이 마감된 뒤, 이를테면 ‘역사’가 된 뒤 이루어질 때 공정성이 확보될 수 있다는 뜻이다.

수퍼 갑질을 저지른 대한항공 일가의 얼굴을 보면 한결 같이 기름기가 흐르고 늘씬한 키를 자랑하는 잘생긴 얼굴이다.

“잘 생긴 사람은 반드시 얼굴값을 한다”는 속언(俗言)은 잘생긴 사람들이 얼굴값을 못해서 생긴 말일 것이다. <아함경>(阿含經)에 ‘사람의 평가기준’ 얘기가 나온다.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외모가 보기 민망할 정도로 추하게 생긴 비구(比丘)가 있었다. 늘 외모 때문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업신여김과 따돌림을 받았다.

어느 날 부처님이 ‘기원정사(祇園精舍)’에서 설법을 하고 있는데 이 비구가 나타났다. 사람들은 못생긴 비구가 온다면서 모두 고개를 돌리고 업신여기려 했다. 그러자 부처님이 제자들을 타일렀다.

“너희들은 저 못생긴 비구를 업신여기거나 따돌리지 말라. 왜냐하면 저 비구는 이미 모든 번뇌(煩惱)가 다하고 할 일을 마친 사람이다. 온갖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모든 결박에서 벗어났으며, 바른 지혜로 마음의 해탈을 얻었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너희들은 외모만 보고 함부로 사람을 평가하지 말라. 오직 여래(如來)만이 사람을 평가할 수 있느니라.”

부처님은 그 못생긴 비구를 이렇게 평가했다. “몸이 크고 얼굴이 잘생겼다 하더라도 지혜가 없다면 어디다 쓰랴. 저 비구는 비록 얼굴은 추하지만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그러니 외모만 보고 사람을 업신여기지 말라. 모든 번뇌에서 벗어난 저 비구야말로 최고의 장부(丈夫)니라.”

외모를 중시하는 요즘, 젊은 사람들은 “머리 나쁜 것은 용서해도 얼굴 못생긴 것은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할 정도다. 그러나 오랜 경험에 의하면 남에게 해를 끼치고 아픔을 주는 사람은 못생기고 못 배운 사람이 아니다. 사기꾼 치고 많이 배우고 허우대가 멀쩡한 사람이 아닌 사람이 거의 없다.

부처님은 이러한 태도에 대해 엄중한 비판을 하고 계시다. 사람의 진정한 평가기준은 외모가 아니라 인격이며 능력이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물론 이왕이면 잘생기고 아름다운 외모를 갖는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고 복된 일이다. 거기다가 외모에 걸맞은 인격을 갖춘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외모에 비해 ‘허우대 값’도 못 하는 짓을 너무 많이 하는 데 있다. 부처님이 아함경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허우대 값도 못하는 사람들의 허구성에 대한 질타다. 이렇게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에 대해서 옛 사람들은 네 가지 평가기준을 제시했다. 곧 신언서판(身言書判)이다. 이 말은 <신당서>(新唐書) ‘선거지’(選擧志)에 나오는 인물을 골랐던 네 가지 조건이다.

첫째, 신(身)이다. 사람을 처음 만날 때 판단되는 것이 바로 외모다. 건강한 몸, 즉 자기관리를 잘하는 사람으로 절제력이 있는 사람을 말한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절제하며 관리하는 삶을 가진 사람은 외모도 매력을 풍긴다.

둘째, 언(言)이다. 처음 만날 때 하는 것이 인사다. 그때 목소리와 말투로 인격이 판단되어지는 경우가 많다. 첫 인상은 이때 결정된다. 사람의 목소리와 말투 역시 평소 그 사람이 얼마나 고집스러운지, 여유로운지 드러나는 기준이다.

셋째, 서(書)다. 한사람의 문장과 말은 그 사람의 됨됨이를 말해 준다. 작가처럼 문장을 잘 쓰라는 것이 아니다. 자신 주변에서 자신의 말과 글에 미워함이 없이 편안함이 담겨있게 하란 말이다.

넷째, 판(判)이다. 이치에 합당하게 판단을 하는 것을 말한다. 세상 돌아가는 큰 흐름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판단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아무리 좋은 몸과 말과 글을 가졌다 해도 무의미하다.

요즘 너무 하류인생(下流人生)이 판을 치고 있다. 사람의 평가기준은 외모와 학식과 번지르르한 말에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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