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건축가’ 김종석이 연희동 카페거리 만든 사연

김종석 대표

[아시아엔이 만난 강소기업] 열일곱에 가방 메고 꿈 찾아나선 김종석 (주)쿠움 대표

[아시아엔=박호경 기자]?연희동 카페골목을 조성한 건축가이자 (주)쿠움의 김종석 대표를 만나기 위해 그의 사무실을 찾아 갔다. 멋스럽고 안락한 느낌의 카페거리에 들어서자 네비게이션에 찍힌 주소 번지수와 똑같은 이름의 카페가 나타났다. ‘Cafe 129-11’,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센스 있는 이름이란 생각을 하던 찰나 마중 나온 김대표를 만났다. 자연스레 카페로 이동, 커피 한잔을 나누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전 건축 전공이 아닙니다.”

그의 첫마디부터 기자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김종석 ㈜쿠움 대표는 1968년생 경상남도 함양에서 태어났다. 6남 1녀 중 막내인 그에게 부모님은 함양에서 함께 농사 지으며 살기를 바랐다고 한다. 고등학교 입학식 날, 가방 하나만을 둘러멘 채 그는 부산으로 떠났다. 더 넓은 곳에서 경험을 쌓고 싶었던 그는 집을 빠져 나와 해운대에 있는 친구를 찾게 된다.

부산에 도착한지 3일만에 친구와 만나게 된 김 대표는 가구 공장에서 1년간 일하다 뒤늦게 전자공고에 입학했다. 학교를 졸업도 하기 전에 취업이 결정돼 곧바로 서울로 상경, ‘소니서비스센터’에 취직한다. 20살에 연희동에 있는 전파상인 ‘정음전자’로 직장을 옮긴 그는 이때부터 연희동과 인연을 맺게 됐다.

정음전자

“정음전자에서 1년간 일하다 군대에 가게 됐어요. 그러다 제대 5개월을 남겨두고 전파상 사장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죠.” 이를 계기로 전파상 직원들은 모두 떠났고 그나마 가게를 지키던 사모님은 가게를 내놓겠다고 했다. 김대표는 이때 정음전자를 인수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군대 가기 전 친분을 맺었던 연희동 사람들과 친형의 도움, 그동안 모아온 월급 등으로 자금을 마련해 25살 되던 해 정음전자를 인수했다.

하지만 시련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2002년 현대투자신탁 명동점에서 사다리에 올라 작업을 하던 중 사다리 연결고리가 끊어지며 2층에서 1층 로비로 추락, 왼팔을 크게 다친 것이다.

“팔 뼈가 17조각이 났었습니다. 병원에선 팔을 절단하자고 했어요. 전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너무 절박했죠.”

그의 고집이 의사를 설득시켰다. 12시간의 수술이 끝난 후 80%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이 사고로 4개월 간의 입원생활을 하게 된 김대표는 입원하며 뚜렷한 목표를 세웠다고 했다.

“단순 육체 노동으로는 먹고 살기 힘들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건축설계를 배우기로 결심했습니다. 현장에서 인테리어 일을 돕다 보니 도면도 어느 정도 볼 줄 알았고 건축가들과 인맥도 쌓였을 때였거든요.”

2003년 연세대학교 후문에서 100m 떨어진 47평의 땅을 7380만원에 경매로 구입한 그는 이곳에 건축가로서의 처녀작을 완성했다. 당시 흔치 않는 외장 목조를 사용해 원룸 건물을 지었는데, 원룸크기가 3.3평에 불과했지만 주변 10평짜리 원룸보다 월세를 비싸게 받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처녀작의 성공과 함께 자신감이 생긴 그는 연희동으로 돌아와 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저 인근에 주택을 건설하게 된다.

“그 자리가 연희동 초입 골목이에요.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꼭 거쳐가는 사거리 코너여서 주목 받던 위치였죠.”

김대표는 또 다시 도전을 택했다. 국내에선 구입할 수 없었던 코르텐강을 조금씩 모아 건축에 도입했다.

“코르텐강이란게 파랗게 녹이 슬어 보이게끔 하는 자재입니다. 멋을 위해 일부러 사용했죠. 그걸 모르던 지역 주민들은 비만 오면 비닐을 가져와 씌워주기도 했어요. 더 녹이 슬어버릴까 봐요. 전 일부러 코르텐강을 사용한 건데 말이죠.”(웃음)

김종석 대표의 두번째 작품인 연희동 초입 건물
김종석 대표의 두번째 작품인 연희동 초입 건물

김대표의 두번째 작품인 연희동 주택은 자금이 부족해 완성하는데 3년이 꼬박 걸렸다. 정음전자를 운영하면서 번 돈으로 그때그때 공사하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한다. 2007년 연희동 주택이 완공돼 명물로 인정받자 지역 주민들의 의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그는 서울 시내 곳곳을 다니며 건축 설계와 인테리어로 두각을 나타냈다. 사업이 확장되자 자리를 옮겨 종암동에 100평짜리 사무실을 얻기도 했다.

“사무실이 커지니까 오히려 세무조사에 시달리고 매출이 떨어졌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여긴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연희동으로 돌아온 김대표는 2009년 3평짜리 사무실에서 6명의 직원과 함께 아웅다웅 일을 하기 시작했다. 본인의 책상도 없는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이곳 저곳 현장을 누비며 일거리가 늘었다고 했다. 일이 다시 많아 지면서 ‘일하는 즐거움’도 다시금 깨달았다고 했다.

연희동에서 명성이 자자하자 화가 김준 작가가 그를 수소문해 찾아왔다.

“처음엔 친구하자고 하더군요. 친해지다 보니 김준 작가가 이 마을을 재밌는 동네로 만들어 보자고 저에게 제의를 했습니다.”

김 대표는 당시 원로 조각가였던 김영중 조각가의 유지를 이어 받고 실행에 옮기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분이 암으로 돌아가시기 전, 저에게 연희동을 담장이 없는 거리, 카페와 갤러리로 넘치는 문화의 거리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셨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김준 작가가 제의를 해서 힘을 합치기로 한거죠.” 2010년 ㈜쿠움의 탄생과 함께 본격적인 연희동 카페 마을 조성사업이 시작되었다.

이 프로젝트를 착수하면서 어려움도 많았다. 구청장, 구의원의 반대와 카페마을의 성공에 대한 주민들의 신뢰를 얻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수많은 문화계 인사들이 지원 사격을 해주자 김대표는 과감히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지인들에게 투자금을 받아서 연희동의 오랜 주택이 매물로 나오면 임대 선점을 했어요. 특히 가장 중요한 사거리 코너는 제일 먼저 선점을 했습니다.”

선점한 7개의 건물에 김대표는 최대한 색을 넣지 않고 그레이나 화이트 계열의 기본 색상만을 입혀 시공을 했다.

“건축물의 완성은 결국 세입자가 하는 겁니다. 세입자가 들어와 가게 컨셉에 맞게끔 예쁘게 꾸미는 거고, 저는 기초 작업만 할 뿐이죠.”

카페를 중심으로 옷 가게, 미용실, 일본식 선술집 등 7개의 점포가 생기면서 마을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고 입소문이 퍼지며 예쁜 카페들이 연희동 거리에 속속 생겨났다.

언론과 SNS 등을 통해 연희동 카페거리는 자연스럽게 회자되었고 외부 사람들이 유입되며 연희동은 소비 마을에서 생산 마을로 변모할 수 있었다.

“카페거리가 활성화되면서 주민들도 저에게 호의적이 됐어요. 주거와 상권이 공존하면서 거리에 활기가 생기고, 돈을 벌 수 있는 마을로 변모하게 되어서죠. 현재 카페거리 건물 중 90%는 제가 지은 겁니다.(웃음)”
회사 간판을 달아 본적도 없다는 김대표는 지금도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고 한다. 산적해 있는 일감 중에는 새로운 야심작 ‘연남동 카페마을’ 프로젝트도 포함돼 있다. 연남동엔 6·25전쟁 당시 피난길로 쓰인 길, 일명 ‘피난길’이라고 불리는 슬럼가가 있다고 한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우연히 그 골목을 지나게 됐습니다. 3평 남짓한 하코방집(상자 모양의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차도 지나다니기 힘든 좁은 골목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나와 장기를 두시거나 부채질하고 계신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었어요. 마치 1960년대로 돌아간 느낌이었습니다.”

이 풍경에 감명을 받은 김대표는 3년전부터 이 프로젝트를 준비해 왔다고 했다. 오는 4월1일에는 연남동으로 사무실을 옮겨 본격적인 ‘연남 재생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연남동 피난길 골목 초입에 2층짜리 건물을 얻어 1층은 소통의 장소로, 2층은 사무실로 쓸 예정이다.

오는 4월 자리를 옮길 연남동 사무실 건물과 피난길 초입
오는 4월 자리를 옮길 연남동 사무실 건물과 피난길 초입

“프로젝트의 첫걸음은 건축이 아니라 주민들과의 소통입니다. 주민들이 원하는 발전상을 들어 봐야죠. 무작정 개발하겠다고 하면 주민들도 당연히 반발할 겁니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연남동 마을 사진전도 계획 중이다. 이 사진전엔 뉴욕의 디자인 그룹과 일본 화가 및 광고기획사들이 함께 참여할 예정이다. 또한 연남 커피마을 홈페이지 제작과 마을 월간지 출판도 준비 중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김 대표는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서울시 도시 재생 활성화 지역 2단계 사업’에 공모를 해 정부 자금을 유치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젊은 건축가들, 홍익대, 이화여대, 공주대 등 교수진, 유명 화가들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할 의사를 밝혔어요. 홍대라는 벨트 안에 연남 커피마을도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뚜렷이 심어주고 싶습니다.”

김종석 대표는 연남동 프로젝트가 끝나면 또 다른 마을을 개발하기보다는 전국을 돌며 강의를 하고 싶다는 희망을 전했다.

“마을 재생 경험이 없어 실패한 곳이 많아요. 마을 재생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제 경험을 전하고, 실패하지 않게끔 도와줄 겁니다. ‘제2의 새마을운동’이 있다고 한다면 마을 재생이라고 생각해요. 남은 인생을 마을 재생에 쏟을 겁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칭찬 문화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고 싶다고 했다.

“제가 이렇게까지 해올 수 있던 건 단순한 이유에서였어요. 단지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싶어서. 일을 끝내고 고객들에게 칭찬받으면 그 이상 행복할 수가 없어요. 한국 사람들이 칭찬에 인색한 편인데, 한국사회가 칭찬에 익숙해지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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