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왕국’ 부탄의 빛과 그림자···잘 알려지지 않았던 4가지 진실

우리가 몰랐던 아시아 뒷이야기 ①

[아시아엔=김아람 기자] 부탄 하면 대부분 “아~ 전세계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곳?”이라 떠올리실 겁니다. 2010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천달러(242만원)에 불과했지만 그해 영국 신경제재단(NEF)이 148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국가별 행복지수 조사에서 1위에 올라 주목을 받았거든요. 무려 100명의 국민 가운데 97명이 “행복하다”고 답했을 정도였습니다. 반면 한국의 행복지수는 68위에 그쳤죠. 최빈국 부탄이 어떻게 가장 행복한 나라가 될 수 있었을까요?

부탄은 GDP를 지양하고 국민행복지수(Gross National Happiness, GNH)를 사회발전지표로 채택한 국가입니다. 1970년대에 개발된 지표로 정신건강·신체건강·교육·문화·여가·정부·사회활동·생태다양성 및 회복력·생활수준 9가지 부문으로 나눠 국민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는데, 2007년부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활용하고 있답니다. 즉 행복의 기준을 물질보다는 정신적 요소에 더 초점을 두고 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물질적 가치보다 정신적 가치를 소중히 여기다 보니 부탄에선 산업화의 폐해를 찾기 힘듭니다. 때문에 부탄은 아름다운 자연을 간직한 것으로도 유명하죠. 국토절반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됐을 정도니까요. 사회지도층과 일반국민 간 소득격차가 그리 크지 않아 상대적 박탈감이 적은 편도 부탄 국민들이 행복한 이유 중 하납니다.

이런 부탄을 두고 국내외 언론에서는 “진정한 행복은 돈이 아닌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내용의 기사를 마구 쏟아냈죠. 관련 도서들도 많이 출간됐었고요. 그런데, 여기 부탄에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시죠.

부탄에도 마약중독자가?
부탄 정부는 약물사용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습니다. 가벼운 환각제를 사용하거나 소지하다가 발각되면 징역 3개월, 판매할 경우 6~9년까지의 징역형에 처해집니다. 그러나 오히려 마약에 중독된 청년들은 증가하고 있어 정부가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마약 대부분은 이웃나라 인도에서 들어오는데, 신분증만 있으면 양국 간 통행이 자유로운 편이라 마약 반입이 빈번하게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중국과의 국경갈등으로 부탄과 인도가 우호관계에 있어 가능한 일이라고 하네요. ‘약물사용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는’ 부탄 전역에 설립된 마약중독 치료센터는 10여곳에 이릅니다.

마약중독을 치료하는 드롭인센터(Drop in Centre)의 나조엔 펠리는 “청년마약문제는 한부모가정 혹은 부모의 이혼 등 불우한 가정환경이나 가난, 주변에서의 유혹 등으로부터 비롯된다”며 “2015년 상담을 위해 센터를 찾은 청년만 수천명”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대부분이 학생 또는 자퇴생 등 미성년이지만, 낮은 임금으로 고생하는 직장인들도 종종 방문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더 많은 치료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어 좋은 결과를 얻길 바라지만, 예산이 많이 부족한 상태”라고 하더군요.

도시를 방황하는 대졸 실업자들
세계은행(WB)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부탄 전체 실업률은 2.8%로 낮은데 반해 청년실업률은 10%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꾸준히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대학진학률 역시 함께 높아졌지만 정작 일자리는 이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이 공무원 등 ‘화이트칼라’를 꿈꾸며 수도 팀부로 몰려들지만 농업이나 건설 외에는 마땅한 일자리를 찾기 힘들어 금세 좌절하고 맙니다. 실제로 팀부 시내에는 낮부터 술을 마시거나 당구장에서 놀고 있는 젊은이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데요, 그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답니다. “대학까지 나왔는데도 마땅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요.

현지 비영리단체의 관계자는 “농촌 청년들이 도시생활을 꿈꾸며 수도 팀부로 향하지만, 이미 인구가 포화상태인데다 좋은 일자리가 없어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면서 취업난 스트레스로 청년들이 방황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갈수록 청년실업이 심각해지자 현지 노동부는 2013년부터 중동 해외취업프로그램을 운영해오고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문화혁명이 부른 10만 난민
놀라셨죠? 숫자도 부탄 전체 인구의 7분의1 수준인 10만명에 달합니다. 원인은 다름아닌 ‘종교’인데요, 티베트불교국가인 부탄은 1990년 ‘문화혁명’을 내세우며 힌두교 신자들을 추방하기 시작했습니다. 티베트문화와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죠. “불교국가에 왠 힌두교?”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 텐데,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죠.

부탄에는 힌두교가 국교인 네팔에 조상을 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남쪽에서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의 ‘롯샴파’라고 불리기도 하죠. 원래 네팔에서 살던 이들은 19세기 말부터 부탄으로 이주하기 시작하면서 그 수가 점점 불어났고, 1958년 부탄의 정식국민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이들이 늘어나자 티베트불교국가인 부탄 정부는 힌두교도인 롯샴파들이 부탄의 단일종교와 문화적 정체성에 영향을 줄까 우려하게 됩니다. 결국 모든 국민들이 부탄 전통의복을 입도록 의무화하고, 네팔어를 학교에서 쓰지 못하도록 하는 문화혁명을 단행했죠.

오갈곳 없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고 만 10만명의 힌두교신도들은 정부의 탄압을 피해 서쪽으로 이웃한 네팔로 향했습니다. 7곳의 난민캠프에서 생활하던 이들은 다시 부탄으로 돌아가기 위해 수차례 시도했지만 번번히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2007년부터 유엔난민기구(UNHNR)와 국제이주기구(IOM)가 힘을 합쳐 이들을 도운 덕분에 난민들 대다수는 미국·호주·캐나다·영국·덴마크·뉴질랜드·노르웨이 등지로 떠나 정착했다고 합니다.

민주국가 표방, 종교의 자유는?
차별의 대상이 된 건 힌두교뿐만이 아닙니다. 티베트불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는 부탄정부의 탄압대상입니다. 부탄은 지난 2006년 절대군주제가 막을 내린 이후 헌법을 개정하며 민주국가를 표방했습니다. 그러나 2008년 개정된 헌법을 들여다보면 기존 법과 달리 종교의 자유를 허락한다는 내용이 들어가있지만, 실상은 이와 거리가 멉니다. 실제로 2010년, 부탄 정부는 프렘 싱 구룽이라는 기독교 신자가 예수를 주제로 한 영화를 상영했다는 이유로 3년의 징역형을 선고했습니다. 그와 함께 전도활동을 펼친 다른 2명의 신자들도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됐죠. 구룽은 “부탄은 안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탄압하고 있으면서도 밖에선 민주국가로 선전하는 모순적인 국가”라고 비판했습니다.

22개 언어와 여러 민족이 섞여있는 부탄이지만, 정부는 ‘단일 언어, 단일 종교’ 정책만을 고수하고 있어 사각지대에 놓인 국민들이 많다고 하네요.

부탄의 학교에서는 하루 일과 시작 전 30분간 국가이념과 정신문화(불교)교육을 한다고 합니다. 일각에선 부탄 국민들이 종교에 세뇌 당해 ‘행복하다’고 착각하는 것 아니냐는 다소 과격한 주장도 있습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듯이, 소박한 삶에서 정신적 행복을 추구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진 부탄에도 어두운 부분들이 감춰져 있었네요. ‘행복의 왕국’ 부탄의 국민들, 정말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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