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하나로 까딱하면 감옥행? 고속성장 쾌거 ‘아시아의 용’ 싱가포르의 민낯

[우리가 몰랐던 아시아 뒷이야기 ②]

[아시아엔=김아람 기자] 동남아 금융의 허브 ‘싱가포르’ 하면 높다란 빌딩숲, 마리아나베이샌즈 호텔의 수영장에서 휴식을 즐기는 관광객들의 모습이 먼저 떠오르죠? 리콴유 전 총리의 지휘 아래 단기간 내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한 싱가포르에는 ‘아시아의 용’ ‘청렴한 나라’ ‘기업하기 가장 좋은 나라’ 등 따라다니는 수식어들도 화려합니다. 최근엔 장애인을 위한 각종 시설을 갖춘 공동체 ‘이네이블링블리지’를 오픈했고, 양로원에선 노인을 위한 운동코치 로봇이 등장하는 등 복지에도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국민 대다수는 정부가 제공하는 공공임대아파트 HDB에서 거주하기 때문에 집 걱정도 없죠. 그런데 일각에서는 경제성장을 이뤄낸 주인공, 리콴유 전 총리를 독재자로 묘사하고 싱가포르를 ‘잘사는 북한’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5가지 부분에서 짚어보려 합니다. 본격적인 글에 앞서, 이해를 돕기 위해 싱가포르의 역사를 간략히 짚어보겠습니다.

싱가포르는 1963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해 말레이시아 연방 구성원이 됐습니다. 그러나 불과 2년 뒤인 1965년 연방에서 추방당해 단일국가로 독립하게 됐죠.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말레이계에 맞서 비말레이계의 단결과 지지를 호소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당시 해외언론은 이 자그마한 나라의 전망을 잇따라 비관하고 나섰지만, 싱가포르 정부는 부정부패 척결·능력주의·실용주의를 중심으로 한 정책을 필두로 경제 성장에 총력을 기울여 눈부신 성장을 일궈냈습니다. 초대 총리였던 리콴유는 사후에도 국민들의 칭송을 받으며 ‘싱가포르의 국부’라고 불리고 있죠. 하지만 개인보다 국가의 이익에 우선순위를 뒀던 성장 과정에서 생겨난 부작용은 지금도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표현의 자유
먼저 언론입니다. 싱가포르의 모든 언론은 정부의 철저한 통제 아래에 놓여있습니다. 리콴유 전 총리가 남긴 유명한 어록 가운데 “언론자유는 싱가포르의 통합과 정부의 우선순위 아래 종속돼야 한다”는 말도 있었죠. 올해 초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가 발간한 2016 월드리포트에 따르면 “싱가포르 현지 방송법에 따라 정치나 종교 등 민감한 사안을 다루는 언론은 사전에 미디어당국(MDA)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MDA가 공익에 적합하지 않은 콘텐츠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 즉시 그 내용을 삭제해야 한다”고 합니다.

일례로 2015년 5월 MDA는 현지 언론 <더 리얼 싱가포르>가 사회에 분란을 조장할 만한 기사를 올렸다는 이유로 웹사이트 운영을 중지시켰으며, 공동편집장 2명을 ‘선동죄’로 체포했습니다. 매년 전세계 언론 자유도를 조사하는 미국 비영리단체 프리덤하우스(Freedom House)가 발간한 ‘2015 인터넷 자유도 조사’에 따르면 싱가포르 언론자유지수는 전세계 199개국 가운데 67점으로 매우 낮은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100점에 가까울 수록 정부의 언론탄압이 심하다는 의미입니다.

일반인들도 표현의 자유를 누리긴 어렵습니다. 2015년 7월에는 한 블로거가 리콴유 전 총리의 장남인 리센룽 현 총리가 제정한 국민연금제도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가 정부로부터 명예훼손 고소를 당했으며, 같은 해 9월에는 현지에서 일하는 필리핀 출신의 간호사 에드가 싱가포르를 비판하는 댓글을 올렸다가 징역 4개월을 선고 받았습니다. 심지어 10대 유명 블로거 아모스 이도 유튜브에 리콴유 전 총리를 패러디한 동영상을 올렸다가 징역 4개월을 선고 받은바 있죠. 길거리에선 사복차림을 한 비밀경찰이 불순분자가 없는지 사람들을 감시하기도 한답니다.

열악한 노동자 처우
싱가포르는 외국인 이주 노동자에 대한 노동력 의존도가 굉장히 높습니다. 독립 이후 경제성장을 위해 적극적인 이주 노동정책을 펼쳤기 때문인데요, 현재 전체 노동인구 280만명 중 약 90만명이 이주 노동자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노동착취, 임금체불 등에 시달리고 있으며, 때때로 신체학대 및 성폭력을 당하는 사태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현지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죠.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바로 지난 2013년 12월 있었던 폭동인데요, 남아시아 이주 노동자 400여명이 경찰차를 뒤집고 주변 차량에 불을 지르는 등 과격한 시위를 벌여 화제가 됐습니다. 이 사건은 당시 인도 출신의 한 남성이 남아시아 출신 이주 노동자들이 주로 사는 리틀 인디아 거리에서 버스에 치여 사망한 뒤 사고 수습 과정에서 이주 노동자들이 항의하며 촉발됐습니다. 열악한 근무조건에 시달리던 이주 노동자들의 불만이 한꺼번에 터진 사태였죠.

그렇다고 현지 근로자들이 마냥 좋은 환경에서 일하는 건 아닙니다. 1968년 개정된 노사관계법에 따라 파업 및 태업이 금지되며, 급여인상 등의 노사협약이 있을 경우 노조분쟁조정위원회의 감독 및 승인이 필요하다고 하네요. 회사가 급여를 올려준다고 해도 위원회의 승인이 없으면 ‘말짱 도루묵’ 되는 셈이죠.

‘엘리트 지상주의’가 낳은 부작용
2015년 OECD가 76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제학업성취도평가에서 1위를 차지한 싱가포르. 여기에 ‘엘리트 교육’이 빠지면 섭섭합니다. 싱가포르는 초등교육부터 대학까지 매번 시험을 통해 소수 정예만이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능력주의 교육시스템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성적에 따라 우열반 수업을 하고, 6학년 때 치르는 졸업시험(PSLE) 성적에 따라 상위 60%만 중학교에 진학합니다. 중위 20%는 초등학교를 2년 더 다닌 후 졸업시험에 합격할 경우 진학 가능하며, 하위 20%는 4년간 초등학교를 더 다닌 뒤 직업훈련학교로 보내집니다. 이쯤 되니 “PSLE 성적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정해진다”는 말도 많습니다.

중·고등학교에서도 마찬가지로 시험을 통해 수월성 교육을 받게 되는데, 중간에 낙오하는 학생들은 모두 직업훈련코스를 이수하게 됩니다. 공부 못하는 어린 학생들은 선택의 여지 없이 일터로 보내겠다는 거지요.
공부 잘하는 학생들만 남을 테니 당연히 학업성취도가 높을 수 밖에 없고 자연스레 엘리트 계급이 생기겠죠. 국가가 선택한 ‘될성부른 떡잎’들은 자연스럽게 공직자의 길을 걷게 되니 별다른 공무원 시험은 없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요람부터 무덤까지 국가가 개인의 인생을 정해주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이런 시스템에서 ‘창의적 인재’는 기대하기 힘들겠죠.

심각한 빈부격차, 총리 연봉만 수십억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소수 엘리트는 향후 국가의 요직을 차지하는 지배계층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싱가포르에선 부정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공무원에겐 일반 서민 임금의 80~100배의 임금을 준다고 합니다. 의원 연봉이 수억 원에 달하며, 장관급은 십억 단위를 넘어가기도 합니다. 리센룽 총리는 작년 연봉만 170만달러(21억원)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연봉의 4배 수준입니다. 리 총리는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연봉을 받는 국가 정상으로 꼽히기도 했죠. 반면 전체 인구의 하위 10%는 1년에 벌어들이는 소득이 1000달러(125만원)가 채 안됩니다. 소수 엘리트가 부를 독점하는데다 이주 노동자 대부분이 하류층을 구성하다 보니 빈부격차가 심하게 벌어지는 겁니다.

실제로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15년 싱가포르 1인당 GDP는 5만3천달러로 세계 7위(한국 28위)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소득분배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2014년 미국 CIA 기준 0.464로, 심각한 빈부격차에 시달리고 있는 중국 0.469과 비슷한 수준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니계수가 1에 가까울수록 부의 분배가 불평등하다는 뜻이며, 0.4가 넘어가면 심각한 수준이라고 봅니다. ‘잘 사는 나라’ 싱가포르, 엘리트 교육에서 살아남은 자들만 누릴 수 있는 천국이 아닐까요?

여당에 유리한 선거제도
이번엔 다소 독특한 싱가포르의 선거제도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2015년 9월 싱가포르 조기총선이 있었죠. 늘 그래왔듯 집권 여당 인민행동당(PAP)이 69.9%를 득표해 전체 89석 가운데 83석을 차지하며 압승을 거뒀습니다. 싱가포르는 영국의 자치정부 시절인 1959년 리콴유 전 총리가 집권한 이후 지금까지 집권당이 바뀐 적이 없어, 사실상 ‘1당 체제’나 마찬가집니다. 2011년 총선에서 제1야당 노동당(WP)이 6석을 획득한 이후 약진을 보이고는 있지만, 선거는 그저 ‘형식’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바로 복잡한 선거제 때문인데요. 싱가포르는 소선거구제(한 선거구에서 의원을 1명 선출)와 집단선거구제(GRC)가 혼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GRC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GRC란 인접한 여러 선거구들을 묶어 ‘군 의회’로 설정하고, 각 정당이 군 의회에 후보를 4~6명을 함께 내세워 유권자들이 개인이 아닌 ‘팀’을 선출하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이때 최대 득표를 얻은 팀의 후보는 모두 의석을 획득하게 됩니다. 이 제도는 여당에 유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유명 후보 한 명만 팀의 간판으로 내세우면 다른 후보들의 지명도가 낮더라도 쉽게 높은 득표율을 낼 수 있었으니까요. 야당 입장에선 한 석만 잃어도 될 것을 GRC 탓에 최소 4석을 빼앗기는 상황을 겪습니다.

이밖에 싱가포르에선 토지 대부분이 국가 소유로, 도시계획에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개인의 토지를 취득할 수 있는 법안이 있다고 합니다. 토지 소유주는 정부의 토지 취득 이후 땅값이 올라도 보상을 받을 수 없고, 정부에 반발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개인의 재산이 국가 소유와 마찬가지로 취급되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한때는 성장의 동력이었던 싱가포르의 철저한 규제와 감시, 특정 소수에 집중된 정책들이 지금은 오히려 국민들을 옥죄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독자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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