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전 히로시마 원폭의 그날···’목격자’ 나가이 박사 “목숨걸고 평화헌법 지켜야”
[아시아엔=김아람 인턴기자] 70년전 오늘, 1945년 8월6일 오전 8시15분께 일본 히로시마(廣島) 상공에 굉음이 울려 퍼졌다. 미국이 원자폭탄을 투하한 것이다. 인류 역사상 최초였다. 이로부터 3일 뒤인 9일에는 나가사키(長崎)에도 폭탄이 떨어졌다.
최근 NHK가 일본 성인 1천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미국이 원폭을 투하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설문에 응답자 49%가 “지금도 용서할 수 없다”고 답했다. 그만큼 아직도 자신을 전쟁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일본인들이 많다는 얘기다.
일본은 원폭 희생자 위령비에 “(전쟁을 일으킨)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새겨놓고 있지만, 정작 기념관에서는 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반성과 책임을 찾아볼 수 없다. 겉으로는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속으로는 자신을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일본의 ‘두 얼굴’인 셈이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 3일 뒤인 8월9일 폐허가 된 나가사키를 직접 목격한 의사가 있다. 나가이 다카시 나가사키 의과대학 교수다. 그는 중상을 입었지만 다행히 목숨만은 건질 수 있었다. 하지만 피폭으로 아내를 잃은 그는 두 자녀와 함께 움막을 짓고 살면서 구조활동과 방사선연구에 몰두했다. 나가이 교수는 1949년 피폭 당시 처참했던 사고현장을 생생하게 묘사한 <나가사키의 종>(1949)을 출간했다.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한 이 책은 전후 수많은 일본인의 심금을 울려 영화와 노래로도 제작됐다. 국내에는 <그날, 나가사키에 무슨 일이 있었나>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1945년 10월, 나가이 교수는 피폭 당시의 사건들을 기록한 ‘구호대활동보고서’를 작성했다. 원자폭탄에 대한 인류 최초의 기록이었다. 하지만 내용이 매우 충격적이어서 원고를 검열했던 미국 국방성은 한동안 출판을 금지했다. 그럼에도 이 끔찍한 기록을 책으로 낸 이유에 대해 저자 나가이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그만 두라, 멈춰라, 전쟁만큼은 하지 말아다오. 사람들은 원자폭탄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불장난을 하고 있는 것이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진상을 그대로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곧바로 연필을 잡고 나가사키 최후의 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가감 없이 기록했다.”
그후 나가이 박사는 구호와 진료에 몰두하다 피폭 후유증으로 백혈병에 걸려 5년 투병 끝에 1950년 5월3일 세상을 떠났다. 일본정부는 나가이 박사에게 국가표창과 나가사키 명예시민증을 수여했다. 그의 장례는 폐허가 된 우라카미 교회 광장에서 치러졌다. 추도객이 2만명 넘게 몰렸다. 영결식이 끝난 후 나가사키의 모든 교회와 성당, 사찰이 일제히 종을 울려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댕~댕~댕~” 그 유명한 ‘나가사키의 종’이다.
나가이 박사는 자녀에게 남긴 유서에서 “목숨을 걸어서라도 일본의 평화헌법을 지켜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다시는 전쟁을 하지 않기로 결의하고 받아들인 것이 일본헌법 제9조1항”이라고 했다.
그러나 최근 일본의 현실은 어떤가?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다수의 일본 국민들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헌법개정을 시도하고 있다. 그는 평화헌법을 버리고 전쟁도 불사하는 조항을 만들어 전쟁을 통한 패권국가 재건을 꾀하고 있다. 나가이 박사의 66년 전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