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션1] 토론문: 사와다 가쯔미

일본 언론의 영토문제 접근법

澤田克己 (사와다 가쯔미, 일본 마이니치신문 서울특파원)

 

언론의 역할이나 언론에 기대하는 기능이라는 것은 사회에 따라 다르다. 한국에서는 신문사나 방송국을 “언론”이라고 부르는 반면, 일본에서는 “보도기관”이라고 부른다는 것은 그것을 상징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메이지 시대에는 “大新聞 (오오신분)”과 “小新聞 (고신분)” 두 가지가 있었다. 大新聞은 크기가 현대의 신문에 가까운 크기로 논설을 중심으로 하는 것, 小新聞은 타블로이드 판으로, 논설이 아니라 사회면 기사가 중심이었다. 현재 일본신문들은 小新聞에 가깝다는 느낌인 것에 비해서 한국 신문들은 일본 신문보다는 大新聞에 가깝다고 본다. 그것이 “언론”이란 호칭에도 반영된 것 아닌가.

일본 신문들은 사실 보도에 중점을 두고 있다. 물론 완전히 객관적인 기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뉴스를 기사로 할 것인가부터 주관적인 판단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일본 신문은 기사에 ‘평가’를 끼워 넣는 것을 피하려고 한다. 즉, 기사에 ‘망언’이나 ‘야욕’같은 말을 쓰는 일은 드물다. 가끔 나온다 해도 그것은 “한국 언론이 망언이라고 비판하고 있다”라는 식이다.

언론이 자국 정부의 입장을 반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영토 문제에서는 그러한 경향이 나오기 쉽다. 하지만 일본 신문들은 적어도 상대국의 주장을 어느 정도 전하는 노력도 한다. 예를 들어 마이니치신문은 작년 8월 29일, 독도와 센카쿠 열도에 관한 2 페이지의 특집을 게재했다. 독도에 대한 특집 페이지의 가장 큰 제목은 ‘영유 주장 맞받아’이며, 한국을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기사도 한일 양국의 주장을 중심으로 역사적인 경위를 독자에게 소개 한 것이며, 한국을 일방적으로 비판하지 않았다. 센카쿠 특집도 기본적으로 같은 자세다.

일본 신문들은 패전 후, 그 때까지 큰 흐름으로 보면 군부에 협력해서 국가의 진로를 오도했다는 반성 아래 다시 출발했다. 그래서인지 일본에서 신문의 역할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자국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전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검증 자료를 독자에게 제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어로 쓰이는 일본 신문은 일본인 독자들을 상대로 하는 것이지만 자국을 표현할 때는 “우리나라”같은 표현을 안 쓰며 “일본”이라 쓴다. 물론 어떤 사람의 발언으로 “우리나라”라는 뜻인 “わが? (와가쿠니)”를 쓸 때는 있지만 그것은 예외라고 할 수 있다.

아시아엔 (THEAs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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