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채권단 ‘총수장남 지분’ 갈등 ‘숨고르기’

동부화재 지분 담보제공 줄다리기 거듭…자구계획 짤 때 재론될 듯

[아시아엔 안정은 기자]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동부제철이 채권단 공동관리(자율협약)에 들어가게 되면서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동부그룹 비금융계열 지주회사 격인 동부CNI가 이달 초 만기가 도래하는 500억원의 회사채를 스스로 해결하기로 했고, 한때 나돌던 법정관리 불가피론은 일단 제동 걸렸다.

그러나 동부 사태가 완전해결 국면에 들어선 것은 아니다. 특히 김준기(70) 동부그룹 회장의 장남 남호(39)씨가 보유한 동부화재 지분을 둘러싼 채권단과 동부그룹의 갈등이 큰 변수로 남아 있다. 7월중 만기가 돌아오는 2200억원 규모의 회사채도 해결돼야 한다.

그런 가운데 패키지딜 무산 이후 동부발전당진 투자유인서(티저레터)가 15곳의 투자자와 업체에 발송되는 등 자산 매각 절차가 재개됐다. 동부특수강 제삼자 매각도 곧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동부그룹과 채권단 사이에 마찰을 빚는 가장 큰 요인은 김준기 회장의 장남 남호씨의 동부화재 지분 처리문제이다.

남호씨는 미국 유학(워싱턴대학 MBA)을 마치고 2009년 1월 동부제철에 차장으로 입사했으며 본사 인사팀 등을 거쳐 현재는 동부팜한농 부장으로 근무 중이다. 남호씨를 동부제철→기타 제조부문 계열사→금융계열사 순으로 돌리며 경영수업을 받게 하는 것이다.

남호씨가 보유한 동부화재 주식은 995만1520주(지분율 14.06%)다. 지분 가치는 5만1천원 안팎인 주가로 따지면 5천∼5100억원이다.

김 회장 지분은 7.87%, 김 회장 장녀인 주원씨 지분은 4.07%, 동부문화재단 지분이 5.0%로 오너 일가 지분을 다 더하면 31.3%에 달한다.

동부화재는 지난해 원수보험료 7조6427억원, 당기순이익 3060억원을 기록한 우량 보험사다. 삼성화재에 이어 업계 2위로, 현금·예치금이 1조7천억원대에 달한다. 올해 1분기에도 전년보다 9.0% 증가한 683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또 동부생명(92.9%), 동부증권[016610](19.9%) 등을 지배하면서 금융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다. 동부화재가 넘어가면 동부그룹 주요 6개 금융계열사가 함께 넘어가는 구조다.

만약 남호씨의 지분을 채권단 요구에 따라 담보로 제공할 경우 최악의 경우 동부그룹은 경영권을 한꺼번에 잃을 수도 있다.

이미 김 회장 지분은 다른 계열사 지분, 한남동 자택 등과 함께 담보로 설정돼 있다.

남호씨 지분도 2009년 우리·하나·외환은행 등 20개 금융기관에 담보 설정이 됐지만, 주가가 당시(1만9500원)보다 2.5배가량 치솟으면서 담보 가치가 높아져 추가 담보 여력이 3천억원에 육박한다.

때문에 채권단 입장에서는 오너 자산 중에서 가장 믿을 만한 담보이다. 채권단이 요구하는 오너일가 사재출연도 이 지분을 겨냥한 것이다.

반면 동부그룹 입장에서는 ‘지분 그 자체가 곧 경영권’이기 때문에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카드이다. 비금융부문 구조조정이 어떤 형태로 진행되든 금융부문 경영권을 잃으면 빈 껍데기만 남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채권단의 태도 역시 완강하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총수 일가가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지금까지 모든 기업의 구조조정 과정에서도 적용돼 온 원칙이라는 것이다.

동부그룹은 지난 4월 신주인수권부사채(BW) 만기 상환과 운영자금을 동원하고자 1260억원을 산업은행으로부터 브리지론으로 대출받으면서 김 회장의 전 계열사 지분과 자택 등을 담보로 설정했다.

김 회장이 이중 동부화재 지분을 팔아 동부제철 유상증자(800억원)에 참여한다는 게 애초 약속했던 사재출연 계획이라고 채권단은 설명했다.

그러려면 담보 설정이 풀려야 하는데 산은은 대체 담보로 남호씨의 동부화재 지분을 요구했다.

지난해 자구안을 만들면서 남은 재산을 전부 털어냈기 때문에 추가 담보 여력이 있는 자산은 남호씨 보유 지분밖에 없다고 채권단은 주장한다.

동부제철 자율협약 개시로 지분 제공 문제가 일시 잠복상태에 들어갔지만, 언젠가는 다시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채권단이 대주주 책임 문제를 집요하게 물고늘어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김회장이 아들의 지분을 챙긴다는 사회적 비난을 무릅쓰고 시장을 위험에 빠트려서는 안된다는 것이 채권단과 금융당국의 일관된 입장이다.

따라서 동부그룹은 채권단의 이런 요구를 피해갈 수는 없다. 그렇지만 동부그룹은 이 문제를 원천적으로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다.
우선 브리지론을 받기 전인 지난 2∼3월부터 산업은행에서 ‘구조조정 속도를 높이기 위한 대주주의 결단’을 요구하며 남호씨 지분을 거론했다고 한다.

STX·동양 사태로 엄청난 손실을 감수해야 했던 산업은행이 동부화재 지분, 즉 경영권을 지렛대로 삼아 선제적인 구조조정 작업에 착수했다는 뜻이다. 동부화재 오너 지분이 곧 산업은행의 ‘출구전략’이라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채권단이 겉으로는 ‘법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하면서도 압박 강도를 점점 올리는 걸 보면 분명히 어떤 의도가 있다는 게 동부 측의 의구심이다.

동부는 또 그룹의 독특한 지배구조를 들어 채권단의 요구를 방어하고 있다.

금융과 비금융 계열이 철저히 분리돼 있어 일반 계열사가 금융계열사를 지배하는 곳이 많은 다른 그룹과는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다. 동부화재가 가진 비금융계열사 지분은 동부제철 4.0%, 동부엔지니어링 1.9%뿐이라는 설명이다.

또 채권단의 요구가 기업구조조정과 관련해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는데다 주주 유한책임제의 취지에 맞지 않는 무리한 요구라는 것이 동부 측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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