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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오늘의 시] ‘찐빵’ 장재선 “어머니 없이 참 오랜 세월을 혼자 버텨왔구나”
집 근처 시장에 찐빵 가게가 생긴 것을 안 후로 가끔 들른다. 고향에서 살던 그 때, 어머니는 찐빵을 즐겨 만들었다. 뜨거운 김이 나는 찐빵을 논일하는 어른들에게 갖다 줄 때마다 나도 배불리 얻어먹었다. 내 얼굴이 찐빵 같다며 어른들은 몰랑몰랑하게 웃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어른들은 찐빵 같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에 내 얼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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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오늘의 시] ‘기침 소리’ 박노해
찬 겨울 아침 어흠, 어른의 기침 소리 마당 위 얇은 싸락눈이 한번 날리고 갓 깨어난 참새들 대숲으로 난다 물동이를 머리에 인 누나가 발자국 소리 죽이고 숙취 어린 눈동자들 흠칫 옷깃을 매만진다 어흠, 이른 아침 어른의 기침 소리 정신 차려 자세를 가다듬는 맑고 차운 시대정신의 기침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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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난 부탁했다’ 류시화 “겸손해지는 법을 배우도록”
나는 신에게 나를 강하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원하는 모든 걸 이룰 수 있도록. 하지만 신은 나를 약하게 만들었다. 겸손해지는 법을 배우도록. 나는 신에게 건강을 부탁했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하지만 신은 내게 허약함을 주었다. 더 의미있는 일을 하도록. 나는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행복할 수 있도록.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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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序 그 여자 앞에 무너져내리다’ 박노해
그 해 첫눈이 펑펑 내리던 밤 엉금엉금 기어가는 마지막 호송차는 만원이었지요 그 바람에 규정을 어기고 나는 그 여자 옆에 앉혀지게 되었습니다 눈송이 날리는 창 밖만을 하염없이 내다보던 그 여자는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검은 눈이 어느덧 젖어 있었습니다 자기는 아이 둘 가진 노동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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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오늘의 시] ‘소한’ 장정혜 “남은 숙제가 있다면”
소한 추위가 창문 아래서 떨고 있다 양력 일월 오일이네 어느해 그다지 춥지않던 오늘 결혼식을 했었지 그 날부터 가볍지 않은 삶이 시작되었어 아주 먼 길이었어 까마득하게 생을 마감한 꽃들이 떨어지고 낭만의 가을 단풍이 낙엽되어 뒹굴어 절망으로 닥아오면서 내가 내가 아니었음이 서러웠어 먼 길 걸어오면서 이제 어둠이 내리기 전에 남은 숙제가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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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오늘의 시] ‘첫마음’ 정채봉 “첫 출근하는 날, 신발 끈을 매면서”
1월 1일 아침에 찬물로 세수하면서 먹은 첫 마음으로 1년을 산다면, 학교에 입학하여 새 책을 앞에 놓고 하루 일과표를 짜던 영롱한 첫 마음으로 공부를 한다면, 사랑하는 사이가, 처음 눈이 맞던 날의 떨림으로 내내 계속된다면, 첫 출근하는 날, 신발 끈을 매면서 먹은 마음으로 직장 일을 한다면, 아팠다가 병이 나은 날의, 상쾌한 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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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1월1일에’? 이채경 “지난해와 달라진 게 없는데”
아침에 눈을 뜨니 흰 서리 내린 겨울 창문으로 성큼 새해가 와 있습니다. 나는 가슴이 덜컹합니다. 추위를 이기려 차를 끓이면서 이대로 다시 잠이 들면 그만큼 새해가 늦게 오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나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고 지난해와 달라진 게 없는데 그냥 새해가 와 버리면 어쩌나요. 하지만 어제의 짐을 지고는 오늘의 삶을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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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가득한 한심’ 박노해 “양지바른 무덤가에 누워”
오늘은 한심하게 지냈다 일도 하지 않고 책도 읽지 않고 마루에 걸터앉아 우두커니 솔개가 나는 먼 산을 바라보고 봉숭아 곁에 쪼그려 앉아 토옥토옥 꽃씨가 터져 굴러가는 걸 지켜보고 가을 하늘에 흰 구름이 지나가는 걸 바라보고 가늘어지는 풀벌레 소리에 귀 기울이고 소꿉장난하는 아이들과 남편 배역을 맡아 하다가 목이 말라 우물가에서 심심한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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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살아서 돌아온 자’ 박노해 “거짓은 유통기한이 있다”
진실은 사과나무와 같아 진실이 무르익는 시간이 있다 눈보라와 불볕과 폭풍우를 다 뚫고 나온 강인한 진실만이 향기로운 사과알로 붉게 빛나니 그러니 다 맞아라 눈을 뜨고 견뎌내라 고독하게 강인해라 거짓은 유통기한이 있다 음해와 비난은 한 철이다 절정에 달한 악은 실체를 드러낸다 그대 아는가 세상의 모든 거짓과 악이 총동원되었어도 끝까지 죽지 않고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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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환한 쪽으로-가수 현숙’ 장재선 “열일곱 번째 기부한 당신”
폐지 할머니 손수레를 양복 입은 중년 남자가 조용히 밀어주는 모습을 오늘 낮에 봤어요. 밤에는 뉴스를 만났지요. 자동차에 깔린 이를 지나가던 사람들이 거들어 차를 들어내고 구했다는. 당신이 산청군 어르신들을 위해 목욕차를 기증했다는 소식을 아침에 들은 날이었지요. 전국 고샅고샅 축제 마당에서 노래를 불러 모은 돈을 오천만 원짜리 목욕차로 바꿔 열일곱 번째 기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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