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상륙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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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헌의 다시쓰는 6·25] (21) 美 ‘무조건항복’ 요구, 6·25전쟁 장기화 초래
낙동강 전선의 8군은 1950년 9월 16일 일제히 반격을 개시하였다. 주공인 미1군단(1기병사단, 24사단, 5연대전투단, 국군 1사단 및 영연방 27여단)은 9월 20일 낙동강을 건너 쾌속의 진격을 계속해 9월 26일 오산에서 7사단과 연결하는데 성공하였다. 미9군단(2사단, 25사단)은 9월 25일 진주를 탈환하고, 9월 30일에는 군산-논산으로 진출하였다. 중부전선의 국군 2군단은 9월 28일 충주-원주로, 동부전선의 국군 1군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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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헌의 다시쓰는 6·25] ?’임관 48년’ 노병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
인천상륙작전에는 미10군단이 동원되었는데 제1해병사단과 제7보병사단을 주축으로 한국군 독립17연대와 해병 4개 대대가 투입되어 총 7만명에 달하는 대군이었다. 작전에 동원된 함정은 8개국에서 261척이 참가하였다. 이는 노르망디상륙작전 이래의 대군이었는데 이런 규모, 이런 방식의 상륙작전은 앞으로 좀처럼 있기 어려울 것이다. 독립17연대는 화령장 전투에서의 승리로 백인엽 연대장 이하 부대 전 장병이 한 계급 특진하였는데 17연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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