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둘러싼 이야기가 다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호찌민이 평소 이 책을 즐겨 읽었다는 일화다. 유홍준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을 둘러싼 논란과 함께 이 이야기가 재조명되면서, 확인되지 않은 일화가 남양주시의 다산 관련 사업과 예산의 근거로 쓰인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목민심서』는 목민관이 지켜야 할 도리를 논한 책이다. 다산의 저술이 오늘날에도 읽을 가치가 있다는 사실과 호찌민이 그 책을 애독했다는 주장은 별개다. 책의 가치가 일화의 진실성을 보증하지는 않는다.
이 이야기를 접하면서 지난해 2월 아내와 함께 다녀온 베트남 여행을 떠올렸다.
하롱베이의 티톱섬에는 소련의 우주비행사 게르만 티토프의 동상이 서 있다. 1962년 호찌민과 함께 하롱베이를 방문한 그를 기념해 섬에 이름을 붙였다고 했다. 여행 안내자는 호찌민이 섬을 그에게 주고 싶어 했지만 소유권을 넘기는 데 제약이 있어 이름만 붙여 주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법적 사정까지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한 사람의 방문을 기념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일행은 동상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나는 찍지 않았다.
다음 날에는 호찌민의 거처와 집무 공간, 지하 벙커를 둘러보았다. 한 방의 벽에는 마르크스와 레닌의 초상이 걸려 있었다.
내게 그 초상화는 단순한 실내 장식이 아니었다. 한 혁명가의 정치적 세계관을 압축해 보여주는 상징처럼 느껴졌다. 베트남의 독립과 통일을 이끈 호찌민의 역사적 역할과 그가 따랐던 이념, 그리고 그 이념이 세계 곳곳에 남긴 결과는 함께 살펴볼 문제다. 한 인물의 업적을 인정하는 것과 그를 둘러싼 모든 상징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다르다.
그 방을 나서며 한국군의 베트남전쟁 참전도 떠올렸다. 청룡·맹호·백마부대가 참전했고, 수많은 군인이 전쟁터에서 임무를 수행했다. 내가 방문한 장소들에서는 한국군의 희생을 기리는 기념물을 찾지 못했다. 베트남 전체에 그런 기념물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내가 걸었던 길과 방문했던 공간에서 그들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마음에 남았다.
나에게 그 전쟁은 먼 나라의 역사만은 아니다. 장인어른께서는 베트남에서 한국군 비둘기부대 소속 제101외과병원장으로 복무하셨다. 전쟁터에서 부상자를 치료하는 군의관의 일은 이념이나 정치적 구호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다친 사람을 살리고 죽음과 마주한 이들을 돌보는 일은 구체적인 현실이었다. 베트남을 여행하면서 나는 그 현실을 가족의 기억과 겹쳐 생각했다.
호찌민의 거처에서도 나는 사진을 찍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 한 문장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다만 그곳에서 마주한 기념의 방식과 내가 기억하는 전쟁의 풍경 사이에는 어떤 간극이 있었다.
그보다 앞선 시간,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연구실에서 만난 한 소년도 떠오른다. 1997년부터 1998년까지 오리건보건과학대학교(OHSU)에서 1년간 연구하던 때였다. 제시 응우엔이라는 고등학생이 방학을 이용해 연구실에 나왔다. 아버지는 포틀랜드 시내에서 개업한 베트남계 의사로, 연구실 책임자와도 친분이 있었다. 어머니는 미국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제시는 실험복을 입고 후드 안에서 피펫을 능숙하게 다루었다.
당시 연구실에서 만난 베트남계 사람들 가운데는 베트남을 떠나 미국에 정착한 이들과 그 후손들이 있었다. 일부는 이른바 보트피플의 경험을 가진 가족이었다. 제시의 가족이 그 역사와 어떤 관계였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제시의 모습은 전쟁의 또 다른 시간을 보여주었다. 전쟁은 종전이라는 한 날짜로 끝나지 않았다. 고향을 떠난 사람들의 삶과 새로운 나라에서 자라는 자녀들의 일상 속에서도 역사는 이어졌다. 제시는 이념의 상징도, 전쟁의 피해를 대표하는 인물도 아니었다. 그저 피펫을 잘 다루던 한 소년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기억에 남았다.
베트남 여행에서 마주한 마르크스와 레닌의 초상, 티톱의 이름과 동상, 그리고 내가 찾았으나 발견하지 못한 한국군의 흔적. 기념하는 사람과 기념되는 사람, 기록에 남는 역사와 그 바깥에 머무는 기억은 늘 일치하지 않는다.
다시 『목민심서』로 돌아간다. 한 권의 책이 훌륭하다는 것, 어떤 인물이 그 책을 읽었다는 것, 그 인물이 책의 가르침대로 살았다는 것은 서로 다른 주장이다. 각각의 사실에는 각각의 근거가 필요하다. 위대한 책의 이름이 붙었다고 확인되지 않은 일화가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유명한 인물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고 그를 둘러싼 역사가 하나의 이야기로 정리되는 것도 아니다.
책은 읽고 평가해야 한다. 인물은 공과를 함께 살펴야 한다. 기념은 누구를 기리는지뿐 아니라 누구의 기억을 비켜 가는지도 돌아보아야 한다.
지난해 베트남에서 사진에 담지 않은 장면들은 돌아온 뒤에도 내게 질문을 남겼다. 역사는 기념비에 새겨진 이름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때로는 초상화 앞에 멈춘 한 사람의 시선과 기억 속에서 피펫을 다루던 한 소년의 손끝에도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