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 12일 옥천 명가 콘서트홀…민주언론운동협의회 결성, 국민주신문 ‘한겨레’ 창간 앞장
청암송건호선생기념사업회 “언론자유와 민주주의에 바친 삶, 고향 주민들과 함께 기억”
1975년 봄, 동아일보 편집국장 송건호는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섰다. 박정희 정권의 언론 탄압에 맞서 자유언론을 외치던 기자들이 무더기로 해직되자, 그는 기자들의 복직을 요구했다. 그러나 사태가 해결되지 않자 편집국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언론인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지위와 안정된 생활을 내려놓은 것이다.
그로부터 13년 뒤인 1988년 5월 15일, 송건호는 새로운 신문의 창간을 이끌었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신문을 만들겠다는 뜻으로 시민들이 돈을 모아 세운 한겨레신문이었다. 그는 초대 사장을 맡아 한국 언론사에 새로운 길을 열었다.
청암(靑巖) 송건호(1926~2001). 충북 옥천이 낳은 언론인이자 역사연구자, 민주화운동가다. 그의 탄신 100주년을 앞두고 고향 옥천에서 삶과 업적을 기리는 후원의 밤이 열린다.
청암송건호선생기념사업회는 11월 12일 오후 6시 충북 옥천군 옥천읍 명가 콘서트홀에서 ‘청암 송건호 기념사업회 후원의 밤’을 개최한다. 기념사업회가 송건호의 언론정신을 지역 주민들과 나누기 위해 처음 마련한 행사다.
행사는 오후 6시 식사와 친교를 시작으로 오후 6시 30분 기념식, 이어 ‘후원의 밤’ 순서로 진행된다.

기자들의 해직 앞에서 편집국장 자리를 내려놓다
송건호는 충북 옥천에서 태어나 서울대 법과대학을 졸업했다. 1953년 대한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뒤 한국일보, 조선일보, 경향신문, 동아일보 등에서 기자와 논설위원, 편집국장을 지냈다.
그의 언론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 중 하나는 1975년 동아일보 사태였다.
1974년 10월 24일 동아일보 기자들이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하자 정권의 광고 탄압이 이어졌다. 1975년 3월에는 기자 134명이 강제 해직됐다. 당시 편집국장이었던 송건호는 기자들의 복직과 사태 해결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자신도 사표를 냈다.
편집국장이라는 자리를 지키는 것보다 기자들과 언론자유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훗날 그가 한국 언론인의 사표로 존경받게 된 데에는 이 시기의 선택이 자리하고 있다.
신문사를 떠난 뒤에도 언론자유를 향한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재야에서 현대사를 연구하고 글을 쓰며 권력의 통제를 받지 않는 언론의 필요성을 알렸다.
1980년에는 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돼 체포됐으며, 정보기관의 고문을 겪었다. 당시의 고문 후유증은 훗날 오랜 투병 생활로 이어졌다.

‘보도지침’ 폭로에서 국민주 신문 창간까지
1984년 송건호는 해직언론인들과 함께 민주언론운동협의회를 결성하고 초대 의장을 맡았다. 이 단체를 중심으로 창간된 월간지 ‘말’은 권력이 통제하는 언론 현실을 비판하고 제도권 언론에서 다루지 못한 사실들을 알렸다.
특히 1986년 ‘말’지가 공개한 ‘보도지침’은 전두환 정권이 언론 보도에 구체적으로 개입하고 통제한 실태를 드러냈다. 무엇을 보도하고 무엇을 보도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권력이 지시하던 시대였다. 이 폭로는 한국 언론자유운동의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됐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에는 새로운 신문을 만들자는 논의가 본격화됐다. 같은 해 7월 해직언론인들이 송건호를 찾아가 창간 작업을 이끌어 달라고 요청했다.
신문 창간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는 방식부터 달랐다. 특정 기업이나 권력자의 자금이 아니라 시민들이 주식을 사서 신문을 세우는 국민주 방식이었다.
2만7000여 명이 50억원의 창간기금을 모았다. 1987년 12월 한겨레신문주식회사 창립총회에서 송건호가 초대 대표이사로 선임됐고, 이듬해 5월 15일 한겨레신문이 창간됐다.
한겨레 창간은 단순히 새로운 신문 하나가 탄생한 사건이 아니었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언론이 시민들의 참여와 힘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일이었다. 송건호는 그 과정의 중심에 있었다.

언론인이자 역사연구자…밥상 위에서 써 내려간 현대사
송건호는 언론 현장에만 머물지 않았다. 한국 현대사를 탐구하고 기록한 저술가이기도 했다. 대표 저서로는 『민족지성의 탐구』(1975), 『한국민족주의의 탐구』(1977), 『한국현대사론』(1979), 『한국현대인물사론』(1984), 『민주언론 민족언론』(1987), 『한국현대언론사』(1990) 등이 있다.
그는 역사적 사건을 권력자의 관점에서만 바라보지 않았다. 민족과 민중, 지식인의 책임, 분단과 민주주의, 언론의 역할을 끊임없이 질문했다. 기자로서 사실을 추적하는 태도와 역사연구자로서 시대를 성찰하는 시선이 그의 저술에 함께 담겼다.
그의 집필 생활을 보여주는 일화도 전해진다. 별도의 서재를 갖추기 어려웠던 시절, 송건호는 집안의 밥상 위에 원고지를 펼쳐 놓고 글을 썼다. 부인 이정순 여사는 훗날 남편이 제대로 된 서재도 없이 수많은 글을 써냈던 일을 회고했다.
권력에 맞서 언론자유를 지키는 일과 역사의 진실을 기록하는 일은 그에게 별개가 아니었다. 두 일 모두 한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의 책임이었다.
그는 1996년 소장 도서 1만5000여 권을 한겨레신문사에 기증해 ‘청암문고’가 마련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책을 통한 지식의 축적과 다음 세대에 대한 책임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1999년 금관문화훈장을 받았으며, 2001년 12월 21일 별세했다.

고향 옥천에서 다시 묻는 송건호의 언론정신
송건호의 삶을 되돌아보는 일은 지나간 언론인의 업적을 기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언론이 권력의 압력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기자의 양심과 직업적 책임은 어디에서 출발하는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언론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그가 평생 붙잡고 살았던 질문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청암송건호선생기념사업회는 이번 후원의 밤을 통해 송건호의 민주주의에 대한 헌신과 언론자유를 향한 뜻을 고향 주민들과 함께 기리고자 한다.
기념사업회는 초대글에서 “옥천이 낳은 위대한 역사가이자 한국 언론인들이 존경하는 참언론인 청암 송건호 선생의 삶과 업적을 옥천군민들과 함께 기리고 나누고자 처음으로 마련했다”며 “선생의 민주주의에 대한 헌신과 언론자유에 대한 염원을 기리기 위해 활동하는 기념사업회에 많은 격려와 후원을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행사는 2026년 11월 12일 목요일 오후 6시, 충북 옥천군 옥천읍 성왕로 1169 명가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1975년 기자들이 해직되는 현장에서 편집국장 자리를 내려놓았던 언론인, 1988년 시민들과 함께 독립신문을 창간했던 언론인, 밥상 위에서 한국 현대사를 기록했던 역사연구자.
그의 고향 옥천에서 열리는 후원의 밤은 송건호가 남긴 언론정신을 오늘의 현실 속에서 다시 생각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