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칼럼

“본전만 찾으면, 빚만 없으면, 마음만 먹으면”…도박중독자가 버려야 할 세 가지 생각

도박의 시작은 한 번의 승리였지만, 끝에는 빚과 절망, 그리고 잃어버린 삶이 남았다. 카지노의 불빛 뒤에 숨은 도박중독의 유혹과 파멸을 상징적으로 담은 AI 이미지.

그는 비교적 여유 있는 가정에서 성장했고 서강대학교를 졸업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동전으로 하는 ‘짤짤이’를 해보았고, 수학여행을 가면 카드놀이도 했다. 그러나 딴 돈은 함께 간식을 사 먹거나 친구들에게 돌려주었다.

그런 그가 도박에 빠진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던 2008년 어느 날이었다. 직장에 다니던 학교 선배에게서 대리운전을 부탁하는 전화가 왔다. 대리운전비 50만원을 받기로 하고 동서울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사북터미널까지 갔다. 그곳에서 다시 강원랜드로 향했다.

선배는 동료 세 명과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일어나려다가 좋은 패가 계속 나오자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는 기다리다가 선배를 찾아 안으로 들어갔다. 선배는 노란색 칩 다섯 개를 주며 환전하라고 했다. 그는 환전하는 방법도 몰랐다. 그저 선배가 하는 바카라 게임을 어깨너머로 지켜보았다.

선배는 계속 돈을 땄다. 그는 노란색 칩 하나를 선배가 베팅하는 곳에 놓았다. 10만원짜리 칩이었다. 선배가 이기자 칩이 두 개가 되었다. 약속한 대리운전비를 챙기고도 20만원이 남았다. 그는 그 돈으로 게임을 계속해 한 시간 만에 270만원을 벌었다. 선배는 2,000만원을 벌었다고 했다.

그날 그는 선배 일행을 서울까지 잘 모셔다드렸다. 딴 돈은 쉽게 생긴 돈이라 생각했다. 술값으로 다 썼다. 그러나 그날의 경험은 그의 뇌리에 깊이 박혔다. 50만원으로 한 시간 만에 수백만원을 쉽게 벌 수 있다는 것.

한 달 뒤, 그는 20만원을 가지고 혼자 다시 그곳을 찾았다. 이번에는 금방 다 잃었다. 친구에게 전화해 돈을 빌려 다시 해보았지만 결과는 같았다. 그렇게 시작된 도박이었다.

친구를 잃었다. 회사 돈에도 손을 대게 되었다. 감옥에도 다녀왔다. 자신이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결혼도 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고 했다. 다행히 지금은 13년 동안 도박을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가 들려준 도박중독자의 생각은 세 가지였다. 첫째, 본전만 찾으면 그만두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본전을 찾으면 더 한다. 둘째, 빚만 없으면 그만두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가족이 은행 빚을 갚아주면 신용등급이 올라가고 다시 대출받기가 쉬워진다. 그러다 제2금융권으로, 사채로 손을 뻗게 된다. 셋째, 마음만 먹으면 끊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중독 상태에서는 조절 능력이 떨어져 마음먹은 대로 행동하기 어렵다.

그는 이 세 가지를 영어로 ‘If only’라고 표현했다. ‘본전만 찾으면.’ ‘빚만 없으면.’ ‘마음만 먹으면.’ 도박에 빠진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나는 손을 들고 물었다. “강사님은 어떻게 완치되셨나요?” 그가 내 말을 끊으며 말했다. “도박중독은 당뇨병 같은 진행성 질환입니다. 조절할 수는 있어도 완치할 수는 없습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딸 가진 아버지가 사윗감을 데려오면 술을 먹여 취하게 해서 사람의 마음속 밑바닥을 보고 판단하듯이, 도박중독은 사람의 밑바닥을 보게 해줍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절친한 친구를 거짓말로 속이고 돈을 빌리고, 회사 돈을 횡령하는 저의 민낯을 직접 보고는 죽으려고도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죽지도 못하고, 주위 사람들을 괴롭히고 감옥에도 갔습니다.”

그는 자신이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도박을 못 끊을지도 모르겠다는 그 두려움에 멈추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도박으로 돈을 잃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깊은 곳에서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어버렸는지를 본 사람이었다.

도박은 돈을 잃게 한다. 그러나 때로는 돈보다 먼저 사람을 잃게 한다. 친구를 잃고, 가족의 신뢰를 잃고,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는다. 그는 그 밑바닥에서 멈추었다고 했다.

나는 전날 강의에서 들은 한 학생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300만원을 따서 반 친구 17명에게 나누어주고 따돌림에서 벗어난 학생이었다. 그 아이에게 300만원은 돈이 아니라 친구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 강사에게 처음 딴 돈은 어쩌면 “나도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자신감이었을 것이다.

도박은 사람마다 다른 것을 약속한다. 누군가에게는 돈을, 누군가에게는 친구를, 누군가에게는 인정과 자존감을 약속한다. 그래서 도박을 끊는 일은 단순히 돈을 잃지 않는 일이 아닐 것이다. 도박이 대신해 주던 무언가를 다른 곳에서 찾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가 13년 동안 도박을 하지 않고 있다는 말을 들으며 나는 ‘완치’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했다. 병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뜻의 완치가 아니라,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매일 자신을 돌보는 것. 어쩌면 회복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다시는 도박하지 않겠다”는 다짐보다 “다시 도박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잊지 않는 것. 그리고 그 두려움 속에서도 오늘을 살아가는 것. 당시 만난 강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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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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