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칼럼

쿡은 땅을 발견했고, 호주 원주민 여성은 언어를 건넸다

호주 시드니 하이드파크에 세워진 제임스 쿡 선장의 동상(왼쪽)과 원주민 여성 파티에가랑이 영국인 윌리엄 도스에게 자신의 언어를 전하는 장면을 재구성했다. 동상에는 “이 땅을 발견했다(Discovered this territory)”는 문구가 새겨져 있지만, 이곳은 이미 수만 년 동안 원주민들이 살아온 땅이었다. 누구의 눈으로 역사를 기록하고 기억할 것인가를 묻는 이미지다. (AI 생성 이미지)

시드니 하이드파크를 걷다가 한 동상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제임스 쿡 선장(Captain James Cook)의 동상이었다. 1879년에 세워진 이 동상에는 그의 생애를 압축한 듯한 문장이 세 면에 하나씩 새겨져 있다.

Born at Marton in Yorkshire — 1728. 요크셔에서 태어났다.
Discovered this territory — 1770. 이 땅을 발견했다.
Killed at Owhyhee — 1779. 오와히에서 죽었다.

태어났다. 발견했다. 죽었다. 한 사람의 생애를 세 문장으로 압축한 기록이었다. 그런데 나는 가운데 문장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Discovered this territory.” 그는 무엇을 발견했다는 것일까.

1770년 쿡이 이곳에 도착했을 때, 이 땅은 비어 있지 않았다. 이미 수만 년 동안 사람들이 살아온 땅이었다. 그들에게 이곳은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미지의 땅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이름이 있었고, 언어가 있었고, 조상으로부터 이어져 온 기억이 있었다.

그런데 동상에는 이 땅이 ‘발견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물론 이 문장은 유럽의 항해와 탐험이라는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한쪽의 ‘발견’은 다른 쪽에게는 자신의 존재가 역사에서 지워지는 순간이 될 수도 있다.

며칠 뒤 호주박물관에서 나는 약 3분짜리 영상 작품 하나를 보았다. 스티븐 페이지(Stephen Page)가 만든 〈The Spirit of Patyegarang〉이었다.

Patyegarang(파티에가랑).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녀는 시드니 지역의 원주민 여성이었다. 영국의 식민지 건설이 시작된 초기, 천문학자이자 언어학자였던 윌리엄 도스(William Dawes)와 만나 자신의 언어와 문화를 나누었다. 도스는 그녀에게서 들은 단어와 대화를 기록했다. 그 기록은 오늘날 당시 시드니 지역의 언어를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여기서 나는 쿡의 이야기와는 다른 방향의 역사를 보았다. 쿡의 동상에서는 영국인이 이 땅을 발견한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Patyegarang의 이야기에서는 유럽인이 오히려 배우는 사람이다.

그녀가 자신의 언어를 건넨다. 그는 그것을 기록한다. 그녀가 그에게 언어를 주었다. 이것은 작은 차이처럼 보이지만, 역사를 바라보는 방향을 바꾼다.

우리는 식민지의 역사를 흔히 유럽인이 와서 땅을 발견하고, 지도를 만들고, 이름을 붙이고, 기록을 남긴 이야기로 배운다. 그러나 Patyegarang의 이야기는 그 화살표를 거꾸로 돌려놓는다. 이미 그곳에 살고 있던 사람이 새로 온 사람에게 자신의 세계를 이해할 언어를 건넨 것이다.

이 이야기를 생각하다 보니 우리가 너무 익숙하게 사용하는 한 단어가 떠올랐다.

Aboriginal. 이 단어의 어원을 찾아보면 흥미롭다.

Aboriginal은 라틴어 ab origine, 즉 ‘기원으로부터(from the origin)’라는 표현에서 나온 말이다. 여기서 *ab-*는 abnormal의 *ab-*와 마찬가지로 ‘~로부터’라는 뜻을 가진다. 다만 abnormal에서는 정상에서 벗어난다는 의미가 되고, aboriginal에서는 기원이나 시작으로부터 왔다는 의미가 된다. 따라서 어원만 놓고 보면 aboriginal은 ‘비정상적인’이라는 뜻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원보다 이름을 붙이는 사람과 이름을 받는 사람의 관계일 것이다. 호주에는 이미 서로 다른 수많은 원주민 공동체와 언어, 문화가 존재했다. 시드니 지역에도 Eora, Gadigal, Dharug와 같은 구체적인 이름과 언어가 있었다. 그런데 식민지 시대의 언어는 이처럼 다양한 사람들을 하나의 큰 범주로 묶었다.

Aboriginal. 하나의 이름이 수많은 이름을 덮어버린 셈이다.

그래서 Patyegarang이라는 이름이 더욱 중요하게 다가온다. 그녀는 단순히 ‘Aboriginal woman’이라는 범주 속에 들어 있는 익명의 사람이 아니다. Patyegarang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자기 언어가 있었다. 그녀가 살던 땅에는 이미 이름이 있었다. 그녀가 알고 있던 세계에는 이미 이야기가 있었다.

다시 하이드파크의 쿡 동상으로 돌아간다.

Born. 그는 태어났다.
Discovered. 그는 발견했다.
Killed. 그는 죽었다.

세 문장 어디에도 그가 발견했다고 기록된 땅에서 이미 살아가던 사람들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몇 분짜리 영상 속에서는 한 사람의 이름이 되살아난다. Patyegarang. 그녀의 이름이 작품의 제목이 되고, 그녀의 몸이 움직이고, 그녀의 언어가 다시 들린다. 쿡의 동상이 돌에 역사를 새겼다면, 스티븐 페이지는 춤으로 역사를 다시 불러낸다.

나는 그 두 장면 사이에서 생각했다. 한쪽에는 “Discovered this territory”라는 문장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자신의 언어를 건네는 한 여인이 있다.

어쩌면 역사를 다시 읽는다는 것은 새로운 사실을 하나 더 배우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미 알고 있던 문장을 다른 사람의 자리에서 다시 읽어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쿡에게 이곳은 발견된 땅이었다. 그러나 Patyegarang에게 이곳은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땅이 아니었다. 이미 살아 있는 땅이었다.

그래서 이제 나는 ‘발견’이라는 말을 조금 조심해서 쓰게 된다. 누군가에게 발견은 시작일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 이전에 이미 수천 년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을 이해하는 일도 어쩌면 비슷할 것이다. 우리가 먼저 이름을 붙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자기 이름을 말하는 것을 듣는 것.

쿡은 이 땅을 발견했다고 기록되었다. 그러나 Patyegarang은 새로 온 유럽인에게 이 땅의 언어를 주었다. 그는 땅을 발견했고, 그녀는 그에게 세계를 이해할 말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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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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