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형균 선배는 정치권의 부름에 흔들리지 않고 언론인의 길을 지켰다. 권력 가까이에서 취재했지만 권력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기자와 언론인으로 꿋꿋이 남은 그의 삶은 후배들에게 말보다 깊은 가르침을 주었다. 내가 선배에게 배운 것은 언론인의 자세만이 아니었다. 사람을 편하게 만드는 유머와 다른 사람의 시간을 존중하는 태도도 그중 하나였다.
이형균 선배를 처음 만난 것은 2002년 3월이었다. 당시 한국기자협회장이던 나는 한국기자협회와 중국기자협회의 연례 교류를 위해 중국을 방문하는 대표단의 단장을 맡았다. 이형균 선배는 한국기자협회 고문 자격으로 동행했다. 대표단은 전국 기자협회 부회장과 시도기자협회장, <기자협회보> 편집위원 등 모두 10명으로 구성됐다. 취재 출장이 아니라 두 나라 기자협회의 정기 교류 행사였다.
여행을 함께하면 사람의 본모습이 드러난다. 정해진 시간보다 먼저 나타나는지, 식사 자리에서 누구를 먼저 챙기는지, 예상 밖의 일이 생겼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며칠이면 알 수 있다.
그때 나는 이형균 선배에게 두 가지를 배웠다. 하나는 유머였고, 다른 하나는 시간을 지키는 자세였다.
선배는 언제나 약속 시간보다 먼저 나와 있었다. 출발 시간이 되어서야 허겁지겁 나타나는 법이 없었다. 일행을 기다리게 하지 않았고, 자신의 준비 부족을 다른 사람의 시간으로 메우지 않았다. 겉으로는 느긋해 보여도 일정과 약속에는 빈틈이 없었다.
최근 선배와 통화하며 그때 이야기를 꺼냈다. “선배님에게 참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느슨한 것 같지만 굉장히 치밀하시잖아요.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베푸는 분이고요.”
선배는 곧바로 받아쳤다. “치밀하긴 뭐가 치밀해.”
칭찬을 정면으로 받지 않고 슬쩍 비켜가는 것도 선배다운 모습이다. 그러나 선배가 자신에게 엄격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2002년 처음 만난 뒤 지금까지 바뀌지 않았다.
동행한 사람들은 모두 기자였다. 기사 마감 시간을 생명처럼 여기던 사람들이지만 여행 중 미팅이나 출발 약속에는 종종 늦었다. 한두 번은 이형균 선배도 웃으며 넘겼다. 그러나 같은 일이 두세 번 되풀이되자 “이건 디스야”라고 했다.
당시 선배가 쓴 ‘디스’는 요즘 말하는 ‘누군가를 디스한다’는 뜻이 아니었다. 영어 ‘디스플레저(displeasure)’, 곧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의미로 줄여 쓴 말이었다.
그래도 지각이 계속되자 선배는 마침내 버럭 야단을 쳤다. 평소 유머로 좌중을 편하게 하던 선배였기에 그 꾸중은 더욱 강하게 다가왔다. 기자가 기사 마감만 지킬 것이 아니라 사람과 한 모든 약속의 시간도 지켜야 한다는 가르침이었다.
선배의 유머는 사람을 깎아내리지 않았다. 진실을 담고 있으면서도 톡 쏘았다. 때로는 19금의 경계까지 다가갔지만 선을 완전히 넘지는 않았다. 잠시 어색해진 좌중도 선배의 말 한마디면 웃음을 터뜨렸고, 어느새 서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중국 방문 때도 그랬다. 중국의 신문사와 방송사, 주요 도시의 기관장들을 만날 때마다 첫 대면의 어색함이 감돌았다. 그 순간 이형균 선배가 부드러운 유머로 얼어붙은 분위기를 풀었다. 상대방은 미소를 짓다가 이내 큰 소리로 웃었고, 때로는 배꼽을 잡을 만큼 웃음이 터졌다. 말과 문화가 달라도 웃음은 빠르게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혔다.
선배는 폭탄주를 만드는 솜씨도 좋았다. 그는 “기자들은 같이 취하면서 정도 들고 정보도 나누는 법”이라며 “술에 한번 담갔다 빼야 교류도 우정도 깊어진다”고 하곤 했다. 선배에게 술은 단순히 취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처음 만난 사람들의 경계를 허물고 속마음을 나누게 하는 소통의 매개였다.
나는 그때 유머가 단순한 말재주가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상대를 웃게 해 긴장을 풀고, 서로 다른 사람들을 한자리로 묶어주는 힘이었다. 이형균 선배는 유머와 술 한잔으로 공식적인 교류 행사를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자리로 바꾸었다.

선배에게는 ‘건달’이라는 별칭도 따라다녔다. 주먹을 쓰는 건달이 아니다. ‘건배사의 달인’을 줄인 말이다. 서울대총동창회도 그를 ‘건배사의 달인’이라고 소개하며 각종 모임에서 참신한 건배사로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초대 1순위’라고 기록했다.
건배사는 짧지만 아무나 잘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참석자와 모임의 성격을 읽어야 하고, 긴 설명 없이 한마디로 사람들의 시선을 모아야 한다. 웃음 뒤에는 그 자리에 어울리는 의미도 남겨야 한다. 이형균 선배의 건배사에는 오랜 기자 생활에서 익힌 관찰력과 순발력이 담겨 있었다.
선배는 약주를 즐겼다. 후배들과 만나면 한자리에서 끝내지 않았다. 1차에서 저녁을 먹고 2차, 3차를 지나 때로는 4차와 5차까지 자리를 옮겼다. 자정이 가까워져도 선배의 이야기는 마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술만 마시는 자리는 아니었다. 기자 시절의 취재 뒷이야기와 청와대 출입 당시의 일화, 정치인과 언론인 이야기가 유머와 함께 이어졌다. 누군가 지루해할 즈음이면 선배는 짧고 톡 쏘는 말로 다시 좌중을 집중시켰다.
몸집은 크지 않았다. 걸을 때의 모습이 펭귄을 닮았다고 해서 후배들은 그에게 ‘행퀸’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작은 체구로 종종걸음을 옮기는 모습은 친근했지만, 그 안에 담긴 존재감은 결코 작지 않았다. 그는 말과 유머로 좌중을 사로잡는 ‘작은 거인’이었다.
2002년 중국에서 나는 이 작은 거인에게 배웠다. 시간을 지키는 것은 상대를 존중하는 일이며, 좋은 유머는 자신을 뽐내기 위한 말재주가 아니라 함께 있는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는 배려라는 것을.
첫 만남 이후 24년이 지났지만 그때 배운 두 가지는 지금도 선명하다. 시간에 늦지 말 것. 함께 있는 사람을 즐겁게 해줄 것.
이형균 선배는 가르치려 들지 않았다. 자신이 살아가는 모습으로 후배를 가르쳤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