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연재는 육군사관학교 15기 출신으로 특전사령관과 육군사관학교 교장을 지낸 민병돈 예비역 육군 중장이 2026년 6월 6~8일 충북 영동의 한 펜션에서 황건 인하대 의대 명예교수·성형외과 전문의와 이상기 아시아엔 발행인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91세 원로 장군이 한국전쟁과 군 생활에서 직접 겪거나 가까이서 지켜본 장면을 구술의 생생함을 살려 정리했다. 오래전 기억에 따른 인명·계급·시기와 일부 정황에는 착오가 있을 수 있으며, 역사적 사건과 인물에 관한 평가는 구술자의 견해임을 밝혀둔다. <편집자>
88올림픽을 앞두고 707대테러부대를 준비하면서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문제가 있었다. 아무리 혹독하게 훈련해도 실제 사람을 향해 처음 총을 쏘는 순간에는 머뭇거릴 수 있다는 점이었다. 우리가 상대해야 할 테러리스트는 이미 사람을 죽여본 경험이 있는 자들일 수 있었다. 반면 우리 대원들은 강한 훈련을 받은 선량한 젊은이들이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생기는 1~2초의 머뭇거림을 어떻게 없앨 것인가. 나는 그 문제에 지나치게 몰두했다. 마침내 육군본부 헌병감실에 공식 건의를 올렸다.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사형수를 우리 부대에 넘겨주십시오. 우리가 대신 사형을 집행하겠습니다.”
대테러 대원들이 실제 사람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경험을 하게 하자는 생각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어떻게 그런 발상을 했는지 부끄럽다. 그러나 당시의 나는 올림픽을 겨냥한 테러 가능성과 대원들의 실전 대응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사형수는 어차피 법에 따라 사형이 집행될 사람이니, 그 집행을 우리가 맡으면 대원들에게 실제 사격 경험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육군본부의 답은 단호했다. “안 된다.” 그 이유도 분명했다. 사형수라고 해도 인권이 있다. 사형 집행은 법률과 군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지정된 장소에서, 지정된 지휘관과 사수들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 사형수를 대테러부대의 훈련 수단으로 사용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인간을 훈련 재료로 삼을 수 없다는 답이었다. 그 답변을 받아보는 순간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나는 테러에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었다. 어떻게 하면 대원들이 머뭇거리지 않고 총을 쏠 수 있을지만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사람의 존엄과 인격을 놓치고 있었다.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도 한 인간이었다. 법이 그의 생명을 빼앗는다고 해서, 그를 군사훈련의 표적으로 사용할 권리까지 국가나 군에 주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대테러 임무의 긴박성을 이유로 그 경계를 넘으려 했다.
육군본부가 그 건의를 받아들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대원들은 실제 살상 경험을 얻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인간을 수단으로 여기는 감각도 함께 배우게 됐을 것이다. 테러리스트로부터 시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만든 부대가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는 방식으로 훈련한다면, 그 목적과 수단은 모순될 수밖에 없다.
당시의 나는 그 사실을 충분히 생각하지 못했다. 오직 작전의 성공만 바라봤다. 대원들이 방아쇠 앞에서 머뭇거리지 않게 해야 한다는 목표가 너무 컸다. 그 목표가 다른 모든 판단을 밀어냈다.
지휘관이 한 가지 목적에 지나치게 몰두하면 위험해진다. 임무 수행은 중요하다. 국민의 생명과 국가적 행사를 지키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아무리 절박한 목적이라 해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군대는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조직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어느 조직보다 인간의 존엄을 더 깊이 생각해야 한다. 명령과 작전, 승리와 효율만을 앞세우다 보면 사람은 쉽게 숫자나 수단으로 바뀐다.
그때 육군본부가 내 건의를 거절한 것은 옳았다. 나는 그 답변을 통해 내가 얼마나 위험한 생각에 빠져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지금도 이따금 고백한다. ‘나는 올림픽 테러에만 몰두한 나머지 인간적이고 인격적인 문제를 놓쳤다. 그래서 부끄러웠다.’
지휘관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판단이 언제나 옳다고 믿는 확신만이 아니다. 자신의 판단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용기도 필요하다. 내 건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리고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남아 있었다. 올림픽이 다가오고 있었다. 대테러부대는 실제 상황에서 사람을 향해 총을 쏴야 할 수도 있었다. 상대는 이미 살인과 폭력을 경험한 테러리스트일 수 있었고, 우리 대원들은 아무리 강한 훈련을 받았어도 실제 사람을 향해 방아쇠를 당겨본 적 없는 젊은이들이었다.
어떻게 하면 사람을 죽이는 데 익숙해지지 않으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머뭇거리지 않게 할 수 있을까.
나는 먼저 사람 모양의 표적을 만들게 했다. 옷가게에 세워두는 마네킹 같은 모형에 실제 옷을 입히고, 총탄을 맞으면 앞으로 고꾸라지도록 장치를 달았다. 대원들은 새벽이나 어두운 시간에 그 표적을 향해 사격했다.
대테러 작전은 밝은 사격장에서만 벌어지지 않는다. 비행기나 건물 안으로 진입하면 테러범이 불을 꺼놓을 가능성이 크다. 눈앞의 형체가 사람인지 표적인지 분명하지 않은 어둠 속에서도 정확히 판단하고 쏴야 했다.
대원들은 총탄을 맞고 앞으로 쓰러지는 표적을 보며 실제 사람을 쏜 듯한 심리적 충격을 받았다. 어떤 대원은 훈련 뒤 정신이 몽롱하다고 했다. 나는 그 반응이 오히려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사람을 닮은 형체가 총탄을 맞고 쓰러지는데 아무 감정도 느끼지 않는다면 그것이 더 위험한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실제 사람을 앞에 두고 방아쇠를 당길 때 생기는 머뭇거림을 넘어서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대원들이 서로를 향해 실탄을 쏘는 훈련을 구상했다. 먼저 방탄조끼를 시험했다. 당시 사용하던 방탄조끼의 방호 성능을 확인하기 위해 여러 차례 사격시험을 했다. 여러 겹을 겹쳐 시험한 끝에 여섯 겹이면 총탄이 몸까지 들어오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대원들에게 방탄조끼를 여러 겹 입혔다. 그리고 서로 마주 보게 했다. 나는 지시했다. “심장을 겨눠라.”
그러나 대원들은 쉽게 쏘지 못했다. 표적이 아니라 자신이 함께 훈련하고 생활한 동료였다. 방탄조끼가 총탄을 막는다는 설명을 들었어도, 실제 사람의 가슴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강한 특수부대원들도 처음에는 몸을 피하고 총구를 돌렸다. 그들은 잔인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험한 훈련을 받았지만 본래 선량한 젊은이들이었다. 그래서 사람을 향해 쏘는 일을 두려워했다.
나는 지휘관인 나를 향해 쏘게 하려고도 했다. “내가 방탄조끼를 입을 테니 나를 쏴라.”
그러나 아끼던 부하조차 쉽게 총을 들지 못했다. 그때 옆에 있던 다른 대원이 앞으로 나서며 나를 밀어냈다. “비키십시오. 제가 쏘겠습니다.” 그 대원은 방탄조끼를 입은 동료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그렇게 훈련은 이어졌다.
이런 훈련은 많은 인원을 대상으로 할 수 없었다. 불과 20명이나 30명 정도의 핵심 대원에게만 실시할 수 있었다. 위험이 컸고, 나는 장비와 안전 조건을 갖췄다고 판단했지만 실제 사람을 향한 실탄 사격에는 결코 없앨 수 없는 위험이 있었다.
결국 이 훈련 내용이 상부에 보고됐다. 전두환 대통령이 나를 불렀다. “너 미쳤느냐?” 나는 아니라고 답했다. 대통령은 부하들에게 서로의 가슴을 향해 실탄을 쏘게 했다는데,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다.
나는 방탄조끼를 여러 겹 겹쳐 사격시험을 했고, 안전성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1972년 뮌헨올림픽 테러 참사를 비롯해 내가 연구한 대테러 사례를 이야기했다. “우리는 최악의 사태를 상정하고 훈련합니다.”
테러리스트 가운데는 이미 사람을 죽여본 자들이 있다. 반면 우리 대원들은 실제 사람을 죽여보지 않은 선량한 젊은이들이다. 그런 대원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머뭇거리면 인질과 대원 모두가 목숨을 잃을 수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내 설명을 들었고, 나는 당시 그가 내 판단을 이해하고 받아들인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그때의 훈련이 완벽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의 안전 기준과 인권 감수성으로 보면 지나치게 위험하고 극단적인 방식이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실제로 한 번의 오판이나 장비 결함만 있어도 대원의 생명을 잃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의 나는 올림픽 테러라는 최악의 상황을 막아야 한다는 책임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대테러부대의 임무는 테러범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인질과 시민을 살리는 일이다. 당시 나는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즉시 방아쇠를 당겨야 하는 순간이 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대원이 사람을 향해 총을 쏜다는 공포를 이기지 못하면 더 큰 희생이 생길 수 있다고 판단했다. 나는 그래서 대원들에게 가장 두려운 상황을 훈련장에서 먼저 경험하게 하려 했다.
사람의 가슴을 겨누고도 인간성을 잃지 않는 것. 총을 쏠 수 있으면서도 살상을 즐기지 않는 것. 필요한 순간에는 머뭇거리지 않되, 그 행위의 무게를 잊지 않는 것. 그 모순된 조건을 대원들에게 요구했던 것이 당시 707부대의 실탄훈련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두 경험 사이에는 공통된 문제가 있었다. 사형수를 훈련에 활용해달라고 건의했을 때도, 방탄조끼를 입은 부하들에게 서로를 향해 실탄을 쏘게 했을 때도 나는 대테러 작전의 성공이라는 목표에 몰두하고 있었다.
사형수 활용 건의는 육군본부의 거절로 멈췄다. 부하들을 대상으로 한 실탄훈련은 내 판단에 따라 진행됐다. 하나는 잘못을 깨닫고 물러선 일이었고, 다른 하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밀어붙인 일이었다.
나는 두 일을 모두 기억한다. 그리고 그 경험들을 오늘의 기준에서도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휘관은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그러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어디까지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가. 그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 부하라면, 그 판단의 책임은 더욱 무거워진다.
당시의 나는 대원들이 방아쇠 앞에서 머뭇거리지 않게 만드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지금, 그보다 더 어려운 질문이 남는다. 지휘관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어디까지 해도 되는가.
육군본부가 내 건의를 거절했을 때 느꼈던 부끄러움은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이었다. 그리고 부하들에게 실탄을 쏘게 했던 기억은 그 질문이 결코 쉽게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군인의 용기에는 방아쇠를 당기는 결단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잘못된 판단 앞에서 멈출 수 있는 용기도 있어야 한다.
내가 707부대를 창설하던 시절 겪었던 두 사건은 지금도 그 사실을 생각하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