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문섭 칼럼] 레전드의 뒷모습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여호수아 14:11-12)
만약 3·1운동에 참여했던 사람이 아직 생존하고 있다면, 우리는 그에게서 어떤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을까요? 그 역사의 증인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감동을 느낄 것입니다.
가나안 땅 정복 전쟁이 거의 마무리되어 가고 각 지파에게 땅을 분배하기 시작할 무렵, 이스라엘 진영에 살아남은 출애굽 1세대는 단 두 명뿐이었습니다. 바로 여호수아와 갈렙입니다. 출애굽 당시 그들의 나이가 40대였으니, 열 가지 재앙으로부터 홍해 도하 사건, 광야에서 겪었던 모든 우여곡절의 흔적이 그들의 몸과 마음에 그대로 새겨져 있었습니다. 출애굽 2세대들에게 이 두 사람은 어떤 존재였을까요? 살아있는 전설이자 신앙의 이정표였을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 여호수아는 늙고 기력이 쇠했습니다(수 13:1). 반면 갈렙은 85세의 노구에도 불구하고 전장을 누빌 수 있을 만큼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권력의 공백기가 다가오면 으레 후계 구도를 둘러싼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기 마련입니다. 많은 이들이 여호수아 다음을 생각했을 것이고 갈렙은 그 리더십을 대체할 수 있는 적임자였습니다. 명분도 자격도 충분했습니다. 갈렙 입장에서도 여호수아의 자리를 노려볼 만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갈렙의 요구는 ‘그 자리를 내게 주소서’가 아니라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였습니다. 그가 가리킨 헤브론 산지는 크고 강한 아낙 자손이 버티고 있는 가장 정복하기 힘든 산지였습니다. 편안한 은퇴나 명예로운 군주의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는 전장의 최전선을 택한 것입니다.
45년 전, 두 사람은 가나안 정탐 작전에서 만나 수많은 생사의 고비를 같이 넘었고,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함께 꾸며 지금 여기까지 왔습니다. 여호수아는 역사의 전면에서 갈렙은 역사의 이면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써왔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얼마나 든든한 버팀목이었을까요? 주 안에서, 주를 위해 이렇게 동역할 수 있는 벗이 있다는 것은 정말 복된 일입니다.
모두가 편안함과 명예로움이 보장되는 자리를 원할 때, 기꺼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장 무거운 짐을 짊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험한 최전선으로 향하는 85세 노장의 뒷모습을 보며 출애굽 2세대들은 무엇을 배웠을까요? 진정한 신앙의 유산은 백 마디 말이 아닌, 결정적인 순간의 선택으로 전수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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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묵상 2권
<서툰 인생, 잠깐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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